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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l 22. 2024

매만질 수 없는 감정


한 가지 감정에 휩싸여버리는 순간이 있다. 마치 끈적한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절망스럽기도 하고 조급하기도 한 그것은 바로 짜증이라는 감정이다. 짜증이라는 덫에 걸린 순간에는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짜증나는 모든 것을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에 팔을 거칠게 휘두르지만 그럴수록 짜증이라는 감정이 나를 더욱 점령한다. 나는 포위되었다.


짜증이란 감정에 자주 포박되면서도 그때마다 낯설다. 마주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자기 낯빛이 영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날 선 나의 민낯은  누구와도 마주치기를 거부한다. 무더위에 땀범벅이 된 몸은 씻고 나면 개운하지만, 오물 가득한 이 감정은 어떻게 씻어야 하나.  


처음엔 나는 왜 이렇게 짜증이 걸까, 그 원인을 생각해보려 했으나 감정을 매만지기도 쉽지 않다. 달궈진 돌처럼 손바닥에 두기도 버겁다. 그저 툭 떨어뜨리고 걷는다. 이 감정은 만질 수 없는 거야. 부정적인 감정에 에너지를 소모할수록 블랙홀처럼 나의 혼을 빼앗기는 것만 같다. 시선을 내게서 거둔다. 이 감정에게 관심을 주지 않기로 했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랠 때는, 주의를 환기시켜야 한다. 어 이게 뭐야? 하며 아이 앞에 새로운 것이나 좋은 것을 보여준다. 기저귀를 갈아줘야 한다거나 어디가 아픈 긴급상황이 아닌 이상, 이 방법은 통한다. 그러면 아이는 그것에 시선을 빼앗긴 채 집중하기 시작한다. 관심이 자신에게서 그것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어른인 내게는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을 눈앞에 가져다주며 어르고 달래주는 사람이 없다. 짜증이라는 감정에 휘말릴 때는 어느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지만 그렇기에 바로 이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좋은 것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다.


부정적인 기운은 자석처럼 부정적인 것을 끌어당긴다. 좋은 글을 보려 해도, 좋은 영상을 보려 해도 소용이 없다. 내 눈이, 내 마음이 닫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닫힌 공간에는 곰팡이가 핀다. 짜증으로 얼룩진 마음에 바람이 깃들지 않으면 탕이 나고 만다. 그러므로 그저 약간의 환기만으로도 충분하다.




얼마 전 작은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매미들의 합창이 우렁찼다.


"어휴, 맴매미들이 왜 이렇게 우는 거야?"


한 걸음 앞서 가던 아이가 매미처럼 또렷한 목소리로 엄마에게 불평했다. 맴맴 우는 매미라서 매미를 맴매미라고 부르는 것도, 짜증이라는 감정을 칭얼거림이 아닌 문장으로 또박또박 표현하는 것도 그저 귀여웠다.


"맴매미들은 약 2주 뒤에 하늘나라에 간다는데 좀 참아주자~"


아이의 엄마가 매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이에게 상기시키며 아량을 호소했다.


"싫어어~ 너무 시끄럽고 갑갑해!"


아이의 솔직한 표현에 웃음이 났다. 그래, 어른들이나 참는 거지. 아이의 심정을 이해할 만큼 매미들은 어느 때보다도 시끄러웠다. 매미들이 단체로 공원에 소풍을 나온 것 같았다. 아이보다 빠른 어른의 걸음으로 나는 그곳을 빠르게 벗어났지만 이내 복병을 만났다.


내 맞은편에서 오던 아저씨는 나를 스칠 때 카악! 입을 벌린 채 가래를 끌어올렸다. 무언가 내 얼굴에 튀긴 했지만 조금 전까지도 비가 오락가락한 날씨였으니 빗방울이겠지, 애써 위로하며 안심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서 묵묵히 내 길을 걸었다.


아저씨를 보내고 다시 길을 걷는데 이번엔 또 다른 아저씨가 나타났다. 어디서부턴가 행선지가 겹친 아저씨는 담배를 피우며 나보다 몇 걸음 앞서 걷고 있었다. 그 연기가 고스란히 내 호흡기로 들어왔다. 보통이라면 빠른 걸음으로 그를 지나쳐 나의 갈 길을 갔을 것이다. 이번엔 그를 먼저 보내기로 했다.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고요하게 존재하고 있던 건물과, 길가에 미동도 없이 주차된 차들이 보인다. 맑은 얼굴을 하고 지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담배연기는커녕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도 슬쩍 올려다본다.


짜증이라는 감정 앞에 굳이 좋은 낯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나의 감정과 상반된 이미지를 갖다 대면 오히려 집어치우라는 손사래만 치게 된다. 좋은 낯을 보여주지 못할지라도 잠깐 멈춰서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뱉었던 한숨이 멈춰 선 그 자리로 돌아와, 시원한 바람이 되어 마음을 환기시킨다. 그러니 서둘러 지나쳐 밀폐된 공간에 꼭꼭 그 감정을 가두기보다는, 잠시 멈춰 서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해야겠다. 매만질 수 없는 감정 앞에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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