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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Jan 25. 2023

#15.글쓰기 수업

오감글쓰기.

명절 연휴.

결혼을 하지 않은 싱글에겐 오롯이 나를 위한 쉼이 가능했기에 쉬면서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해보고 싶었다.

작년에 새롭게 시작한 것이 테니스였다면,

올 한 해에도 테니스와 더불어 무언가 몰두하며 즐길 수 있는 활동을 찾아 새롭게 시작해보고 싶었다.

중요한 건 단 두 가지.

내가 즐겁게 몰입할 수 있어야 하고,

어쩌면 죽을 때까지 꾸준히 할 수 있는 그런 활동이어야 했다.


올 한 해.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겠지만 여전히 독서와 글쓰기는 꾸준히 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 그런 활동임에는 틀림없으나 한 동안 그 동력을 많이 상실했다.

많이 읽고 다양한 글을 써보고 싶었지만 내 안의 글쓰기 재능은 분명 한계가 있었고, 글을 쓸 때의 고통에 비해 동기부여가 되는 그 무언가가 없었다. 그래서 독서와 글쓰기가 몇 년째 제자리에 멈춰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호스트의 글쓰기 모임이 눈에 들어와 냉큼 클릭.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고 참석하기를 눌렀다. 문창과를 졸업한 호스트는 글쓰기 모임을 어떻게 진행해 나갈지가 매우 궁금했다.


한파경보가 떨어진 연휴의 마지막 날.

칼바람을 뚫고 집에서 한 시간이 넘는 모임장소에 가기까지 내적갈등이 극에 달했지만 무장을 하고 결국 모임장소에 도착했다.  


호스트를 포함한 7명이 모인 우리들의 글쓰기 모임 주제는 오감글쓰기였다.

방식은 이랬다.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 사진 한 장을 골라 그 사진 속 이미지를 오감을 넣어 설명해 보는 것.

주어진 시간은 단 15분뿐.


각자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6명의 참가자들은 부리나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은 혼자서 써야 하는 일이지만, 이렇게 가끔씩 글쓰기 모임에 나가는 이유는 함께 데드라인을 정해놓고 쓰면 그 글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신기하게도 어떻게든 써진다는 것이었다.

이게 마감의 힘인가 싶기도 했다.


폭풍 같은 15분이 지나고 호스트님은 누군가 자신이 쓴 글을 한 문장만이라도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마치 학창 시절 과제를 발표하라고 하면 아무도 손을 들지 않던 교실의 모습처럼,

우리 또한 15분간 다듬어지지 않은 글을 처음 본 사람들 앞에서 낭독하기란 여간 꺼려지는 일이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기에... 누군가 먼저 시작하면 다른 참가자들도 손을 들것임을 알기에..

"그럼 제가 먼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라고 손을 들고 낭독을 하기 시작했다.



제목 : 우린 어떤 빛을 뿜어내며 살아가고 있을까?


성수역 골목길의 어느 한 카페.
낯선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빛을 뿜어내는 방식도 그 빛을 둘러싸고 있는 종이의 형태도 새롭고 낯설어 보였다. 등이 예뻐 한참을 바라보다가 문득 일어서서 등을 감싸고 있는 종이를 만져봤다.
따스했다.
겨울인 바깥날씨완 다르게 빛을 감싸고 있는 종이는 따스했고 바스러지지 않을 만큼 두껍고 단단해 보였다.
어떤 종이엔 하트가 그려져 있었고,
또 어떤 종이엔 사람의 형태가 그려져 있기도 했고,
글로 가득 찬 메모가 있기도 했다.
빛을 중심으로 그 거리감에 따라 어떤 종이는 어두웠고, 또 어떤 종이는 뜨거웠다.
마치 우리의 삶처럼.

우리의 삶도 저 빛을 둘러싸고 있는 메모처럼 다양한 경험과 사건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게 문득 느껴졌다.
나라는 빛을 둘러싼 어떤 종이는 아직 하얀 백지일 테고,
또 어떤 종이는 빛에서 멀리 떨어져 어쩌면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하든 우리의 삶은 다양한 삶의 방식과 모습으로 나를 둘러싸고 있을 테고 메모를 둘러싼 저 빛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 형태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독서모임을 하고 있던 그 테이블 아래 저 등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고 그 시간 동안 내 한 페이지도 작성되고 있는 듯했다.




호스트님은 글에 대한 비평 없이 글이 좋은 이유를 조목조목 이유를 들어가며 설명해 주었다. 예상했던 대로 내가 낭독 후 두 분이 더 낭독을 해주셨다.

누군가의 글을 읽다 보면 내 글에 없던 타인의 글의 장점이 보이고 들린다.

다들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분들이 모여서인지,

글은 매끄러웠고, 유려했다.

그리고 솔직했다.


 모든 글을 다 듣고 호스트님이 이야기해 준 글에 대한 코멘트는 다음과 같았다.

- 단 한 줄짜리 글이라도 제목이 있으면 좋다.

  (학폭을 배경으로 한 더 글로리도,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을 담은 스카이캐슬이란 드라마도 제목과 내용에서 오는 상반된 표현이 글을 좀 더 실감 나고 읽고 싶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 사진에 담긴 이미지는 그걸로 끝이지만, 그 이미지로 인해 기대감을 갖게 하는 글이라 좋았다.

- 어떠한 사물에 대한 소개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한 스토리텔링의 전개가 매우 좋다.

- 인물소개는 위에서 아래로의 소개가 읽기 편하다. (할아버지-----> 손자)

- 계속 비슷한 형태의 글쓰기가 계속된다면 그 문단을 통으로 드러내고 읽어볼 것.

- 같은 의미라도 유사단어를 선택함으로 인해 글이 더 풍부해지기도 한다. (유의어 사전을 참고하여 글을 쓰면 좋다.)

- 내가 찍은 어떤 사물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글은 매우 좋다.  


우리의 글을 모두 읽고 호스트님이 쓴 글을 들어보았다. 소설을 쓰고 계신 분 답게 1인칭 시점의 묘사가 매우 뛰어났고, 첫 문장 또한 깊게 각인되었다.

구체적인 묘사... 개인적으로 참 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호스트님의 글은 회중시계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IT기획자, 마케터, 엔지니어, 일반 회사원, 수학강사인 우리 주변엔 문예창작과를 나온 지인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질문이 호스트님께 쏟아졌고, 호스트님은 빠르고 친절하고 정확하게 본인이 아는 경계 내에서 세세히 설명해 주었다.   

연휴의 마지막 날.

조금 늦게 시작한 모임이었기에 우린 서둘러 각자의 글쓰기 도구를 챙겨 다시 집으로 향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또 많은 걸 배우고 난 꺼져가던 글쓰기에 다시금 조그마한 짚불을 집어넣는 그런 시간이었다. 올해에는 어떤 글을 쓰게 될지, 혹은 쓰지 않게 될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넘쳐나는 브런치 글들 속에 누군가에겐 조금은 의미 있는 글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의 배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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