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최고의 실패를 예감하며!
책을 냈다. 출판사 등록을 했다. 사무실도 생겼다. 이 모든 게 지난 두 달간의 일이다.
8월 15일을 끝으로 육아휴직이 끝났다. 퇴사를 결정했고, 공식적인 백수가 될 참이었다. 아이 둘을 돌보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머리로 생각했지만, 마음에는 불안이 싹텄다.
'이러다 영영 경력 단절되는 거 아니야?'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려면 내년 3월은 돼야 할 테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았다. 헐거워진 내 경력을. 혹여 능력도 헐거워질까 봐 몹시 두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사진과 심리랩>이라는 요상한 제목의 프로젝트가 눈에 띄었다. 사진과 상담을 결합해 참여자들과 결과물을 만들고 그걸로 전시를 한다고 했다. 홀린 듯 신청서를 작성했다. 나를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인터뷰와 촬영을 하고, 꼬박 이틀 동안 집단 상담을 받고, 전시 기획을 함께하면서 오랜만에 촘촘한 날들을 보냈다.
어쩌다 한 자리에 모인 우리는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의 시작을 등 떠밀고 응원했다. 그 마음들 덕분에 겨우 엉덩이를 떼고 움직이게 되었다. 각자의 재료를 다듬어 일단은 무엇이든 시작하기로. 이 전시는 그 시작의 기록이다.
- 전시 소개 중에서
전시는 <일단, 시작>이라는 제목을 달고 조촐하게 개최되었다. 이 전시를 위해 나는 무엇을 시작했냐면, 책을 만들기로 했다. 남의 책이 아니라 내 책을. 촬영과 상담을 이어가던 중 내 방 책장 구석에 고이 모셔둔 보물 상자를 열게 되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열어 보았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상자 안에는 오래전에 책을 만들려고 준비해 놓았던 자료들이 얌전하고 온전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 그들과 나눴던 대화,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 고장 난 카메라와 빛바랜 필름, 낙서 같은 그림, 차마 다시 읽기 힘든 일기 같은 것들이 봉투에 꽁꽁 싸인 채로 상자 한구석에 놓여 있었습니다. (...) 사부작사부작 책 만들 준비를 다 해놓고 결국 완성하지 못한 채 모셔 놓은 게 꼭 나 같았습니다.
아무튼, 저는 이 책을 세상에 꺼내 놓기로 합니다. 10년 전에 털어냈어야 할 책을 기어코 마감하기로, 그렇게 해서 다음 걸음을 내딛기로요. 이 책을 읽는 여러분도 그러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시작'하여 '아무튼 마감'하고 나면 여러분의 챕터도 하나쯤 마무리되겠지요. 그렇게 나아가자구요."
- <낯선 사람> 프롤로그 중에서
전시 준비 기간 내에 책을 다 만들 수는 없으니 본문과 표지 시안을 만들어서, 전시장에서 표지 투표를 받는 것을 목표로 삼기로 했다. 어떤 책을 만들지 고민하고, 글과 사진을 살피고, 인디자인을 더듬거려 겨우 시안을 만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게으른 나를 움직이는 건 마감뿐이다.
다음 편에 계-속
그렇게 만든 책을 먼저 소개할게요! 12월 22일까지 텀블벅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
https://link.tumblbug.com/ihuLbUeZ6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