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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ny Kim Jun 27. 2022

바이오는 첨단 산업이 아니다

석 박사급 고급인력의 쉴 새 없는 젓가락질

바이오 자동화 로봇을 만드는 스타트업, 에이블랩스에 와서 처음으로 충격을 받았던 지점은, 바이오 산업이 얼마나 비효율적, 노동집약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였다. 에이블랩스 입사 전의 나에게 바이오는 반도체와 거의 비슷한 급의 첨단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에 들어와 알게 된 실상은, 석 박사급 인력들이 좁디좁은 실험실에 앉아, 하루종일 손목이 부서질 정도로 스포이드질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이오 실험을 아주 극단적으로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미량의 액체 여러 방울을 작은 판에 한데 모은 다음에 흔들어 섞거나, 오븐에 넣었다 뺀 뒤, 카메라에 얹어서 사진을 찍는 과정이다. 이 중에 미량의 액체 여러 방울을 옮기는 과정은 젓가락질과 크게 다르지 않다. 


96Well Plate, 그리고 바이오 실험자들의 젓가락, 마이크로피펫.


사진에 나온 96well Plate를 기준으로, 각 well당 4종류의 액체를 섞어야 한다면, 총 400여 번의 파이펫팅을 하게 된다. 젓가락으로 쌀, 보리, 현미, 콩을 집어, 96개의 구멍에 한 개씩 넣는다고 생각하면 쉽다. 실험자들은 이런 플레이트를 하루에 수십 개씩 채워서 측정기에 넣고 결과를 뽑아내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논문을 쓰고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제시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수동으로 만들어 낸 수천, 수만 개의 샘플이 모두 일정할까? 일정하지 않다면,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있을까?


과학적 발견이 인정되려면, 결과가 재현 가능해야 한다. 똑같이 따라하면, 똑같은 무언가가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손맛'으로 만든 결과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그런데도 지금껏 생명과학의 발견과 연구는 이렇게 이루어져 왔다. 2년간 우리를 괴롭혔던 코로나 검사도 이렇게 이루어졌다. 손으로 검체를 채취하고, 손으로 검체와 시약을 섞어 샘플을 만들어 바이러스의 유무를 검사한다.


제조업과 물류는 일찍이 자동화를 도입해서 대량 생산과 물류 혁명을 이루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거스러미만한 소자들 수천 개를 정확한 위치에 얹어 납땜하는 로봇이 만들었고, 우리가 타는 자동차도 로봇이 용접한 차체에 로봇이 조립한 엔진이 얹혀서 굴러간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는 약의 개발과 실험도, 그렇게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에이블랩스의 자동 젓가락질 로봇, 리퀴드 핸들러 NOTABLE

에이블랩스에 합류한 후, 수동 파이펫으로 액체 핸들링 체험을 잠깐 해본 적이 있다. 겉핥기중의 겉핥기. 고작 30초만에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이건 손으로 할 것이 못 된다



에이블랩스의 리퀴드 핸들러 NOTABLE. 나는 출근해서 회사에 놓여있는 이 로봇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연구자들로 하여금, 파이펫을 놓게 만들어주고 싶다", "단순 반복 작업은 인간이 아니라 로봇의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지식 노동자를 지식노동자답게 만들어주고 싶다". 


석박사들의 젓가락질, 이젠 그만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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