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인생의 운전대를 잡고싶다

애 둘 엄마의 버스면허 도전기

by 윤지민

왜 하필 대형면허였을까.


스스로 일을 쉬며 편히 지내자 다짐하고 보내던 시기였는데, 갑자기 1종 대형면허를 따야할 것 같은 충동이 생겼다. 생각이 들었을 때 바로 실행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것도 내 문제겠지만, 그래서 도전했고 두 번이나 떨어졌다. 대놓고 3일 완성이라는데, 같이 본 사람들 중에 나만 계속 떨어졌다.


평생 난 실전에 강한 사람이라 믿어왔는데 연습에서는 계속 합격점을 받다가도, 본 시험에서는 긴장을 많이 했는지 어이없는 실수로 실격을 당했다. 딱히 내 인생에 큰 변화를 줄 자격증도 아니었는데, 목표한 것을 목표한 시일 내에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 생각보다 내 감정을 크게 건드렸다. 그래서 다른 그 어떤 도전에서보다도 이번 실패는 더 슬펐고, 나도 모르게 펑펑 눈물이 났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단순히 버스를 몰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크고 무거운 차를 다루는 일, 그것은 곧 크고 무거운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내가 직접 잡아보고 싶다는 갈망의 투영이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두 아이를 내 손으로 직접 키우고싶다는 욕심 혹은 그래야만한다는 심리적 압박은 스스로 나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뭔가에 몰입하고 성취해야하는 시점에 지레 먼저 포기하게 만들었다.


내가 이뤄내지 못한, 내가 포기해버린 가능성에 대한 보상으로 자꾸 출산과 육아를 들먹이면서도 속으로는 또 한번 자책했다. 아이가 없었다면 이룰 수 있었을까, 그냥 내 능력이 모자란 건데 핑계는 아닐까, 어쨌든 이 모든 건 결국 내 선택이었는데.


누군가가 보기에는 나도 임신 출산 육아를 하며 하고싶은 걸 다 하는 삶처럼 보이겠지만, 그건 이미 내가 임신 출산 육아와 내 삶을 병행하기 가능한 수준의 일들만 해왔기 때문일수도 있다. 그렇게 하기위해 나도 모르게 스스로 먼저 포기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내지 못했던 일들이 있겠지.


여성으로서, 또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한 행위와 대형버스를 모는 행위는 정반대의 성질을 지녔다. 뭔가를 항상 포기해왔다는 결핍감은 지극히 남성적이고 통제적인 성질의 버스 운전 도전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힘, 주도권, 독립성에 대한 무의식적 욕망의 발현이랄까.


그러한 도전이었기에 그 어떤 것보다도 한번에 성공하고싶었는데, 그렇지못한 상황에 내 안에 오랫동안 눌려 있던 감정들이 터져 나온 것 같다.


버스면허 도전은 결국 실패로 끝났고, 그 도전은 이제 장기화되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뚜렷하게 만날 수 있었던 건 바로 날 것의 나, 연약하고 불안한 나 자신이었다.


나는 완벽하게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며, 오히려 모든 걸 통제하지 못하는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한다는 것. 성공과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 내 마음이 움직이는 메카니즘을 이해하고 성찰하는 과정이 더 의미있을 뿐이다.


이렇게 아직도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 그리고 이 과정은 언제 어떻게 겪어도 슬프고 지난하기에 더 아름답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