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딸이 있어서 다행이다
여탕에는 이 곳에서의 내공이 쌓여야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때밀이 베드에서 오고가는 아주머니들의 전통적인 뷰티팁, 손동작 하나만으로도 생선굽듯 딱딱 돌아누울 줄 알고, 열쇠를 놓은 순서가 때미는 순서이며 내 순서가 되면 날 번호로 불러준다는 것. 이곳에서의 루틴이 빠삭하기에 슬쩍만 보아도 누가 어디쯤 하고있는지, 누가 새로온 사람인지 다 알 수 있다. 어쩌면 모두가 평등하게 맨몸으로 만나는만큼 아직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살 부비는 정이 느껴지는 곳이다.
처음으로 할머니와 엄마, 3대 모녀가 목욕탕에 갔던 기억이 난다. 목욕탕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던 어린 시절의 나와 번갈아 서로의 등을 밀어주시던 엄마와 할머니의 뒷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어른이 되어서는 엄마와 나만의 리추얼처럼 두어달에 한번씩은 꼭 함께 동네 목욕탕에 갔다. 그 시간을 우리는 너무나 좋아했기에 엄마는 항상 내게 ‘너 딸 없으면 나중에 목욕탕 같이 갈 사람 없어서 어떡하냐’며 진심어린 걱정을 해주기도 했다.
근데!!! 나도 이제 딸이 생겼다!!!!!
그래서 처음으로 또 3대 모녀가 함께 대를 이어 목욕탕에 갔다. 아직 고작 7개월의 그녀는 입장과 동시에 모든 아줌마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예전에는 이렇게 어린 아가들도 목욕탕에서 종종 볼 수 있었고 그래서 목욕탕에는 항상 플라스틱 아기욕조가 있었다. 요즘에는 사실 돌 전 아기를 대중목욕탕에 데려간다는 게 흔한 일이 아닌지라 목욕탕을 자주 찾는 아주머니들에게 우리 아기는 너무나 반가운 얼굴이었나보다.
대대로 목욕탕을 즐기던 집안의 손녀답게 도은이는 뜨거운 탕에 들어가서도 물장난을 치며 좋아했고 부글부글 버블도 신기해하며 까르르 웃었다.
이제는 나이가 든 나만큼 낡아버린 동네 목욕탕이지만, 이 곳에서 쌓아온 엄마와 나만의 내공이 있다. 이 모든 걸 이해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나의 딸이지만, 앞으로 너는 너만의 내공을 쌓아갈 날이 오겠지. 나의 목욕탕 라이프를 함께 해줄 수 있는 딸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너의 첫 목욕탕 방문, 따뜻한 물에서의 목욕 후 맨질맨질한 나무 평상에 누워있는 그 상쾌한 기분만큼은 기억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