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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치 Jun 05. 2018

누가 스타트업에 로망을 입혔나

스타트업, 사랑과 증오 사이 - 창업가가 아닌 '직원'의 관점에서

- 2018년에 쓰고 (메인에 노출되어 부담감에ㅠㅠ) 비공개로 돌렸던 글을 2022년에 다시 발행합니다. -


2016년 1월, 25살, 지인 창업가의 제안으로 어쩌다가(?) 스타트업 마케팅팀 팀장이 되었다.

2017년 6월, 나 포함 직원 6명이 모두 권고사직 처리로 단체 퇴사했다.


'애증', 나에겐 이 단어만큼 스타트업과 잘 어울리는 단어는 없는 것 같다.

 나에게 모든 창업가들은 늘 존경의 대상이었고, 스타트업 일원으로 일한다는 것은 자부심 있는 일이었다. 스타트업 마케터란 업의 무게 때문인지 심한 스트레스로 악몽을 꾸기도 하고, 잠 줄여가며 일하다가 건강에 이상 징후까지 나타나기까지도 했지만, 나는 스타트업을 사랑했다. 스타트업 대표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분위기에 취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스타트업은 언제 폭발해 사라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보인다. 불안 그 자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내가 사랑했다던 전 스타트업은 증오한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반면교사의 측면에서 복기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또, 나처럼 어린 나이순수한 열정만을 가지고 스타트업에 '취업'ㅡ창업 말고ㅡ하려는 누군가를 위해 쓴다. 단 1g이라도 적당한 의심과 경계의 시선을 섞었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참고사항※

(1) 고작 1년 반간 경험한 한 곳의 스타트업으로 모든 스타트업을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훌륭한 스타트업도 많습니다. 제 경험 사례를 통해 스타트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미리 인지하고, 향후 스타트업 취업에 참고하시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2) 개인적인 경험인지라 다소 감정적으로 치우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건전한 비판, 감사히 듣겠습니다. 저는 스타트업을 진심으로 사랑하던 제 자신이 그립기 때문입니다.

(3) 특히 스타트업 대표님들께도 직원들의 시선과 감정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스타트업의 로망은 어디에서 왔나.

 존중과 자율이란 가치를 중시하는 나에게 조직 문화는 매우 중요했고, 그를 충족하는 아래 조건들은 나를 계속 스타트업에 묶어두었다. 솔직히 내가 꿈꾸던 스타트업의 모습이었다. 좋은 조직과 관계를 만드는 요소들임에는 틀림없다.


1. 서로 신뢰하는 관계

 직원들부터 대표님까지, 우리는 서로 의지했다. 믿고 의지해야만 했다. 자사 서비스와 상품 기획, 마케팅부터 외주 프로젝트 수주와 실행까지... 모든 일은 처음이었고 모두가 헤맸기 때문이다. 모든 프로젝트에 혼재된 두려움과 불안을 모두가 조금씩 짊어져야만 했다. 우리는 수많은 작은 실패과 몇 번의 작은 성공을 통해 함께 성장해 나갔다. ㅡ 날 믿어주고 전폭 지지해주는 대표님, 부족한 팀장인데도 따라주는 팀원들에겐 늘 감사했다.


2. 수평적인 조직 문화

 권위적이지 않은 대표님 덕분에 사무실엔 건전한(?) 장난과 논쟁이 자주 오갔다. 쉬는 시간엔 직원들이 대표님을 놀려먹기 일쑤고, 회의 시간엔 직원들이 대부분 편안하게 불만을 얘기했다. (대표님 지인들이 많았던 점도 영향이 크다.) 대부분의 의견들은 수용되었고, 수용된 의견들은 빠르게 실현되었다. 대부분이 상상하는 그런, 진짜 가족 같은 스타트업이었다.


3. 자율적인 근무 환경

 나는 팀장이라는 이유로 주 2일 재택근무의 특권을 누렸다. 팀원들도 약 6개월 근무 이후 주 1일 재택근무가 가능했다. 사무실이 답답하면, 얼마든지 근처 카페에서 근무했다. 아이디어 영감을 얻겠다며 조기 퇴근하고 서점에서 온갖 책들을 뒤져보기도 했다. 업무 방식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동의를 얻으면 바로 실행할 수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마케터, 기획자들이 꿈꾸는 업무 환경일 것이다.


※제가 스타트업 대표의 친한 지인이었고, 팀장이라는 리더의 직책을 맡았기에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이었음도 밝힙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삐그덕 대기 시작했다.

위 조건들이 갑자기 반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스타트업, 무엇이 독이 되었나.


변질1. 서로 신뢰하던 관계, 의심하는 관계로 : 소수의 특권 뒤 '숨은 차별'

 스타트업은 대표의 권한이 클 수밖에 없다. 결정적인 문제는 대표의 여자친구 입사 이후로 터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만천하에 알리듯 회의실에 공개적으로 올려두고 간 그녀의 연봉계약서를 직원들이 발견한 이후였다. 담당 직무와 다소 무관한 이전 경력을 인정받은 듯한 연봉. 그것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이전에 입사했던 어느 디자이너는 꽤 오랜 그래픽 디자인 경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웹 디자인' 담당 직무 연관성은 떨어진다는 이유로 경력 인정을 받지 않고 입사했었다. 때문에 '불공평성'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정말 놀랐던 점은 우연히 알게 된 팀원들의 열정페이에 가까운 급여였다. 그중 누군가가 생계를 위해 잠시 투잡까지 뛰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당시 나는 이전 회사 경력 덕분에 비정상적인 수준의 급여는 아니었는데, 신입으로 입사한 팀원들은 회사가 제시한 기준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창업자 입장에서 인건비는 매우 부담이 가는 부분인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대표의 야근을 당연시하는 생각과 더 많은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는 태도였다. 그는 늘 희생적인 태도로 일하는 나와 디자인팀 팀장을 추켜세우며 간접적으로 남은 팀원들을 깎아내리듯 말했다. 충분히 열정적으로 일하던 팀원들에게 그에 걸맞은 보상을 주지 못하면서 더 많은 헌신을 요구할 자격이 있었을까? 회사 재정에 맞는 채용도 그의 책임 아닌가? 역으로, 나는 소수의 특권을 누리면서 이면에 존재하는 차별을 보지 못한 건가? 이 사실을 알고 스스로에게도 무척 화가 났다.

 개인적으로 더욱 놀랐던 건, 나름 이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며 대표에게 표면화했을 때,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대표의 표정과 태도였다. 이토록 창업가와 직원의 입장은 다르다. 뭐, 사람은 원래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법이지.


변질2. 수평적인 조직문화, 서로 탓하는 분위기로 : '책임전가'가 낳은 파멸

 위의 문제로 인해 사내 분위기는 불안정해지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진행하던 메인 프로젝트의 계약 문제도 터지기 시작했다. 당시 메인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던 나는 개발 업체와 반복되는 트러블로 씨름하고 있었다. 이미 많은 문제들로 인해 프로젝트 마감이 딜레이가 되고 있는 중이었는데, 개발사는 계속 계약서 조건과 다르다며 뒷짐만 지고 있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이 계약서에 있음을 파악하고 대표에게 건의했으나, 대표는 오히려 나를 탓하며 책임을 전가했다. 처음으로 마주한 대표의 무책임한 모습에 경악했던 당시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처음 해보는 서비스 기획을 혼자 끌고 가기 위해 3개월 이상 주말과 잠을 포기하던 내 입장에선 억울한 감정이 특히 컸던 것 같다. 동시에 정말로 서비스 기획이 미숙한 내 탓도 있을지 모른다는 자책감도 함께 일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무능함과 억울함은 '책임전가'로 이어졌다. 한 번 탓하기 시작하니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는 애초부터 계약서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은 문제라며 대표를 탓했다. 그러자 대표는 이번엔 나에게서 화살을 돌려 개발사를 저격했고, 나는 개발사 매니저의 심기를 건들지 않기 위해 개인적으로 사과하는 상황까지 이르기도 했다. 이제껏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대표의 잦은 강의 출장까지 문제시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위의 불공평성 문제까지 겹쳐 내부 불신은 고조되었다. 모든 사소한 게 불만으로 변질되었다.


총체적 난국으로 치닫다.

 그리고 이후, 위 계약 문제가 재정 문제까지 악영향을 주어 월급을 줄 수 없는 상황까지 다달았다. (이 부분에 대해선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계약서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크게 느꼈던 사건이었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당연한 상황이지만, 대표는 필요한 사람들만 붙잡았다. 문제는, 뒤에서 몰래. 앞에선 우리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척하며. 나는 당시 심지어 월급을 포기하면서까지 근무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고임금이었던 나는 이미 그의 선택지에서 밀려나 있었다.




스타트업 로망? 결국 나 자신이 만드는 것.

 나는 당시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 단지 과도기일 뿐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친한 지인인 대표에게 문제를 인식시켜주면 극복할 방법을 함께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망상)했다. 이 과도기를 넘으면 더 끈끈한 조직이 될 것이라, 우리가 그린 비전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착각)했다. 그래서 누군가 총대 메고 나서서 문제 인식을 시켜야 한다면 그게 나라고 생각(착각)했다. 나는 왜 그게 내 나름 정의라고 생각했던 걸까. 내가 다소 감정적으로 흥분하기도 하며 대표에게 내부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그에게 실망하기도 했던 건 그만큼 서로 믿었고 응원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

우리는 그저 비즈니스로 엮인 관계였을 뿐이었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걸까?


로망은 결국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혼자 느낀 배신감에 속상해서 엉엉 운 날,

갑자기 허리까지 무너져 이틀간 걷질 못했다.

(병도 내가 만들어 낸 거ㄷ..ㅏ)



(특히 대학생분들)

스타트업에 로망을 입히지 마세요.

 위의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아래의 세가지 조건에서 파생되었다고 생각한다. 1) 임금을 제대로 협의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만이 생겼고, 2) 역량 이상의 일을 진행하다보니 서로 탓하는 책임전가의 문제가 생겼으며, 3) 지나친 애사심으로 인해 심리적 내상을 입은 것이다. 그러므로, 스타트업 취업 시엔 본 3가지 조건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1. 임금의 문제

 일부 규모가 큰 스타트업을 제외하고 초창기 스타트업의 저임금은 현실인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신입으로 스타트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경우, 낮은 저임금으로 계약한다면 이후 이직 시 불리한 점이 많아 보입니다. 전 회사 연봉이 협상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후에 후회하지 않도록 현실적인 조건도 꼭 잘 확인하셨으면 좋겠습니다.


2. 역량의 문제

 개인적으로 스타트업은 '경력자'들이 역량을 '펼치기'에 적합한 곳이지, '신입'이 역량을 '키우기' 위한 곳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실무 경험 없이 스타트업부터 뛰어들면 분명 얻는 것도 많지만, 제대로 배울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내공을 가진 경력자가 있는지, 입사하면 함께 일하게 될 상사와 팀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꼭 수소문하세요. (아, 사비 털어 독학해서 실무에 적용하면, 그것 또한 나름 성취감 쩖^^...)


3. 애정의 문제

네,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문화 좋죠. 위에서 보셨듯, 너무 지나친 애착만 가지지 마세요.

결국 회사고, 직장입니다. (ㅠ_ㅠ)


※초기 스타트업은 결국, 대표의 역량과 지시에 따라 모든 업무가 움직이고, 대표의 가치에 맞춰 정책이 마련되며, 대표의 성향에 맞춰 문화가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대표가 어떤 성향이고, 어떤 역량을 가진 분인지 최대한 잘 파악하고 입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사실 대표 여자친구 입사 문제도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에 발생하기 쉬운 특수성 강한 문제였으니까요.)




네, 여기까지,

전 스타트업 회사 대표 돌려 까기 글이었습니다. (쓰고 보니 욕하고 싶어서 쓴 글 같다....)

제 나이 25부터 26, 인생의 많은 점들을 배우고 갑니다.

이것 역시 추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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