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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치 Dec 10. 2022

스타트업 회고록 : 스타트업이라는 야생에서 보낸 6년

스타트업부터 프리랜서, 그리고 대기업까지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나는 소위 '스타트업 뽕'에 찬 대학생이었다. 대기업 취업은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저 '내 실무 능력'을 키우는 것에 조금은 미쳐있던 때였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스타트업 대표들의 눈에 많이 띄었던 것 같다. 대표의 제안이 내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되면 일단 근로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그렇게 5곳의 스타트업 조직을 경험하게 된다. 대기업 규모까지 합치면 8년 간 무려 7개의 기업을 경험했으니, 매해 새로운 회사를 다닌 것과 마찬가지. (그간 얼마나 방황을 했던 건지 눈물이 난다...)


그동안 스타트업 조직에서 4개의 신제품을 출시했고, 0원에서 시작해 억 단위의 매출 성장도 경험했다. IT비즈니스에 도움되는 일이면 닥치는대로 공부하다보니, 디지털 마케팅부터 서비스 기획까지 업무 필드를 넓혔다. 자금난 때문에 전직원이 한번에 권고사직되는 사건도 경험했고, 또 다른 대표들의 스카웃 제의도 수차례 받았다.


내 20대의 웃고 울었던 추억은 모두 콘크리트 사무실에 있다. 나에게 회사는 내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의 장이고, 비즈니스를 경험하는 배움의 장이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의 장이었다. (덕분에 연애는 포기했지만 ^^) 만 서른의 끝자락을 기념하며, 내 20대를 까만 철자들에 꾹꾹 눌러 담아 고이 묻어두고 싶어 이 글을 쓴다.


또한, 스타트업을 고민하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도 담는다. 한때 스타트업 지긋지긋하다며 대기업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도 했었다. 실제로 지금 대기업에서 신사업 기획을 하고 있으나, 나는 또 좋은 기회가 닿는다면 스타트업 세계에 다시 뛰어들 마음이 있다. 나에게 스타트업은 기회와 도전의 장이었다는 건 틀림 없으니까.




스타트업 뽕에 취했던 이유요?


스무살 때부터 뭐가 됐든 '기획'일을 하고 싶어했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고, 내 성향과도 잘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 그리고 그 일의 끝판왕이 '사업'이라 생각했었다. 본인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해 사업화하는 창업가들이 존경스러웠고, 그런 정신력과 리더십을 배우고 싶었다. 


뿐만 아니라, 자유롭고 진취적인 스타트업 문화도 멋져 보였다. 2010년 초반까지만 해도 대기업들은 여전히 보수적인 문화가 강했고, 특히 대기업 사원들은 '부품'으로 비유되곤 했었다. 그에 대비해 구성원 개개인들의 자율성과 권한을 강조하는 라이징 스타트업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었던 듯하다.


또한, 실제로 지난 10년은 스타트업의 해였다.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모바일 시장이 열리면서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우우죽순 생겨났고, 투자금이 미친듯이 몰리면서 일부는 유니콘 기업이 되었다. 카카오톡, 배달의 민족, 쏘카, 토스, 마켓컬리와 같은 스타트업들이 모두 이 시기에 탄생했다. 그런 기업들을 보면서 내가 속한 스타트업이 소위 로켓이 될 거라 여겼던 것 같다.


아, 그리고 나는 리더였다. 대표가 대부분의 권한과 결정권을 나에게 부여했고, 그래서 높은 이니셔티브를 가지고 일할 수 있었다. 작은 회사이기 때문에 나의 결정 하나하나가 회사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대단한 부담이면서도 영광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내가 실행한 것들이 수치 성장을 보일 때 큰 성취감을 느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스타트업을 사..사.. 좋아했다. 주중엔 자발적으로 새벽까지 일하고, 주말엔 실무 공부를 했다. 때론 '내 젊음을 갈아넣는다'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몰입해 일했다. 나는 내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고, 이 모든 고생들은 결국 미래에 빛을 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타트업을 겪어보니 남는 점


스타트업를 한 단어로 비유하자면, 그야말로 '야생'이다. 그래서 그 장점과 단점이 너무 극명하다. 야생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하다보니, 장점은 엄청난 독립심과 능동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고, 단점은 순진하게 뛰어들었다간 멘탈이 아작날 수 있다는 점.


일당백을 해야 하는 스타트업에서는 사수도 없이 처음 해내야 하는 일들이 많아서, 주경야독의 시간들을 보내야 하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이를 자기개발의 기회로 이용했다. 사비를 써서라도 강의들을 듣고 다음날 실무에 써 먹었다. 그 과정에서 배운 업무 지식과 스킬들은 모두 온전히 내 자산이 되었다. 또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끊임없이 터지는데, 그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곧 유연성을 기를 수 있는 기회였다.


반면, 번아웃이 올 확률이 매우 높아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을 수 있다. 일당백을 해야 한다는 점, 실행 즉시 결과를 보여야 한다는 점, 회사의 불안정성을 견뎌야 한다는 점이 엄청난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 이 과정에서 소위 경영진의 가스라이팅과 같은 태도도 경계해야 한다. 업무를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자책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객관적으로 업무가 정말 과중한 것일 수 있으니.


이러한 경험들은 대기업으로 이직하고 나서 오히려 더욱 빛을 발했던 것 같다. 조직개편으로 인해 업무 성격이 바뀌어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해내야 할 때도, 그 변화들을 두려워 하지 않고 금방 받아들였다. 스타트업에서는 일당백으로 여러 업무를 해내야 했지만, 대기업에서는 보다 업무 분담이 명확하기 때문에 내가 담당해야 하는 일 하나만 잘 해내는 것이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진다. (이런 말을 내 입으로 말하기 웃기지만) 덕분에 팀 내에서 금새 에이스로 통했다.




여전히 스타트업을 추천한다면


스타트업의 가장 큰 장점은 상대적으로 '퍼스트무버First Mover'가 많다는 점이다. 대기업이 선뜻 의사 결정하지 못한 시장에 빠르게 진출해 이미 테스트베드를 운영하고 있는 곳은 대부분 스타트업 아닌가. 그래서, 퍼스트무버가 될 수 있는 시장에서 유의미한 아이템을 발굴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충분히 경험할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커리어 전환이나 확장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발판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가장 처음 경험했던 스타트업이 디지털 마케팅 업계의 라이징 기업이었기 때문에, 이후 디지털 마케팅 인재 시장에서 꾸준히 수요가 있었다. 또한,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에 서비스 기획 업무의 기회를 보다 쉽게 얻을 수 있었고, 이는 지금 서비스 기획자로 커리어 전환을 할 수 있었던 첫 번째 단추였다.


또한, 현재 대기업 신사업 관련 업무를 하다보니 더욱 더 느낀다. 대기업이 진출하지 못한 신규 시장(예를 들어 Web3, 메타버스 등)에서 현재 활발히 성과를 보이고 있는 기업은 대부분 스타트업이며, 오히려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노하우와 역량을 믿고 파트너십을 제안한다. 그러한 스타트업에서 유의미한 실무 경력을 쌓는 분들은 이후 대기업을 비롯해 많은 기업들이 해당 시장에 본격 진출할 때 분명 많은 스카웃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스타트업에서 오랫동안 기여했을 때 큰 조직에선 가질 수 없는 명예나 연봉을 손에 쥘 수도 있는 기회도 분명 존재하는 듯 하다. (물론 좋은 스타트업을 보는 눈을 길러야 겠지만)


내 경험을 비추어보았을 때, 나에게 다시 주니어 때 경험할 스타트업을 고르라고 한다면, 아래 4가지를 명확히 따져볼 것 같다.


1. 미래 비전이 있는 산업 혹은 업무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후 스타트업에 자금난 등의 불안정성이 생겼을 때 Next를 고민하기 매우 어려워진다. 또한, 미래 성장성이 높은 산업일 경우 이후 기회도 매우 많아진다.


2. 내가 이니셔티브를 가질 수 있는가

내가 리더십을 가지고 업무를 했을 때 실력이 향상되며, 그래야 가치있는 경력 자산으로 만들 수 있다.


3. 대표의 가치관과 철학

스타트업은 더더욱 대표의 성향에 따라 조직 문화와 사업 방향이 결정된다. 내가 그 가치에 동의할 수 없다면, 업무 중 불만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는 듯 하다.


4. 억울하지 않을 연봉인가

20대 순진한 마인드로 회사의 비전만 믿고 연봉 협상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입사했다가, 몇 년을 고생했ㄷ... 계속 직장인으로 커리어빌딩을 하게 된다면, 남는 건 결국 내 몸값이닷!




음,

스타트업 뽕에 취했을 때 차라리 창업해서 한 번 말아먹는 게 더 나았을 지도 몰라.



이상,

그래서 나는 몇 년 후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참,

이직 방법이 궁금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모든 이직은 지인의 추천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많은 기회들을 경험하게 해준 좋은 인맥들을 만났던 것도 행운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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