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살아있는 김지영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더 미안한 일로 신랑과 다퉜다. 육아에 가사일에 공부에 업무까지 내 인생을 너무나 빡빡하게 채워놓아서였다. 쌓여둔 설거지를 끝내고 먼저 잠든 아가와 신랑을 두고 깜깜한 밤, 밖으로 나와버렸다. 왠지 모를 갇혀있는 느낌에 정처없이 어딘가 가고싶어서 차를 몰고 북악스카이웨이를 돌다가 갑자기 이 영화 생각이 났다. 지금의 나를 위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난생 처음 혼자 심야영화를 보러 갔다. 잔뜩 울 준비를 하고 휴지까지 챙겨서 양 옆 칸막이가 설치된 나홀로석을 예매했다. 누가봐도 집에서 애보다 나온 후줄근한 차림새로 영화관에 앉아있는 내 모습이 살아있는 김지영같더라.
영화는 너무나 현실적이라 영화가 아니라 다큐인가 싶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육아 선배들보다 오히려 김지영은 행복해보일 정도의 적당한 현실감.
영화를 보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들도 떠올랐다. 나는 내가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등학생 때 나를 이상하게 만졌던 경비아저씨, 중학생 때 봤던 바바리맨, 고등학생 때 만났던 오빠, 대학생 때 집 앞까지 쫓아오던 모르는 사람 등등. 몰카에 찍힌 내 모습을 확인하러 경찰서에 가야하면서도 그걸 농담처럼 웃어넘겨야했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냥 ‘똥 밟았네’하고 사소하게 넘겼던 나의 괜찮지않은 상처들이 떠올랐다. 영화의 모든 장면이 나 역시, 그리고 주변의 수많은 여성들이 충분히 겪고있는 일임에도 왜 이게 과장되고 왜곡된 이야기라 생각하는걸까?
특히 육아를 하면서 아무리 완벽한 남편과 도와주는 가족들이 있다 하더라도, 육아 자체에 대한 일차적인 부담은 엄마가 스스로 감내해야한다는 걸 많이 느낀다. 어쩌면 나 역시 사회적으로 학습되고 역사적으로 내재된 집단적 무의식 때문에 내 스스로 나의 가능성을 먼저 제한하고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육아와 커리어를 함께하고 싶다는 고민을 이미 진작부터 혼자 다 끌어안은 채로 내 삶의 계획을 세워왔고 지금 그에 맞춰 실천하고 있으니까.
그렇다고해서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에게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딸로서의 삶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깊고 넓게 경험하는 한번쯤 살아볼만한 인생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세상은 변화하고 있고 지금 내가 서있는 이 기울어진 운동장도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데 아주 미약하게나마 기여할 수 있는 삶을 살고싶다.
(스포주의) 결말이 사실 맘에 들지 않는다. 결국 여성이 하고싶은 일하며 성공하려면 혼자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해내야하는 것 같아서. 차라리 김지영이 회사에 복직하고 아등바등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니 본인만의 멋진 커리어를 가진 여성이 되기를 바랐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수많은 82년생 김지영들이 치열하게 살고있는 모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