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함께하는 아빠의 수다 04 - 1
아빠는 '어설픈 덕후'다. 덕후란 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빠진 사람을 의미하는 일본말 '오타쿠'의 한국식 발음인 '오덕후'의 줄임말. 어설프다고 말한 이유는 '미칠 정도로 빠진'이라는 말에 내 스스로 그렇게 자신이 없어서이다. '어설픈 덕후' 또는 '어리버리 덕후'에 가깝지.
내 덕후질은 '기타치고 노래부르기'에서 출발한다. 중3 연합고사가 끝나는 날부터 시작된 기타치기는 교회에서 여학생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아빠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작은 키에 어설픈 얼굴이 어디 갔겠니? 이 놈의 '저질 DNA'는 너에게까지 이어졌으니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전체적으로 '없어보이는' 아빠의 신체적 핸디캡은 성인이 되어서 '있어 보이기'에 혈안이 되는 단초가 된다.
기타치는 덕후질에 열심이던 아빠는 몇 개월만에 학교에서 '기타 좀 치는 애'로 입소문을 타는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럼 교회에서 여학생들의 관심을 좀 끌었냐고? 아니. 아빠가 모든게 좀 늦되는(좋게 말하면 대기만성) 성향이잖아. 기타 좀 치는 것으로 여학생들의 관심을 끌기는 상당히 후달렸던 것으로 기억난다.
사춘기를 고2가 되어서야 했으니 고교생다운 꼴을 고3이 되어서야 갖추었다. 목소리도 조금 굵어지고 대화하는 수준도 좀 나아지니 여학생들의 관심이...... 글을 쓰면서도 그리 자신이 없구나.
DNA가 무섭다는 것을 노래 부르기에서 발견한다. 나는 고등학교때까지 노래를 엄청못했다. 고교시절 그룹사운드 할 때 멤버들이 마이크를 아예 내 앞에서 치워버리고 연습을 하더구나. 22살이 되어서 노래 잘한다는 말을 처음 들어봤다.
솔직히 너도 고등학교 시절까지 노래는 아니었잖아. 너도 20살이 되어서야 노래 잘한다는 말을 들으니 참 DNA가 무섭다.
그나마 니가 아빠보다 1~2년 빨리 노래 잘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은 너의 피나는 덕후질이 바탕이 된거지. 그래도 잊지는 마라. 저질 DNA를 물려준 미안함에서 생긴 아빠의 풍부한 지원이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기타 가르쳐주고 녹음장비도 사주었으니까 말이야.
<덕후질의 결정체, 홈레코딩으로 만든 태교앨범>
니가 엄마 뱃 속에 있던 1998년 여름날, 나는 갑자기 태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생뚱맞게 부산을 떠는 경향이 있잖아. 당장 태교를 하지 않으면 뱃 속의 아이가 바보로 태어날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들더라고.
"그래 결심했어. 태교음악 앨범을 만들자. 바보같은 아이로 태어나게 할 수는 없어!" 이런 소리들이 가슴에서 쿵쾅 쿵쾅 울려퍼지는거야.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 "평범한 태교음악으로는 아이에게 감동을 줄 수가 없다. 아빠인 내가 직접 기타치고 노래한거라야 한다. 그래야 의미가 있지!"
서둘러야했어. 한시가 급하니까. 태교음악 앨범을 만들려면 장비들이 필요했을거 아냐. 다행히 녹음장비가 있더라고. 음악 감상용 카세트 1개(편의상 A라고 부르자), 그리고 어학용 카세트 1개. (B라고 부르자)
녹음을 위한 작전은 이랬어. 먼저 A에 테이프를 넣고 기타반주를 하면서 노래하는 것을 녹음한다. 녹음한 것을 A에서 플레이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B의 녹음 버튼을 누른다. A에서 나오는 기타반주와 노래소리를 들으며 아티스트인 나는 노래의 화음을 넣는거지. 그러면 B의 테이프를 플레이시키면 기타반주 + 노래 + 노래화음이 나오잖아. 그것을 또 플레이시켜 놓고 A의 녹음버튼을 누르고 기타 애드립을 친다.
말로 해놓고 보니 별거 아닌거 같다만 믹싱장비 하나없이 멀티채널로 녹음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한 곡 녹음하고 거의 몸살을 앓을 정도였다. 녹음 해놓고 소리크기가 전혀 맞지 않아 다시하기를 수십번. 테이프를 이 카세트 저 카세트 왔다갔다 하다가 거의 완성된 카세트를 넣고 녹음버튼 누르는 바람에 완전 말아먹기도 하고. (이건 안해 본 사람은 그 심정 모른다)
그래서 태교 앨범이 탄생했어. 노래는 총 4곡을 넣은 앨범이었지. 니 엄마는 이 노래를 카세트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들었다. 수백번. 왜냐하면 이것만 틀어놓으면 뱃 속에 있는 니가 그렇게 잘 놀더래. 이 앨범은 니가 세상에 태어나고도 큰 역할을 했다. 찡얼대고 울던 애가 이 앨범만 틀어놓으면 가만히 듣고. 한참을 듣다 새근새근 잠들고 말이야.
몇 년전에 이 테이프를 발견했는데 그 모진 세월을 버티고 소리가 나는게 너무 신기했어. 얼른 MP3로 만들어 두었지. 그 중 녹음 상태가 가장 괜찮은 곡으로 들려줄게. 녹음상태는 거의 '개판'에 가깝다.
해바라기 - 우리는 한사람
듀엣 '해바라기'의 노래들은 꼭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7080세대의 감성을 이해하는데 좋은 노래들이 많아. 노랫말들이 시적이면서 의미가 있다. 당시 책 좀 읽고 교양있어 보이는 사람이면 거의 해바라기 노래를 좋아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도 '있어보이기' 위해 좋아한다고 말했지. 그렇게 말하고 보니 진짜 좋아지더라. (말은 참 무서운거야)
이 곡 이외에도 '내 마음의 보석상자' '행복을 주는 사람' '사랑의 시' '모두가 사랑이에요' '사랑으로' '갈 수 없는 나라' 들을 추천해주고 싶네. 제목을 나열하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기도, 아련해지기도 한다.
아빠의 덕후질은 늘 대충대충 어설펐다. 그런데, 진짜 미치고 빠져든 때가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편에 하도록 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