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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ny Kim Nov 22. 2021

가정폭력을 딛고, 살아남았습니다

건장한 남성도,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된답니다.

나는 가정폭력을 딛고 살아남았다. 


키 170에 몸무게 70킬로그램이 넘었던 고등학교 2학년 때에도, 친부의 주먹은 내 얼굴을 향해 꽂혔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피지컬 차이 때문이 아니라, 패륜에 대한 심리적 압박 때문이었다. 나도 주먹을 날릴 수 있었냐고? 있었다. 날리지 않은 걸 후회하냐고? 많이 후회한다.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을 딛고, 그것을 통해 얻은 악바리를 무기삼아, 나는 이 자리까지 성장했다. 글로벌 100만 다운로드를 넘긴 앱 스타트업의 메인 마케터로 살았고, 영어학습 스타트업 섹터의 마케팅 트렌드세터가 되었고, 국내 1위 스테인레스 주방기구 기업의 마케팅을 맡았으며, 수많은 크고 작은 기업들과 함께 일했으며, 전 세계를 여행했고, 이젠 글로벌 1인기업의 대표로 살고 있다. 


나는 그렇게 훌륭하게 살아남았다. 다른 누가 뭐라고 평가해도, 나는 훌륭하게 살아남았다. 그래서, 내가 겪었던 폭력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들을 담아 시리즈로 연재해보려 한다. 어떤 고문과 매질을 버텼고, 어떤 언어폭력 안에서 고통받았으며, 어떤 정신병을 겪었고, 그것들을 어떻게 하나씩 해결하며, 살아남았는지. 글을 쓰는 것이 가장 큰 무기인 내가, 다 큰 어른이 되어 한 방 크게 되돌려주려고 한다. 


나는 이렇게 살아남았다.




내가 겪은 폭력은 크게 두 가지였다. 물리적 폭력과 언어적 폭력. 아동학대의 전형적인 형태다. 신체적 폭력의 도구는 맨손과 주먹, 플라스틱 구두주걱, 지압 손잡이가 달린 스트레칭 고무줄, 혁대, 장난감 총의 개머리판이었다. 망치와 식칼로 위협도 당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오른손 검지손가락 인대가 구두주걱 날에 맞아 반쯤 찢어지는 일도 있었고, 엎어놓고 엉덩이와 허벅지를 세차게 맞아서 피부가 짓물러 터진 일도 있었다.


언어폭력은 교과서적인 가스라이팅이었다. 옆집 누구는 어디 진도를 나가고 있는데, 너는 왜 이모양이냐. 지난번엔 100점을 맞아왔는데 왜 이번엔 두개나 틀렸냐. 학교 대회에서 상을 받아오는게 정상이지, 왜 자랑을 하느냐. 너는 입만 열면 궤변이 튀어나온다. 머리에 똥만 가득 차가지고. 하라는 건 안 하고, 쓸데없는 짓만 하고 앉아있네. 네깟 게 뭔데.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지? 네가 학교에 안 가면, 엄마와 아빠는 오늘 차 끌고 한강물에 뛰어들겠다. 비켜, 저새끼 대가리 망치로 깨버릴 테니까. 


지금의 나는 웃으며 술술 읊어낼 수 있는 말이지만, 당시에는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말이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자퇴하기까지 5년동안 분기별로 한 번씩은 자살하기 위해 목을 매거나 창가에 걸터앉았었고, 어른이 된 후에도 기억하는 것만 다섯 번 이상 내 삶의 마무리를 위해 노력했었다.


맞을 만한 짓을 해서 맞았다면 좀 덜 억울했을 것이고, 회초리로 정해진 횟수만큼 맞았다면, 훈육에 감사하다고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들의 사업과 인생의 실패에 대한 분노를, 사춘기를 겪으며 혼란을 겪는 아이에게 표출했을 뿐이다. 화풀이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공소 시효가 지나버렸고, 차곡차곡 쌓아둔 증거자료도 없어서, 법적으로 다투지 못하게 된 것이 참으로 유감이다. 



폭력과 폭언이 난무했던 가정에서, 훌륭하게 살아남아, 멋진 어른이 된 내가 쓰는 내 옛날 일기.

가정폭력을 딛고 살아남았습니다, 시리즈를 이렇게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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