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누군가의 고민을 훔쳐보았다.
삶의 여정 중에 있음 직한 건강한 고민 글귀 속에서 눈을 사로잡는 부분이 있었다.
고수에게 삶의 진리가 단순하다면, 욕심 많은 하수에겐 모든 것이 복잡하다.
스스로 욕심 많은 하수라고 낮추며, 어수룩해 보이는 자신의 경험치를 토로하는 이 문장에서 이미 센스 있는 단어 선택의 균형을 느낄 수 있고, 하수가 썼다기엔 아주 탐미하기 좋은 글귀였다.
우리 곁에서 오랜 시간 공들여 연마한 인생의 고수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옛날과 달리 이들은 인격도야를 위해 저 산골에서 속세와 담을 쌓는 것도 아니고, 정말 어느 외진 곳에 숨어있을 지라도 미디어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지구 반대편 사막 끝의 누군가에게마저 우리는 배움과 영감을 얻을 수 있다. 3대를 물려받은 섬나라 시골 도시의 라멘집 장인이라던가, 오랫동안 붓글씨를 연마한 캘리그라피스트, 또 지침으로 삼을 만한 유명 작가나 철학과 교수님의 심플한 한마디는 다양한 방식으로 출현하여 우리 각자의 삶을 울린다. ‘존버는 승리한다.’ 말은 이런 이들의 발자취를 좇는 다음 세대의 고수들을 통해 21세기의 격언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에겐 정말로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순한 진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압도적인 한마디 Less is More (간결한 것이 더 아름답다)라는 말로 모더니즘을 열었고, 미니멀리즘의 대표 격인 일본 브랜드 무인양품 또한 “이것만으로 충분하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시계가 더욱 흐르면서 우리는 더더욱 간결함과는 반대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한 분야가 보다 세분화되거나 새로운 기술을 통해 없던 분야가 생긴다.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다빈치가 활약하던 시대와 달리, 이제는 고도로 세분화된 전문가들의 시대이다. 옛 시대의 초인은 책 속에 묻어두었다. 그럴수록 ‘단순함’ 이란 말만 분리되어 신화가 되어갔다.
우리가 복잡함을 멀리하고 단순함을 칭송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중 설득력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이미 우리의 일터와 주변은 복잡하고 적어도 쉬는 동안 만이라도 덜 복잡했으면, 머리를 덜 썼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유한함’ 때문이지 않을까?
최근에 넷플릭스를 통해 즐겨본 <얼터드 카본 : Altered Carbon>이란 드라마가 있다. 저장소(Stack)란 장치를 통해 기억과 자아를 저장하여 다른 육체로 옮겨갈 수 있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이자 무려 969살까지 살아서 장수의 상징이기도 한 ‘므두셀라’의 이름을 딴 계층이 모든 세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한다. 이들은 거대한 부와 권력 그리고 복수의 클론을 보유하며, 지상에서 평범하게 사는 그라운더들과는 달리 하늘에서 영생과 무한에 가까운 욕망을 실현하며 누린다. 신을 몰아내고 이미 그 자리를 차지한 그들에게 최고 수준의 예술을 즐기는 것은 기본이다. 상상 이상의 욕정을 시도한다던가 (이를테면 엄마 클론에 들어가서 하인과 관계하기) 심지어 닿으면 치명적인 독이 몸에 퍼져서 금방 죽음에 달하는 이들이 거주하는 구역에 가서 사탕을 나눠주며 구세주가 되는 체험마저 이들에겐 일종의 취미 활동이다. 주인공이 옛 시대의 저항군으로서 엄청나게 훈련된 군인이자 무투가의 현생으로 나오는데, 이들에게 이런 한 분야를 빼어나게 갈고닦은 고수는 그저 희소가치가 뛰어난 최상급 소유물일 뿐이다. 이들은 제약 없는 시간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인간의 복잡성 안에 감추어진 여러 욕망을 그대로 끄집어 드러낸다.
만약에 우리가 이와 같은 기술의 발달로 무한에 가까운 시간을 누리게 된다면 어떨까?
고도의 정신력을 통한 뇌의 연산이 가능해서, 지금 정도의 복잡한 일상은 간단하게 해치우고도 집에 돌아와서 프로이트의 철학서 읽기를 SNS에 사진 올리는 것처럼 할 수 있다면?
드라마의 결말에 한 므두셀라가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한마디 말이 여운으로 남는다.
나는 믿었다. 내게는 절대 넘지 않는 선이 있다는 것을...
겉으로 드러나는 하나의 심플함, 한 주기의 인생의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될 신념, 그 이면의 것들까지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올 때에 우리가 찬양하게 될 것은 무엇인가?
드라마의 주인공이 가진 복잡함이나 돌발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순발력일까?
아니면 잊힌 초인의 부활일까?
혹은 그 시대에 새롭게 강림한 신일까?
십 년 전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열었고, 이제 희대의 바이러스를 통해, 우리는 한 번도 인류가 걸어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되었다. 누군가는 코로나 19 이후의 시대에 더 이상 전문가는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이제 더 이상 한 분야에 존버 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하기까지 한다. 므두셀라가 모든 것을 손에 쥐었을 때의 모습은 차라리 욕심 많은 하수에 더 가깝다. ‘단순함’을 찬양할 시간의 끝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의 일상글자는 ‘욕심 많은 하수’ 다.
오늘을 살아가는 가치 있는 하수들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하수는 특별히
昰 여름, 고대 왕조 하나라, 옳다의 뜻을 가진 하와
樹 나무 수의 조합으로 변형시킨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