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의 길은 애틋하다
토요일 오후 ‘지대방’에 모이라는 여자들의 호출을 받았다. 지대방은 종로 인사동에 있는 전통 찻집이고 언젠가 한 번 가본 곳은 아닐까 생각했다. 쌈지길로 가는 건물 2층에 있는 지대방은 외국인 관광객은 알기 어려운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다. 이름은 승려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절에 있는 방이란 뜻이다. 이 찻집은 그런 느낌을 한껏 풍기고 있었다. 여자들은 종종 지대방 이야기를 했었다. 이곳에 셋이 모여 시간을 때우고 쉬고 온다고 말하곤 했다.
지금은 한국 방문 중이다. 한국을 떠난 지 고작 일 년 사 개월 되었을 뿐인데, 한국으로 몸과 마음이 향했고 나는 지금 인사동에 있다.
방에 들어서니 훈훈한 공기가 밀려오고 진한 한약재 향기가 후각을 환영한다. 잊고 있던 한국 냄새. 찻집을 찾느라 추위에 동동거리며 얼었던 몸이 살살 녹을 준비를 한다. 수년 전 추석 연휴 상큼한 솔바람차를 건네던 얼굴이 생각났다. 방문한 적이 있는 곳이었다. 중년 손님들이 모여 도란도란 차를 마시는 모습이 어느 과거의 장면과 겹쳤다. 벽지에는 손님들이 적어놓은 낙서가 빼곡하고 찻집 곳곳에 놓여있는 방명록을 들여다보니 우리들의 이야기가 가지런히 적혀 있었다.
여자들이 마시는 대추차를 따라 마셨다. 여자들은 맛깔나고 좋은걸 잘 알고 있다. 그녀들의 경험치에 따라 마시고, 쫓아다니면 무엇이든 탁월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감기 몸살을 앓는 내 몸을 잘 아는 듯 따뜻한 대추차가 몸을 달랜다. 목으로 내려가는 깊고 진한 뜨끈한 맛을 즐길 줄 아는 한국인으로 나이 들어가는 것이 좋았다. 따뜻한 공기에 두 볼은 발갛게 익고 여자들의 경쾌한 수다에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는 회포를 풀었다.
여자들은 서울 일대를 아주 잘 아는데, 특히 종로 구석구석은 손바닥 보듯 훤하다. 지대방에서 나와 함께 걷다 길 한쪽으로 들어서자 이곳부터 서순라길이라고 말해주었다. 담장 너머 종묘를 순찰하는 순라청 서쪽에 난 길이라 서순라길로 이름 붙였다는 붙여졌다는 설명과 함께. 곁에서 걸으면 길이 품은 의미까지 설명해 주는 여자들의 박식함에 반한다.
바다 건너 멀리서 온 어린 친구에게 가장 맛있는 것과 좋은 곳을 보여주겠다고 여자들은 신이 났다. 서순라길을 배경으로 깔깔 거리며 나를 둘러싸고 사진을 찍다가 한국의 혹독한 추위를 걱정해 목도리를 내어 감아주는 손길에 나는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재회한 반가움에 우리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종묘 담벼락을 따라 오래된 길을 여자들과 함께 걸으면 이 거리는 내 소유다.
서울이 좋았던 건 나를 오독하지 않는 마음과 수많은 길을 공유한 여자들이 있어서였다. 가족처럼 내게 다정했던 사람들이 있어서 한국에서 홀로 살았던 시간이 길었어도 외롭지 않았다. 여자들은 시끌벅적 걷다 서순라길 뒤편의 한식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정갈한 한식과 막걸리가 나오고 더 먹으라고 건네는 음식을 사양하지 않고 모두 받아먹었다.
돌아가는 길에 여자들은 아쉽다며 ‘종로떡집’에 들렀다. 괜찮다고 손사래 치는 나를 꺾고 맘대로 떡봉지를 손에 쥐어준다. 캐나다에 가져가라며 준비해 온 귀한 고춧가루와 참기름까지 야무지게 챙겨줬다.
한국 여자들의 다정함을 꽁꽁 얼려 캐나다까지 가져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