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의 문인들
“한국문인협회 밴쿠버 지부의 회원이 되었다.”
라고 말하면 모두들 나와 안 어울린다며 놀린다. 맞다, 조직 생활을 답답해하는 자유로운 영혼인데 꼬장꼬장해 보이는 문인협회에 왜 참여하고 싶었을까. 어르신들의 모임 같은 느낌적인 느낌은 사실이다. 어른과 친구 하면서 우정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연륜 쌓인 말과 생각을 들을 땐 책 한 권을 읽는 느낌이고, 어쩔 수 없이 꼰대 냄새를 풍길 땐 놀려대는 재미도 있다. 나이를 초월한 젊은 시선을 가진 겸손한 어른친구를 만나면 존경의 마음이 퐁퐁 솟아오른다. 어느새 그들 곁에 가 있다. 이곳에서 읽고 쓰는 어른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니, 기대하는 마음으로 가입했다. 책 읽는 늙음은 읽지 않은 젊음보다 생각이 푸르지 않더냐.
회원이 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 협회에서 주관하는 신춘문예에 입상하거나 출판한 책이 있는 경우에 회원 두 명의 추천을 받고 투표를 거쳐 전체 회원의 2/3가 동의하면 가입할 수 있다. 신춘문예에 상금이 있는 줄 알았다면 글로 돈 버는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라도 응모해 보았을까. 적나라한 평가를 받아 내 글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잃고 쉽게 회원이 되었다.
새해 첫 모임이 있었다. 회원이 되고 한인 문인들을 처음 만나는 셀레는 자리였다. 이민자 어른들은 좀 다르다. 이민 온 시절의 한국적인 생각에 멈추어 영어 문화에 익숙한 어른들은 어린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따박따박 표현하는 것을 거북해하지 않는다. 보편적 예의의 기준이 한국과는 조금 다르다. 한국어 문장에 영어를 넣은 요상한 문장도 이해하고 상하 서열보다는 동등한 언어와 문화를 당연하게 여긴다.
모임 중에 올해로 이민 온 지 오십해가 된 김 선생님과 대화를 나눴다. 김 선생님은 자녀들을 위해 자서전을 영어로 번역 중인데, 때론 영어책이 한국어책 보다 편하다고 하셔서 놀랐다. 캐나다에서 살아온 세월도 길고 전공이던 불어로 일 하며 삶에서 모국어의 비중이 많이 밀려났을 텐데도 김 선생님의 한국어 글쓰기는 계속 되었다. 한국어 글쓰기는 선생님에게 어떤 의미일까. 선생님은 자신이 어느 언어 하나 완전치 못한 언어장애가 있다고 하셨지만, 삼개국어를 넘나들며 문화와 언어의 경계를 허물고 자유로운 사유로 풍성했을 선생님의 시간을 잠시 헤아려보았다.
얼마 전 가까운 또래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책 읽는 사람을 놀려대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문화 충격이 꽤 컸다. 읽는 사람이 훌륭한 인간이 되는 건 아니지만 책 읽는 것이 놀림받을 일인가. 그날 이후 밴쿠버에서도 꾸준히 글을 읽고 쓰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아직 문인협회 회원의 책임은 잘 모르지만 캐나다에서도 읽고 쓰는 한인들 가까이 있고 싶다. 그들의 사유를 읽으며 나의 생각과 글을 다듬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