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goodbye를 기원하며
“이해가 안 가. 난 다시 안 볼 정도로 싫어야 이혼해. 너는 뭐 아메리칸 스타일이냐?”
내 이혼 이유를, 상황을 본 친한 언니의 반응이다. 한국에서 이혼이란 ‘찢어지듯 헤어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죽어버릴 듯 미워하거나 끔찍이 상처받아야 한다는 듯이. 하지만 내가 그것을 벗어나려 한다고 해서, ‘너는 뭐 아메리칸 스타일이냐'며 웃어넘기더라.”
이혼은 국어 사전에서 ‘부부가 합의 또는 재판에 의하여 혼인 관계를 인위적으로 소멸시키는 일’이라고 되어있다. 나는 강력한 이혼 의사에 의해 상대방은 재산 방어 목적에 의해 재판상 이혼을 진행중에 있다.
내가 이혼을 결심한 이유는 명백하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혼이 빠진 몸’처럼 살았다. 말하자면 내 영혼이, 나란 존재의 자리가 이 삶에 부재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잃어버린 혼이 돌아왔다. 하지만 상대는 여전히 혼이 빠진 대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혼'을 시작했다—나는 진짜 혼을 되찾기 위해서, 그는 아직도 혼이 돌아오길 기도하면서.
어느 날 파격적 제목 책이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누가 왜 내 친구의 기억을 뺏나? C발’ 저 뒤는 분명 내가 아는 육두문자인 듯했다. 궁금증에 책을 읽어보니 지금 남편이 하는 행태가 AI와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재정적으로 힘들게 하거나 자녀 양육을 방치까지 하진 않았다. 다만 감정 없는 AI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그렇게 아이와 같이 수퍼마리오를 같이 하면 이 가족 관계가 계속되리라 생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뜬금없이 야구장에서 작가가 되길 결심했다. 나 또한 완전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각성이 일어났다. 이전까지는 그저 참고 인내하고 시간이 지나 죽음까지 버티는 삶을 살기로 했다. 이제는 그런 삶을 살 수 없다.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 고여 있는 파장이 없는 관계를 뛰쳐나가 내 삶을 재구성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숨막혀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몰려왔다.
누군가는 이혼을 유책 사유가 있어서, 서로 너무 싸워서, 보기 싫어서, 경제적으로 같이 있으면 궁핍해 진다던가 폭력에 따른 신체적 정서적 안녕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물론 상대방은 이 이혼요건에 들어가는 부분이 없진 않다. 그러나 그 부분도 아무일 없듯 넘어 갔었기에 이미 상대방에게는 그래도 되는 납득 가능한 가벼운 일로 안착되어버렸다.
참을 수 없어 대화를 요구하거나 상황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면 채희석 작가님이 얘기하는 ‘AI오류 현상이 남편에게 그대로 구동되었다. 이혼을 얘기했을 때, 소장을 받았을 때, 내가 답변서를 보고 감정적으로 항변했을 때도 정서적 공감보다는 무미건조한 인공지능식 대답만 돌아왔을 뿐이다. 채희석 선생님은 노래까지 만들었다. AI가 계속 대화를 진행하다가 다시 리셋이 되며 낯설어지는 경우가 있는 부분을 꼬집으면서 비판하는 내용이다. ‘친구’라 고 지칭하는 AI부분을 ‘남편’이라고 바꾸면 내 상황이 된다.
그는 대화에 감정이 없다. 서로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게 어렵다. 주변 어떤 아픔이나 슬픔을 최대한 보지 않고 느끼지 않으며 본인을 보호한다. 가장 가까운 자의 아픔이나 상황도 헤아리지 않는다. 그냥 AI시스템을 가진 인간 기계다. 그렇게 나는 감정 없는 기계와 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혼 결심 전에는 그런 사람이 아닐 거라 믿은 채 내 감정을 2배 이상 쓰며 이 가정이 감정적인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혼 소송 파탄 이후 동거 1개월 동안 나는 충격이 컸다. 감정을 억지로 쓰지 않고 그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감정적 리츄얼을 거두니 굉장히 내 어깨의 짐이 가벼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기계 인간과 살기 위해과도한 감정에너지를 써서 내 인생 전체가 감정 노동으로 인한 과부하로 인해 번아웃이 왔다는 걸 깨닫았다.
그 시간이 괴롭거나 예전 생활이 떠올라 눈물이 나오고 그리웠다면 내가 선포한 이혼 선언은 여느 결혼한 커플들이 겪는 재밌는 시끌벅적한 부부싸움으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반대였다. 내 결정이 옳았다는 뿌듯함 보다는 이제껏 버텨왔던 내 미련함에 조금 허무한 감정이 올라왔다.
추석 연휴 나는 가족 동반으로 부모님들께 가는 것을 강력히 거부했다. 대신 명절음식을 만들어서 정성을 대신했다. 친정에서 남편은 화장실에서 20년 동안 문제없던 곳에서 뜬금없는 무릎골절을 당했다. 어떤 사람은 그를 불쌍히 여기라는 신의 말씀이라고 해석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간 그의 결론이라고 본다. 도의적으로 친정은 그를 한 달 동안 돌봤다. 극심하게 이혼을 반대했던 친정부모님은 왜 한 달 살면서도 같이 살기 힘든데 미련하게 20년 버텼다. 감정이 없는 사람 같다는 말을 들었다. 오직 힘든 나의 감정만 있는 그 상대방 답변서도 그가 너무도 잘 나타나 있다. 그렇게 나는 그와 영원히 부부 로서의 연을 끝낸다. 국가가 기각이라는 판결을 내려도 그와 더 이상 살지 않겠다는 ‘이혼 사유’를 만드는 내 의지를 꺾지 못한다.
나는 다리 다친 상대가 따로 살긴 힘들 거 같아 사지 멀쩡한 내가 나와 독립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아침에 아이들 셋 등교 준비를 하고 하교 시간 맞춰 간식을 준비하고 빨래와 청소를 하고 막내 씻기고 재울 준비까지 하며 엄마 본분을 다 하고 있다.
다리 부상으로 재택 근무를 하는 소송진행중인 상대와 아이들 식사를 챙긴다. 지금 우리 집 상황을 지인에게 알리니 이런 평화로운 이혼은 있을 수 없단 다. 변호사 언니도 답변서 항변을 정신 바짝 들만큼 세게 반박해야 한다고 내게 언지 해 주었다. 나를 위한 진심 어린 조언이다. 그렇지만 상대방에게 구두로 결혼 파탄 의사를 전하고 협의해 달라는 직접 협상을 통해 해결하고 싶었다.더 이상 문서에 길이 남을 싸움은 하고 싶지 않다.
이게 그 미국식 쿨한 이혼이라면, 그래 나는 미국식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잘 헤어지고 이 style이 한국에 제대로 정착되면 K이혼, kool(cool)이혼 선례가 되지 않을까 작은 소망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