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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선 Sep 13. 2023

제 직장이 아름답다고요?

 나는 잠시 어떤 유명 관광지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다. 단기계약직이었고 단순 접객 담당이었으니 직장이라기보다는 '알바했던 곳'이라는 표현이 맞지만 나름대로 애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일했기에 근무하던 동안은 직장이라고 생각했던 곳이다.

 돈을 내고 보러 온 사람은 좋은 것만 보다 나가면 되지만 거기서 일해야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손님들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감탄하는 자리에서는 오늘 아침 깐깐한 사장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는 모양이다. 그 소리를 듣던 직원은 오픈 전에 화장실에 가서 엉엉 울고 왔단다. 손님이 밀려드는 휴가철이면 하루에 만보씩은 거뜬히 걷기도 했다.

 "쓰레기통 바로 옆에 있어요~!"

 라고 외치며 뛰어가고 있는데 길바닥에 카페 테이크아웃 컵을 놓고 도망가 버리는 건 애교. 외부음식 반입금지라는 건 말하기도 목 아프다. 저 쪽에서 허탈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동료의 손에는 담배꽁초가 들려 있다.

 "이걸 어디서 주웠는지 아세요? 금연 표지판 밑에서요. 다 목조 건물인데 땔감으로 쓰려고 하는 거야 뭐야."


 서비스직은 한 명의 손님 때문에 웃기도 하지만 단 몇 분 스쳐 지나간 손님 때문에 사람이 죄다 싫어질 정도로 진절머리가 나기도 한다. 많은 손님들이 나에게 해결되지 않을 의문을 던져주기도 했다.

 ‘이 먼 곳까지 여행을 와서 입장료가 비싸다고 트집을 잡고 짜증을 부리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이유가 뭘까. 내 얼굴을 보면서 침을 튀길 시간에 저 아름다운 풍경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가면 좋을 텐데.’


하지만 폭우라도 쏟아지면 발길이 끊기고 사람이 바글바글하던 창 밖에 빗방울만 떨어진다. 그럴 때면 그곳의 모든 게 갑자기 좋아졌다. 떼로 몰려와서 내 귀에 대고 소리를 질러대는 손님들도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겠어. 이 건물과 정원이 너무 아름다운 탓이지.


 지금도 종종 SNS에서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을 발견하곤 한다. 내가 구독하는 브런치 작가님도 좋아하는 인스타툰 작가님도 다녀와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걸 보면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곳임에는 분명하다. 누군가가 그곳을 아름답다고 말할 때 나는 조금 으쓱해지기도 한다. 모두가 찾는 맑은 날과는 다른 모습들. 아무도 없는 날씨와 시간, 그리고 계절에 그곳의 풍경이 얼마나 고요하면서도 아름다운지는 보기 전엔  몰랐던 것들이니까.

 그리고 개장 전의 텅 빈 복도에 아침 해가 낮게 드는 시간이 얼마나 평화로운 지도 떠올린다. 아름다운 벽화로 장식된 방의 구석에 세워진 가벽 뒤 백 룸에는 우리 집에서 쓰는 것과 똑같은 촌스러운 전등 스위치가 달려있다는 것조차도 나만이 아는 비밀처럼 느껴진다.

 실상은 나처럼 단기계약직으로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이 넘쳐나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다. ”제 직장이 아름답다고요? 알고 있어요. 그래서 좋아한답니다.“ 누군가에겐  중요하지 않은 일일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월급통장에 찍히는 숫자만큼이나 중요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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