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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택 Aug 29. 2021

중세 유럽 '스타트업' 칼뱅주의 (3 min)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독후감

세줄 요약
1. 막스 베버는 지역별 자본주의 발전 속도 격차의 원인 중 하나가 칼뱅주의와 같은 신념의 유무 여부라고 주장
2. 칼뱅주의로 신념을 모은 사회(국가)들의 신자들은, 자본의 소비보다는 축적에 집중
3. 자본의 축적을 담당하는 창업가와 근로자를 묶을 신념이 없어진 현대사회는, 자본주의 붕괴 위험이 있으며,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함




자본주의 사회의 '락스타'

 대학교 교양강의에서, 현대 뮤지컬 파트를 배울 때였다. 교수님이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를 뮤지컬계의 '락스타'라고 불렀는데, 그 표현이 인상 깊었는지. 이후 그가 참여한 '오페라의 유령'이나 '캣츠'와 같은 작품을 볼 때마다 '락스타'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라는 제목 뮤지컬 제작에도 참여했다, 그 뮤지컬을 관람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부유하는 우리에게 있어, '락스타'는 누구일까? 나는 창업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산업과 기술의 정점에서 자본을 축적하고 이를 후대에 재투자한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인류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라이트 형제가 첫 비행 50년 뒤, 인류는 달착륙에 성공했다)


 그러나 모든 국가와 지역에서 자본주의가 같은 속도로 발전하지는 않았고, 이로 인해 국가 간의 격차가 벌어졌다. 그리고 이런 모순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받기도 하였다. 20세기 초에 주로 활동한 막스 베버는 지역별 자본주의 발달 차이의 이유를 '신앙심'에 주목하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신앙심을 증명하는 방식이 자본주의 발전의 속도를 좌우했다고 보았다. 그가 생각한 자본주의의 시작은, '비합리성의 합리화'였다.


뮤지컬 <Jusus christ Superstar>, 출처 : broadway.org


완벽한 신의 교리와 불완전한 인간의 사회

 14~16세기,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면서 교황이 속한 가톨릭은 세속이라는 큰 변화를 겪었다. 한 때 사람들이 절대적인 개념으로 여긴 성경의 교리 또한 이 시기 즈음부터 지극히 인간 중심적으로 해석하였다. 신의 세계는 완벽할지 모르지만, 인간들의 세계는 다르다. 불완전하고, 때로는 부패했다. 결국, 면벌부와 사제직 등은 교황청의 주요 '인기상품'으로 전락하였다.


 이에 대해 불만을 품은 자들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인물인 마르틴 루터는, 95개조 반박문 등 교리 중심으로 돌아가자는 내용의 서한을 유럽 각지로 보냈고, 이는 종교개혁으로 이어졌다. 이후 유럽에는 여러 종파가 공존하는데, 이 중에서도 정치, 경제학자인 막스 베버가 주목한 인물은 칼뱅과 프로테스탄트들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통찰을 정리한 책이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한 줄로 꼭 지나가는(하지만 시험문제로서는 인기가 없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이다.


마르틴 루터와 95개조 반박문(비텐베르크성 교회에 붙였다는 역사적 근거는 적음), 출처 : Ferdinand Pauwels의 그림)


칼뱅의 비즈니스 모델 : (발상의 전환) 종교적 '억압'의 강화

 종교개혁 이전의 신자들의 행동양식은,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고 → 회개하는 순서였다. 삶을 살아가며 나쁜 짓을 저질러도, 회계라는 의식과 노력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구원의 결과)

칼뱅주의 '예정설'의 핵심은, 인간은 이미 태어날 때 구원을 받을지 여부가 정해져 있으며, 우리의 삶은 그 증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구원의 증명)

p.s : 칼뱅 이전에도 예정설에 기원이 되는 교리는 존재했다. 대표적으로는 아우구스티누스주의.


이는 신자들에게는 매우 강한 심적 압박이었다. 본인이 구원을 받았다는  증명하기 위해서는 지극히 금욕주의적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신자가 한순간이라도 이에 대한 증명에 실패하면, 이후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도  사람은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칼뱅의 발상의 전환인 예정설의 교리는 칼뱅파 교회의 구심점이 되었고, 후대 많은 교회에도 영향을 주었다. 종교에 대한 표현으로는 매우 천박한 말이지만, 감히 말하자면 칼뱅의 예정설은 '성공'했다.

출처 : Ken Ellis and Robert Wuensche/Chronicle


구도의 뜻하지 않은 결과 : 자본의 축적

 칼뱅주의의 신자들, 프로테스탄트들은 구원을 증명하기 위해서 금욕적인 삶을 근면하게 살았다. 신자들의 자본을 호화로운 생활에 유출하지 않고, 본인의 가업이나, 공동체에 재투자하였고, 자본은 점점 축적되었다. 막스 베버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자본의 축적을 통해 자본주의가 촉진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막스 베버가 저서에서 표현한 '비합리성의 합리성'이다.

출처 : ichi.pro


비합리적인 합리성

사회 전체적으로는 자본의 증식이 지극히 합리적이며, 바람직한 일이다. 자본이 축적될수록 인프라가 확충되고, 산업이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개인의 삶으로서, 자본을 이용한 불로소득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호화스러운 생활을 포기하고, 사회와 산업에 재투자한다는 것은 지극히 비합리적이다. 허영심에 대한 욕구나, 나태의 유혹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는 이러한 개념을 '비합리적인 합리성'으로 표현하였으며, 초기 프로테스탄트들이 종교적 믿음으로 개인의 비합리성을 견뎠다고 주장했다.

결국 르네상스 시기 상업이 극도로 발전했던 가톨릭 국가들(베네치아, 스페인, 포르투갈)은 비교적 자본주의 후발주자가 되었으며 영국, 네덜란드, 미국과 같은 비가톨릭 국가들의 자본주의가 일찍 성숙해졌다.


이상이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를 요약한 내용이다.

이후 막스 베버의 논리적 전개는 실증적 검증이나, 변수의 통제와 같은 합리성에 대해서 일부 비판받았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이 겪는 비 합리성을 종교와 같은 정신적 동기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접근이었다고 생각한다.

(결론) 자본주의에 대한 오해

 자본주의는 모든 욕망을 자본으로 소비하는 사회를 뜻하지 않는다. 막스 베버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이 아닌 자본의 증식이 최우선인 체제이다. 자본주의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는 개인의 행복추구보다, 사회의 발전을 위한 자본의 증식이 필수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사회에서 묵묵히 자본의 축적에 임하고 있는 창업가들과 근로자를 묶을 철학/윤리가 없다면 자본은 소진되어 마르고,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최근에는 안정자산으로 불리는 부동산의 가격이 급등하고, 수년간 지속된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되는 등, 자본을 축적하는 창업가들과 근로자들의 의욕을 꺾는 소식만 들려온다. 특히 창업 관련 기관에 종사하는 근로자인 나의 경우는 이러한 변화가 더 피부에 와닿는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몰락에 대한 대책까지 우리에게 제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자본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참조 및 인용

유튜브 채널 부산의사 김원장(https://youtu.be/kawsBGIjch4)

네이버 블로그 내가, 지금, 여기(https://m.blog.naver.com/alrischa13/221130601019)

막스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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