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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민 Jul 30. 2020

나는 '나'라는 사람이자 엄마일 뿐

<엄마의 독서> 독후감


정말 좋은 엄마가 되려면 ‘좋은 엄마’가 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세상에 ‘좋은 엄마’는 없다. 30여년 동안 엄마가 아닌 상태로 살아오고, 그에 따라 자기 고유의 성향과 습속과 역사가 형성돼 있고, 행복과 성과와 명예를 추구하고 싶은 한 인간이 자신의 여러 역할 중 하나로 ‘엄마’를 받아들인 상태가 있을 뿐이다. (중략) 좋은 엄마가 되려면, 그냥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면 된다. 내가 좋은 인생을 살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내 감정에 충실하고, 다른 이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으면 된다. ‘엄마’가 나의 수많은 정체성 중 하나일 뿐, 나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되지 않도록 하면 된다.  - <엄마의 독서> 263페이지




엄마가 되고나서 가장 힘들었던 건 '엄마'를 잘 해내야할 것 같은 부담감이었다. 아이는 엄마의 거울이기에 행동 하나도 조심해야하고, 3살까지는 엄마가 옆에서 있어줘야 정서발달에 좋다라던가, 엄마는 항상 행복하기까지 해야 아이가 행복해진다던가. 그간 나도 모르게 세뇌되어진 ‘좋은 엄마’에 대한 이상향은 항상 나를 주눅들게 했다.


한동안 '엄마'와 병행했던 역할들에 지쳐 한계에 달했을 때, 마음이 회복될 때까지 최소한의 역할만 감당해보자며 2주 정도 나는 ‘나’를 쉬었다. 그런데 결국 그렇게 내게 남은 역할은 ‘엄마’밖에 없었다. 나만을 바라보는 작고 소중한 생명체를 돌보는 일만큼은 쉴 수가 없으니까. 그러나 막상 나를 가장 버겁게 만든다 생각했던 ‘엄마’의 역할만 남기고 모든 것을 걷어내니 진짜 ‘나’를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규정되었던 내가 아닌 진짜 나.


쉬는동안 자연스럽게 나는 책을 찾았다. 나보다 먼저 육아라는 치열한 세상을 살아낸 엄마들의 기록을 헤집었고, 사회에서 여성으로 감당해온 수많은 역할과 책임을 균형있게 관리하는 방법을 탐닉했다. 그 중에 이런 내 모습을 먼저 겪어낸 <엄마의 독서>라는 책을 만났다. 수은 씨가 출산 선물로 보내줬던 이 책은 이미 둘째까지 초등학교에 보낸 아들 둘 엄마의 기록이었다. 나의 먼 미래를 이미 모두 살아낸 선배의 독서기록은 이제 막 시작하는 내게 소중한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우리 모두, 우리 엄마 군단 모두 외롭게 혼자 분투하고 있었다. 수없이 투하되는 의무와 기대 사이를 누구는 직장을 다니며, 누구는 전업주부라는 외피를 쓰고, 누구는 대표 엄마라는 직책을 맡으며, 어떻게든 균형을 잡으려 애쓰며 위태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중략) 엄마라는 위치가 사회적으로 인정된 정식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직업이 아니지만 해야할 일은 많고, 그 일을 해내는 데 공식적인 직책이나 보수는 없으며, 다만 못 해낼 때 엄청난 비난이 따라올 뿐인 무겁고 희한한 자리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엄마들은 매 순간 혼자서 결정하고, 결과를 감내하고, 그러면서도 변함없이 엄마됨의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  - <엄마의 독서> 132페이지




수많은 시중의 육아서를 읽으며 오히려 완벽한 엄마가 되기를 요구받는 것 같아 괴로워했던 작가의 모습에서 나를 보게 된다. 사회에서 '엄마'는 그저 아이를 낳기만 하면 많은 것을 희생하고 감내할 모성애가 생겨나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그 사실이 얼마나 많은 엄마들을 자책하게 만드는지 나도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몰랐다. 나의 아이이기 때문에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건 당연한데, '좋은 엄마'가 되기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좋은 사람'에 대한 평가는 인생의 일부에서 나를 알았던 모든 사람들이 내게 내려주는 평가의 평균값이라면, '좋은 엄마'는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며 가까이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게된 단 한 사람이 내게 내리는 평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초에 '좋은 엄마'란 불가능한 존재이다. 따라서 나는 '엄마'의 역할이 내 정체성 그 자체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엄마'가 내 정체성 그 자체가 되는 순간, 나는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을 쫓으며 항상 괴로워하고 상처받는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인고의 세월을 통해 부모가 연마해내는 보석같은 존재, 키우는 당시에는 느낄 수 없지만 순간순간 부모의 삶에 활기와 애착을 심어주는 생명력의 화신. -  <엄마의 독서> 100페이지

내가 어떤 일을 해도, 내가 아무리 못난 사람이어도 무조건 나를 사랑한다. 그게 아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살게한다. 아이들 때문에 못 살겠다고, 아이들만 아니면 나가서 당장 뭐라도 될 수 있을 것처럼 굴었는데, 생각해보니 아이들 때문에 살고 있었다. -  <엄마의 독서> 102페이지




아이러니하게도 '엄마'가 내 정체성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내 삶의 이유는 결국 아이가 될 수 밖에 없다. 아들 둘 육아에 지쳐 잠시동안의 가출을 감행했다 들어와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를 안고 펑펑 울었다는 작가의 모습에서 또 한 번 나를 발견한다. 결국 나를 살게 하는 건 이 작은 존재의 행복이며 사랑이라는데 깊이 공감한다. 이미 엄마가 된 이상, 나는 '엄마'라는 정체성이 나를 규정하지 않도록 애써야하면서도 '엄마'라는 정체성 때문에 굳세게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좋은 엄마'는 될 수 없을지라도, '엄마'이기에 세상 그 누구보다 유일하고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더 많이 읽고, 고민하고, 성장하는 '엄마'말고 '사람'이 되고싶다. 나는 그런 사람이자 엄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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