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읽는여행자 Jul 14. 2022

사랑하면 깨우치는 것

관계가 바꾸는 자아, 사랑이 바꾸는 사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만고 불변의 진리이다. 다만 세상에 닳고 치여 마모될 뿐이다.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는 것이다.


변화의 유일한 가능성이 있다. 깨우치는 것이다.'존재와 무'에서 샤르트르는 사람은 '무'의 존재라 했다. '나'라는 백지에 수많은 타자의 파편이 역사를 쓴다. 그래서 '유'의 존재로 향해간다.


사람과 사람이 만남에 있어 궁극의 희락은 무엇일까. 서로에게 작은 씨앗하나 심어두는 것이다. 변화의 씨앗 말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영력이다. 내밀하고 깊이있는 관계 속에서 서로의 지배권 안에 들어가면 변화에 노출된다.




혜원은 죄수복을 입고서 오히려 순수로 회귀한다. 속죄와 변화의 중심에는 선재의 광시곡이 있다. 격정의 멜로디와 광적인 리듬이 한 사람을 깨운다. 추악한 위선과 죄악을 씻어낸다. 그는 그저 하릴없이 피아노를 장난삼던 아이였다. 그에게 놀이가 아닌 예술의 반열에 오르게 한 사람은 혜원이다. 그를 발견하고 그를 깨워준 사람이다.




혜원은 도구로서의 삶을 대표한다. 주류사회로의 편입을 꿈꾸며 시스템을 지배하려한다. 하지만 거꾸로 그 목표의 도구가 되었다. 그러다가 도구가 아닌 존재 스스로의 의미를 찾았다. 음악을 통해서.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 선생은 인간의 본유성을 이야기한다. 조르바의 두목은 인간이라는 구더기가 세상 끝에서 발견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시다. 바로 예술이다. 인간의 본유성을 건드리며 서로를 깨웠다는데서 사랑의 궁극적 희락을 보여주었다. 사랑이 사람을 바꿨다.






매거진의 이전글 추상과 실존의 아득한 거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