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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May 17. 2021

옛날 음악을 좋아해요.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그리고 '밥 딜런'

EXN(을씨년) - REVERSE/ 온앤오프 - 춤춰/ 태민 - 이데아/ 우주소녀 더블랙 - Easy / BIBI(비비) _ Life is a Bi…/ 레디(Reddy) - 바뻐

위 리스트는 내가 최근 한 주 동안 일 때문에 가장 많이 들은 음악 리스트이다.  R


나는 언제나 새로운 음악, 특히 최신의 대중 음악을 찾아들어야 하는 직업을 가졌고 그렇기에 다양한 장르를 수용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가장 최신의 음악 트렌드를 잘 알아야 하는 직업을 가진 나에게 누군가 좋아하는 곡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올드팝을 말한다.


어린 시절 아빠의 파란 스포티지 차량 안에는 오래된 차량 특유의 고무 냄새, 기름 냄새와 함께 늘 마마스 앤 파파스, 비지스, 사이먼 앤 가펑클, 이글스, 비틀스, 니나 무스꾸리의 음악이 카세트 사이로 흘러나왔다. 아빠가 All the leaves are brown을 시작하면 돌림 노래처럼 그 가사를 따라 불렀던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 비지스의 Holiday 중반의 De de de de de de 부분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그렇게 아빠와 함께 음악을 듣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빠의 취향은 빠르게 나의 귓속 깊은 곳에 파고들었고 조기 주입식 취향 교육으로 나는 아빠와 같은 음악을 듣는 10대가 됐다. 또한 아빠가 사 두었던 영화 음악 OST tape 전집을 듣고 또 들어온 나는 고전 영화를 다 보진 않았어도 그 영화에 어떤  OST가 흐르는지를 알고 흥얼거릴 수 있었다. (영화 '졸업'을 보지 않아도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는 좋아했다.) 10대 중반, 올드팝을 좋아하던 나는 고등학교 방송부에서 오래된 영화의 OST를 소개하는 영화음악 방송담당 아나운서가가 된 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태어나서 처음 산 CD가 아빠의 생일날 구입한 비틀스의 빨간색  <1> 앨범이었던 나는 어느덧 훌쩍 자라 어린 딸에게 음악을 들려주던 그 시절 아빠와 비슷한 나이가 됐고 음악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됐다.

음악과 함께 하는 삶, 올드팝을 좋아하던 소녀의 취향은 삶의 배경 음악에서 생업이란 메인 테마가 된 것이다.


이런 올드한 내 취향의 기원을 더듬다 보니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한편이 떠오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내 취미는 음악 감상입니다'에서 그는 새로운 음악을 듣지 않으면 고막이 노화한다고 했다. 흠, 정작 자신도 최신의 음악을 책 속에 소개한 적이 별로 없으면서!

문득 질문을 던져본다. 도대체 고막이 늙는다는 것의 정의는 무엇일까? 올드팝을 좋아하는 나는 고막이 노화된 사람일까?


이런 고막 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가 누가 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고막 노화의 대표 아티스트는 바로 '밥 딜런'인 것 같다. 밥 딜런은 취향 조기교육을 하던 아빠가 좋아한 적 없는 아티스트다. 10대였던 내가 무려 스스로 디깅(Digging)을 하다 빠져버린 올드팝 아티스트가 밥 딜런이란 소리다. 그렇다 보니 밥 딜런이란 이름은 어린 시절부터 내가 내 나이에 맞지 않은 오래된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 내 취향과, 성격을 표현하는 상징적 존재이기도 했다.

밥 딜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어른들을 만나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또래나 동생들에겐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있어 보인다는 어린 치기와 허세도 조금 첨가됐던 것 같다. 노래를 부른다기보다 시를 낭송하는 것에 좀 더 가까운, 가사를 중얼중얼 읊조리는 그의 모습. 그 어떤 문학보다 더 비유적으로 현 세태와 감정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문학 좀 읽고 시 좀 본다고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고 다니던 어린 나의 맘을 무척이나 들뜨게 했다. 그런 나는 20대 초반 홀로 밥 딜런의 내한 공연을 다녀왔고, 2018년 후지 록 페스티벌의 메인 아티스트로 라인업에 등장한 밥 딜런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일본을 다녀왔다.



후지락 페스티벌의 밥딜런



데뷔때 부터 이미 쉰듯한 거친 목소리를 가진 그는 가창력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다. 그가 연주하는 기타, 하모니카 소리 위로 또렷히 들려오는 가사 전달에 좀 더 특화된 독특한 가수이다. 또한 지금의 밥 딜런의 목소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표곡(Blowing in the wind) 속 목소리와 달라진 지도 꽤 오래됐다. 달라진 목소리에 불만을 토로하는 관객들도 많았지만 그의 데뷔가 62년 도라는 걸 생각하면 저 노장이 머나먼 타국에서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노래를 하고 연주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적이다. 이런 거장의 전성기는 보지 못했어도 동시대를 조금이라도 겹쳐 살며 그의 실제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공연장에 서있는 우리는 축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대가 시작하기 1시간 반 전 일찌감치 무대 앞에 자리를 잡고 거장에 대한 예우를 갖추며 경건한 맘으로 그의 등장을 기다렸다. 낯선 일본의 후지산 산자락 아래로 분홍빛 노을이 물들어갔고 생경한 하늘 아래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온 음악이 흐르자 그 속에 아련히 코끝을 간지럽히는 익숙한 향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의 노래가 시작되자 내 옆자리에 서 있던 한 외국인은 눈물을 훌쩍이다 못해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 뒤쪽에선 초창기 대표곡을 빨리 불러달라는 한 남성의 아우성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노년의 밥 딜런은  피아노를 연주하다 기타를 고쳐 매더니 하모니카 앞으로 선다. 그 순간 수천수만 명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내 뒤 어린 고막을 보호하기 위해 커다란 헤드폰을 낀 채 아빠의 어깨 위에 무등을 탄 작은 소녀는 우리가 이토록 열광하는 음악이 어떠한 곡인지도 모른 체, 또한 그의 아빠가 얼마나 감동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른 체 신난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2018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켄드릭 라마와 N.E.R.D가 헤드라이너였던 18년 후지 록 페스티벌. 동시대 가장 핫한 아티스트인 포스트 말론, Years & Years, ODESZA, Chvches, Superorganism 등의 최신의 아티스트 사이에 세컨드 아니 서드 라이너로 출연한 밥 딜런에 더욱 열광하며 눈물을 훔치는 우리는 다 함께 고막의 진화가 멈춰버린 걸까?

다 같이 진화를 멈추고 쉰듯한 목소리의 62년에 데뷔한 가수를 사랑하며 늙어간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론 디스토피아 영화 속 지구 멸망을 앞두고 아날로그를 찾는 주인공들처럼 이 상황이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이거 밥 딜런이죠?"
"그래요” 하고 나는 말했다.
밥 딜런은 포지티블리 포스 스트리트를 노래하고 있었다. 이십 년이 지나도 좋은 노래는 역시 좋은 노래다.
"밥 딜런은 조금만 들어도 알 수 있거든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하모니카가 스티비 원더보다 서투르니까?"
그녀는 웃었다.
"그런 게 아니고 목소리가 특별하거든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마치 작은 아이가 창가에 서서 비가 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목소리예요."
"좋은 표현이군요." 하고 나는 말했다.
좋은 표현이었다. 나는 밥 딜런에 관한 책을 몇 권인가 읽어보았지만 그처럼 적절한 표현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하루키의 책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주인공이 렌터카샵에서 차를 빌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곳에서 그가 틀어놓은 음악을 듣던 직원은 자신 역시 옛날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하며 밥 딜런의 목소리에 대해 작은 아이라는 표현을 쓴다.

책 속에서 Positively 4th Street 그리고 Stuck Inside of Mobile with the Memphis Blues Again가 연이 어 흘러나오고 나는 반가움에 이어폰을 귀에 꽂고 노래들을 듣는다. 작은 아이가 창가에 서서 비가 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목소리. 무언가 서투른 듯 가창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읊조리는 듯한 그의 거친 목소리는 노인보다는 오히려 소년에 가깝게 느껴지는 아이러니가 있다.


하루키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여러 번 그의 곡을 책의 테마곡처럼 문장 위에 흘려 놓았다. 지구 멸망을 앞두고 아날로그를 찾는 주인공 같은 후지 록 페스티벌의 관객들처럼, 세상의 끝 디스토피아 속 자신의 삶의 종료를 앞두고 밥 딜런의 하드 레인을 듣는 소설 속 주인공. 주인공에게 밥 딜런은 목숨을 빼앗길 긴박한 상황에서  자칫 사라질 것 같은 자아를 돌아볼 여유, 자신을 안아주는 위로 그리고 세계의 끝에서 사라져 가는 세상을 추억을 대표하는 아티스트이다.


“그런데 말이에요, 당신의 의식이 없어지면 난 당신을 냉동시켜볼까 하는데, 어때요?”
“마음대로 해. 어차피 더 이상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테니까.” 하고 나는 말했다. “지금부터 하루미 부두로 갈 거니까 거기서 날 회수하면 돼. 흰색 칼리나 1800 GT 트윈 캠 터보라는 차에 타고 있어. 차 모양은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밥 딜런 테이프가 틀어져 있을 거야.”
"밥 딜런이 누구죠?”
"비 오는 날에.......” 하고 나는 말하려고 했다가 설명하는 게 귀찮아져서 그만두었다.
“쉰듯한 목소리의 가수야.”

잠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이것으로 내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비록 한번 잃어버렸지만 결코 손상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그 깊은 잠에 몸을 맡겼다. 밥 딜런은 계속해서 <하드 레인 Hard rain>을 부르고 있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꽤나 초창기의 작품이다.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타이트한 짜임새와 단단한 세계관 구성은 조금 미흡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제목 그대로인 세계의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편의 사이버펑크 만화처럼    씬을 공들여 묘사한  책은 그의 다른 작품보다 장면의 생생함이 강렬하게 살아있다. 글이 표현할  있는 최대치의 비주얼을 눈과 머릿속에 그려주는   속에서 주인공은 죽음을 예감한 세계의 끝에서  딜런의 'A hard rain's a gonna fall' 듣는다. 핵전쟁으로 폐허가  세상에서 부모와 자식의 대화로 이루어진  노래는 멸망의 묵시록을 더듬으며 자신의 그림자를 잃고 자신을 잃어가는 주인공의 상황과 너무나도  닥뜨려지는 곡이 아닐  없다.


Bob Dylan - A Hard Rain's A-Gonna Fall


무라카미 하루키는 에세이에서 음악에 대한 감수성이란 스무 살 고비로 해서 점점 약해진다고 했다. 10대 시절에 느꼈던 뼛속까지 스미는 듯한 감동은 두 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말이다. 10대부터 지금까지, 아니 죽을 때까지 밥 딜런을 좋아할 나의 고막은 늙었다기보다 새로운 음악을 수용하는 감수성이 멈추거나 늙어버린 것일까? 혹은 그 시절 아빠 차를 타고 아빠와 함께 노래 부르던 그 시절에 일부러 멈춰 놓고 늙기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는 걸까?

누군가는 90년대 이후로 새로운 음악은 없다고 했다. 한편으로 2021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위 올드팝이라 불리우는 곡들은 실제로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음악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옛날 음악이라고 해서 낡은 것이 아니듯 나의 고막도 늙고 진화하지 못한 건 아니겠지란 생각이 든다.

올드팝이 내 음악 인생의 출발점이라면 그로 인해 나의 취향이 결정됐고 선호가 형성됐다는 걸 봐선 옛날이란 것은 낡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어떤 음악을 좋아해요?"

"옛날 음악을 좋아해요. 밥 딜런, 딥 퍼플, 비틀스, 도어즈, 지미 헨드릭스, 에릭 크랩튼."



PS. 가수지만 시적인 가사로 노벨문학상을 받는 밥 딜런, 그리고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지만 수상하지 못한 하루키. 노벨문학상은 밥 딜런은 거부한 상이자, 거장으로 모두의 인정을 받는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도 아무 의미는 없을 것이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영화이자 밥 딜런의 일대기를 주제로 한 <I'm not there>는 밥 딜런을 향한 존경과 사랑을 넘어 그의 삶을 종교처럼 해석하고, 철학처럼 분석한다. 또한 문학처럼 각각의 삶을 하나의 단편처럼 연출했다. 너무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내가 늘 모두에게 추천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방송부 시절 나의 방송은 매주 수요일이었고, 시그널 음악은 아빠와 내가 너무 좋아하는 소피 마르소의 영화 You call it Love의 OST Karoline Krüger -You call It Love였다.


Karoline Krüger -You call It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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