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집
이 집은 어느 공간에 들어서든 벽 한 면 전체가 창이다. 창 앞에 서면 바깥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향으로 열린 창가에서 해가 뜨고 지는 장면을 하루종일 관람 할 수 있다. 하늘빛은 붉게 물들고 눈높이에서 구름이 한가롭게 흘러간다. 집에 들어설 때는 26층이지만 계단으로 이어진 27층엔 서재와 침실이 있어 저너머 도시를 다른 높이에서 볼 수 있다.
폴딩 도어를 밀어 바깥공기를 한껏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눈앞에 펼쳐진 도시의 풍경 속에서 오늘 날씨를 예상한다. 멀리 내리쬐는 한줄기 볕이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리거나 먹구름이 힐끔 보이면 비를 준비하기도 한다. 숨을 길게 내쉬며 지난밤 모니터 화면과 씨름하던 노동의 찌뿌둥함을 날려버리고 새 날의 기운을 받는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한국에 있는 학생들과 화상으로 영어 수업을 하니 시차가 생겨 삶의 리듬이 좀 다르다. 나무냄새 맡으며 숲 속을 산책하는 것도 즐기지만 큼직한 창 덕분에 집안에만 머물러도 답답하지 않다. 신선한 공기가 필요할 땐 발코니에 앉아 바람을 쐬면 다시 책상에 오래 머물 수 있다. 다홍빛 노을이 질 무렵 도시의 실루엣이 드러나면 ‘WESTVIEW’라는 길 이름이 이곳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해가 넘어가고 마지막 오렌지빛으로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수업준비를 하거나 글 쓰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하던 일을 멈추고 앞 건물의 낮은 창문을 내려다보며 불빛을 세어본다. 창문 속 사람들의 사는 모양과 움직임에 시선이 머물다 곧 거리로 닿는다. 교차로 신호등에 따라 차가 서고 멈추는 리듬 속에서 도시의 질서가 느껴진다. 살아있는 생명의 움직임은 신비롭다. 공중에서 작아진 도시를 내려다보면 어느덧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늦은 밤 시작한 수업이 이른 새벽으로 이어져 해가 뜨는 시간을 맞을 때가 있다. 낮과 밤을 지나 새벽까지 자리를 지킨 고단한 순간에 하루를 온전히 살아냈다 자족한다. 매일 다를 것 없는 날에도 자연의 고유한 색을 발견할 때 나의 하루는 완성된다. 수면에 도움 되지 않지만 블라인드를 활짝 올린 채로 잠들고 볕이 깨울 때 일어난다. 잠보다 햇볕을 더 아끼는 까닭이다. 요즘처럼 안개가 자욱한 날이 이어질 때는 아래 세상이 보이지 않아 구름 위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선조들은 자연 풍경을 가까이에서 즐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정자 안에서 낙양(落陽)이 부착된 창을 액자 삼아 시시각각 변하는 주위의 자연을 차경(借景)하며 즐겼다. 낙양이 있는 창방(기둥과 기둥을 가로로 연결해 주는 건축 부재)과 두 기둥은 액자로, 풍경은 화폭으로 감상했다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낙양과 어우른 정자 안의 임금과 왕비의 다정한 모습도 또 다른 그림이었으리라. 같은 장소에서 사시사철, 시간과 방향에 따라 자연을 예술로 즐기니 있는 자리는 더욱 풍성해진다. 언젠가 들었던 경회루의 낙양각(落陽刻), ‘햇빛을 조각’하는 아름다운 삶의 태도를 캐나다에서 따라 하고 있다. 그 지혜와 멋을 잘 이어받아 누리고 있으니 그야말로 궁에 사는 듯싶다.
낙양/낙양각(落陽刻) : 조각 장식을 건물 기둥 윗부분이나 옆, 창방에 돌려 붙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