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우아하게 만드는 작은 습관들
우아함. 어쩌다 이 단어에 꽂혔는지 모르겠다. 나는 우아한 할머니가 될 테다.
첫 직장이었던 미술잡지사는 ‘미술’ 중에서도 ‘미술 시장’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곳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미술품이 미술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경매장과 갤러리, 아트 페어 등의 미술 ’시장‘이 존재하며,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미술품도 감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파는 대상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억 소리 나는 돈을 미술 작품을 구매하는 데 쓰는 사람이 있고, 그게 꼭 부자들의 특권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직접 경매장에 찾아가 낙찰의 순간을 목격하고 기록하는 일,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의 스토리를 전하는 일, 일 년에 한 번, 회사에서 주최하는 아트 페어에서 직접 그림을 팔아보는 일을 했다. 새로운 세계였다.
그 회사에서 3년 넘게 일하고 다른 잡지사로, 또 다른 출판사로 넘어가며 계속 책을 만드느라 미술 시장 같은 건 거의 잊어버린 나와 달리, 함께 일하던 친구는 아트 딜러가 되어 여전히 시장의 중심에서 일한다. 어느 날 친구로부터 자기가 팀을 꾸려 아트 페어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하루 와서 도와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다. 추억의 아트 페어 재밌겠다며 놀 겸 하루 도와주러 전시장을 찾았다.
우리는 몇 년 전 그때처럼 나란히 부스에 앉아 수다를 떨다가 '그림을 사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트 페어처럼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미술 시장에서 아트 딜러는 눈이 밝아야 한다. 그림을 살 사람을 알아보는 눈은 곧 그날의 매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녀가 파악한 그림 사는 사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온몸을 명품으로 두른 사람이 모두 미술작품을 사는 건 아니다(하지만 확률은 있다).
2. 명품을 두르지 않더라도 좋은 신발이나 시계를 착용한 사람. 가방은 어쩌다 좋은 걸 살 수 있지만 신발은 한 단계 위다. 저렴한 구두를 신은 사람이 비싼 작품을 살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드라마 <작은 아씨들>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3. 피부와 머릿결이 좋은 사람.
4. 액션이 크지 않은 사람.
5. 목도리, 혹은 코트 자락이 잘 정돈된 사람.
나는 친구가 말하는 ’그림 사는 사람‘이 어쩐지 ’우아한 사람‘의 다른 말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림을 사는 것은 취향과 가치관의 문제이고, 돈이 많다고 무조건 그림을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일반화할 수 없다. 하지만 공감할 만한 몇 가지 포인트가 있었다. 거기서 외적인 우아함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
1. 색보다 결에 집중한다.
나이가 들수록 색이 아니라 결이 중요하다는 말에 공감한다. 결은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색색의 화장품을 살 돈을 모아 꾸준히 피부과에 다닌다. 물을 많이 마시고, 먹는 음식을 조절해 피부를 아낀다. 머리카락도 마찬가지. 지금까지는 신나게 염색하고 상하면 짧게 자르기를 반복했다. 염색을 참고 결에 집중하기로 다짐한다(‘머리 감는 법’도 따로 있더라, 제대로 감고 말리는 연습부터 해야겠다).
2. 신발을 깨끗하게 관리해 신는다.
처음엔 ‘신발은 좋은 걸 신는다’라고 적었다. 좋은 신발이 좋은 걸음을 만들고 좋은 걸음은 좋은 자세를 만든다. 자세는 건강과 직결된다. 시즌별로 하나씩이면 된다. 우선은 좋은 스니커즈를 하나 사야겠다. 이 말을 했더니 엄마가 말한다.
“좋은 게 아니어도 돼. 깨끗하게 관리하며 신는 게 중요하지."
아, 그렇지 정말! 서둘러 문항을 수정하고, 미루고 미루던 운동화 빨래를 맡겼다.
3. 옷매무새를 확인한다.
나가기 전에 다림질, 얼룩 등을 살펴본다. 특히 뒷모습.
내적인 우아함은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우선 ‘사진이든 글이든 보여지는 삶 바깥에서 여유롭고 행복한 마음’이 우아함의 토대가 된다고 생각한다.
4. 겉옷보다 속옷에 더 신경 쓴다.
속옷과 양말, 잠옷 등 기본 아이템에 신경을 쓴다. 이건 100%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게 아무리 그럴듯해도 떨어진 속옷, 짝이 맞지 않는 양말, 후줄근한 실내복과 잠옷은 괴리감을 불러온다.
5. 시간을 주도한다.
고유하게 존재하는 자는 말하자면 늘 시간이 있다. (...) 그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시간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 말한 미술잡지사의 대표님은 '바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도 주어지지 않는다며, 백조처럼 일하라고 당부했다. 바빠 보이지 않는 사람, 그러나 늘 움직이고 있는 사람. 그때는 티 내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는 건가 싶었는데, 요즘은 얼핏 알 것 같다.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6. 예쁘고 단정하게 말한다.
예쁘고 단정하게 생각하는 것은 물론이다. 말이 생각을 담는다.
당분간은 여섯 가지를 잘 실천하며 지내보아야겠다. 나만의 우아함을 찾는 그날까지, 우아한 할머니가 되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