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뇽 Sep 05. 2023

수구, 좋아하게 될 거예요

내 꿈은 국가대표

8월부터 시작한 수구. 한 달 정도 시간차를 두고 써 내려갈 테지만, 벌써 글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축축함이 느껴진다. 잔뜩 물을 머금고 쪼글쪼글해진 손으로 매일 느낀 점을 정리해서, 브런치에는 일주일에 한 번, 매주 수요일마다 올릴 예정이다.


수구를 하는 곳은 잠실 올림픽 경기장이다. 처음엔 이 위치가 가장 걸림돌이었는데 그도 그럴게 내가 사는 서울시 마포구에서 잠실 올림픽 경기장까지는 차로 왕복 2시간, 고작 50분 수구를 하자고 매일 월 수 밤을 길에서 그 2배 넘는 시간을 쏟아야 한다. 수구 전 후 씻는 시간까지 합치면 월 수는 수구만 하다가 잠드는 일정이다. 하지만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할 건 또 없다. 생각해 보면 서핑하러 발리까지 들락날락거렸는데 잠실쯤이야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 아닌가 싶기도?


잠실 올림픽 경기장에 가보니, 오히려 수구 덕분에 여기 오게 된 게 큰 행운이라고 느껴졌다. 안 가본 사람 손? 만약 당신이 강동구/송파구에 거주하면서 이곳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로또에 당첨됐는데 당첨금 안 찾으러 간 거랑 비슷합니다. 당장 잠실 올림픽 경기장에 와서 무엇이든 등록하세요. 필라테스, 헬스, 점핑부터 종류별 수영, 다이빙, 싱크로나이즈 그리고 수구까지. 강동구민, 송파구민 여러분. 부럽습니다. 마포구랑 바꾸실래요?


특히 물을 좋아하는 수속성 인간들은 반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5m 다이빙풀! 수영 못하는 분들은 기겁하겠지만, 수영 좋아하는 사람들은 매번 수영장에 풍덩 뛰어들고 싶은 마음을 고이 접는다. 천천히 발부터 담그거나 뛰어도 몸을 둥글게 말아 엉덩이 콩하는 정도에 만족하며 사는데, 여긴 머리부터 풀 다이브~ 해도 영원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깊이다. 이게 무서우면서도 해방감을 준다. 바다에서는 아무래도 염도가 있으니까 들어가면서도 저항이 있는데, 수영장은 그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그게 참 자유롭다. 특히 수영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 자유로운 무서움이라서, 나에겐 너무나 큰 장점이다.


깊은 물, 넓은 풀 말고 수구를 매력적인 이유는 또 있다. 어릴 쪽부터 나는 공으로 하는 운동엔 사족을 못 썼다. 초등학교 땐 축구, 중고등학교 땐 농구, 대학교에 와선 스쿼시와 테니스. 이 중에 가장 사랑했던 운동은 농구였는데 슬프게도 대학생이 되고 나서 같이 농구할 사람이 없었다. 처음엔 남자애들 사이에 껴서 몇 번 했는데, 체격 차이도 있고 서로 편하게 못하니까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요새는 운동도 어플로 같이 할 사람 찾고 그러던데, 내가 신입생이던 때만 해도 스마트폰이 흔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성별의 차이가 작고, 적은 수로도 할 수 있는 라켓운동 쪽으로 눈을 돌렸던 것 같다. 그런 내게 수구가 나타난 것이다.


물+공+팀스포츠 = 수구 사랑해요!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나와 비슷하다면, 당신도 분명 수구를 좋아하게 될 거예요!


라이프가드 자격증이 있는 워니라는 친구와 함께 수구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워니는 물에서 한 시간은 거뜬히 떠있는 대단한 물력을 지녔다. 처음엔 살면서 한 번도 구기종목을 잘해본 적 없다며 걱정했는데, 이게 왠 걸?, 살면서 가장 잘하는 구기종목이 수구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러니 공 스포츠라고 걱정된다고 하더라도, 한번 수구 물에 발 담가보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문제는 물과 팀 스포츠인데, 수구를 시작하고 수구 얘기밖에

안 하고 다니니 궁금해하는 주변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수영 못해도 수구 할 수 있어?


이 질문, 익숙하다. 서핑할 때,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었던 질문이다. 서핑할 때는 수영 못해도 가능하다며 사람들을 독려했었다. 물론 수영을 잘하면 서핑도 잘하겠지만 처음 강습받을 땐 허리 정도 오는 선, 발이 닿는 깊이에서 파도를 타니까 수영을 못한다고 서핑을 못 하는 건 아니라고 안심시켰다.


근데 수구는 다르다. 애초에 수구 수업 등록 조건이 평영 이상 수영 가능자인 것부터 각이 나온다. 평영이 뭐냐고? 자, 지금 수구 시작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굳이 굳이 평영 모르는데 자유형만 할 수 있는데 수구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할 수는 있다. 바로 나처럼. 꼬르륵거리면서 뒤처지면서 어떻게든! 하지만 평영까지 배우고 온다면 분명 더 좋은 시작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수영하고 오는 걸 추천!


우리나라에선 수영할 때 자유형을 가장 먼저 배우지만, 해외에선 평영을 먼저 배운다고 한다. 그게 우리나라 국민성이랑도 관련이 있는데, 평영은 동작이 크고 제대로 하기까지 시간이 걸려, 같이 배우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우선 빨리빨리 배워 헤엄쳐 나갈 수 있는 자유형부터 가르친다고. 이처럼 그냥 수영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치 보는데, 그게 팀 스포츠라면? 나의 수영이 우리 팀에 폐를 끼치는 것 같다면? 몸도 힘들고 숨도 찬데, 이것 때문에 정말 더 몸 둘 바를 모르게 된다. 맞다. 내 얘기다. 그래서 수영을 하고 오는 걸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팀 스포츠라는 데 있다. 나도 행복하고 모두가 행복한 길이 있다.


이렇게 산도 많고 물도 넘어야 하는 수구,

하지만 이 매력에 빠진다면

분명 좋아하게 될 거다.


평영도 못하면서 수구에 빠져버린 나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튼, 수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