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프로 N잡러의 발자취
나는 1인기업을 창업해 스물 세살엔 월 최고 매출 1200만원을, 스물 다섯살엔 월 최고 매출 2000만원을 달성했다. 그리고 스물일곱을 살아가는 지금은 글로벌 바이오 로보틱스 스타트업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회사를 다니는 지금은 일하는 삶이 아주 단순하고 명확해졌지만, 혼자 일할 때는 번역, 영상제작, 웹개발, 디자인, 마케팅, 영어학원 강의, 컨설팅까지, 꽤나 많은 일을 하고 살았었다.
내가 프로 N잡러가 된 이유는 단순하다. 일하는 재미, 그리고 돈 꽂히는 재미. 일도 재밌고, 돈 벌고 쓰는 것도 재밌다니. 나는 자본주의에 특화된 정신머리를 가진 게 분명하다. 스무 살부터 스물셋까지, 6년간 정신없는 N잡러로 살다가 올해부터는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며 쉼과 일의 밸런스를 맞춰나가고 있다. 그간 너무 바빴던 나머지, 나의 N잡 일대기를 정리하기가 참 쉽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의 여유가 생긴 지금을 기회로, 내가 N잡을 만들어 낸 방법들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일하는 재미 때문에 N잡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결국 돈 때문이었다. N잡을 시작했던 스무 살의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했었다(물론 지금도 돈 욕심은 많다. 돈이 최고다). 그런데, 직업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돈이라고 해 봐야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돈을 많이 만들려면 여러 군데에서 돈이 들어오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너무나 명확한 계산이 나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에게 돈을 주는 재주를 찾아 수익화하기 시작했다. 당시엔 내게 가장 쉬운 것이 영어였고, 도전하고자 하는 일은 사진과 영상이었다.
그래서, 영어만 잘 하면 뽑아주는 곳들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호텔, 영어학원, 투어 통역 등등. 그렇게 호텔의 컨시어지 데스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웨딩사진이나 데이트스냅을 찍는 일을 시작했다. 사진은 처음엔 무료로 찍어주는 일도 많았다.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작업물이 쌓이고 나서부터는 당당하게 돈을 받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가장 일을 많이 했을 때는, 평일엔 오전 5시부터 10시까지 호텔 프런트에서 일하고, 낮잠을 자고는 두시부터 영어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주말 이틀은 또 다른 호텔에서 오후타임 쉬프트를 뛰던 때였다. 두달쯤 그렇게 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말 숨막히는 일정이었지만, 그렇게 스물 한 살의 나는 세 군데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N잡의 힘은 유연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유연성은 위기상황에 빛을 발한다. N잡러인 나의 포텐셜이 제대로 폭발한 때는 코로나로 세상이 그야말로 미쳐돌아가던 2020년이었다. 그 해 여름, 나는 스물 세살부터 2년여간 함께하던 에듀테크 스타트업을 그만두고, 두번째로 1인기업 창업을 했다. 그리고 그 해 가을, 월 매출 2천만원을 달성했다. 직전까지 다니던 스타트업에서 받던 월급의 10배였다.
당시,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사회로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모두에게 디지털 마케팅과 온라인 플랫폼 구축이 가장 시급한 미션으로 떠올랐고, 순간적으로 수요가 공급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나는 마케팅하던 제품을 백만 다운로드 앱으로 성장시키고 화려하게 퇴사한 직후였고, 웹개발과 온라인 마케팅이 내가 가진 가장 큰 무기였던 만큼, 시장은 나를 절대 가만히 두지 않았다. 크고 작은 작업건이 밀려들어왔다. 당시 퇴사를 하며 재택근무를 하는 계약직으로 전환해서 월 2백만원 정도가 안정적으로 들어오고 있었는데, 거기에 다른 작업들이 더해지니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N잡의 핵심은 결국 n개의 다양한 일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일감을 만드는 것은 돈으로 바꿀 재주를 찾는 것부터다. 그러려면 내 재주와 세상의 수요를 파악해야 한다. 스무 살의 내가 했던 것처럼 말이다. 수많은 곳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봤던 건, 내가 가진 재주가 팔리기는 하는지, 팔린다면 얼마에 팔리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아마 이쯤에서 당신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남이 돈 주고 맡길만한 재주를 가졌을까? 질문의 대답은 명확하다. Yes when price is right. 당신이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간단한 디자인으로 명함을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재주가 있다고 쳐 보자. 그 재주를 30만원에 팔면 안 팔리지만, 3만원에 판다면 분명 일주일에 한 건 정도는 팔 수 있을 것이다. 수요와 공급에 따른 적절한 금액대만 찾을 수 있다면, 당신의 사이드 프로젝트도 수익화할 수 있다.
지난 7년간의 N잡을 통해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그 업계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사람만 매출을 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좋은 것을 찾는 소비자도 있지만, 적당한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취하려는 소비자들도 많기 때문이다. 또,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라도 바빠서 일을 받지 못할 상황이라면, 고객은 차선으로 나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포트폴리오의 스타일이나 세부 분야에 따라서도 경쟁 우위에 놓이는 경우가 있다. 일을 따내는 것은 절대적 실력보다는 가성비와 타이밍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적절한 가격은 어떻게 정해질까? 답은 시장, Market에 있다. 당신이 고객과 어떤 특별한 관계가 있지 않는 한, 당신이 가진 재주의 값은 시장가에 맞춰서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시장가를 찾기 위해서는, 당연하겠지만, 시장으로 가야 한다. N잡러들이 재능을 거래하는 시장 중 가장 큰 곳은 크몽이다. 크몽에는 다양한 전문가가 있다. 그 중엔 당신보다 실력이 좋은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 중 나와 비슷한 퀄리티를 만들어내는 크몽 전문가들의 가격대를 보면, 내 재주의 적정 가격대를 간단히 알 수 있다.
나는 크몽을 통해서 N잡의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고, 매출도 꽤 냈다. 앞서 언급했듯, 팔리는 가격대가 어디쯤일지 찾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되었고, 역으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틀어진 틈새를 찾는 것도 가능했다. 예를 들어, "홈페이지 제작"이라는 키워드는 경쟁이 치열하지만, "워드프레스 제작"이라는 키워드는 전문가가 많지 않아, 조금만 노력하면 1등을 하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실제로 크몽을 통해 판매를 많이 했던 상품은 대학원생들의 스터디 논문을 번역해주는 것이었다. 크몽을 살펴보니 기사나 서류, 영상 번역에는 전문가들이 많았지만 논문 번역은 그렇지 않았다. 논문 번역 중에서도, 출판할 논문이 아니라 공부를 위한 영어논문 번역은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그 틈새를 크몽을 통해 확인했고, 크몽을 통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몰랐던 분야에 대한 공부도 하면서 돈도 버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의 경우는 홍보를 위해 워드프레스 기반의 블로그를 직접 개발해서 사용하기도 했고, 크몽이나 브런치같은 플랫폼을 이용하기도 했다. 업력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개인 플랫폼만으로도 충분한 매출을 만들 수 있게 되었지만, 크몽에서도 계속 활동했었는데, 그 이유는 플랫폼이 수수료를 통해 제공하는 보호장치와 편의 때문이었다.
프리랜서는 업무와 계약에 있어,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근로자가 아니라 사업자이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 분쟁이 생기면 근로자는 노동부에 도움을 요청하면 되지만, 1인기업은 변호사와 법원을 찾아가야 한다. 그래서 N잡러로 일하다 보면 일을 따서 완수하는 것보다, 정산이 더 어렵고 신경쓰인다. 결과물을 다 넘겨주고도 잔금을 그대로 떼이는 일,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제때 입금을 해 주지 않는 일 등등, 일을 잘 마쳐 놓고도 돈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크몽은 돈 받을 권리를 보장해준다는 것이 정말 고마웠다. 크몽을 통한 업무는 구매자가 일단 작업비 전액을 결제해야 시작된다. 그 돈은 크몽이 가지고 있다가, 업무가 완료되면 나에게 지급해 준다. 내가 결과물만 제대로 만들어낸다면 돈을 못 받을 일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크몽에는 기본적으로 재능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의 트래픽이 많은 데다가 전문가들의 상품을 페이스북 등의 소셜 미디어에 마케팅해주기도 한다. 번역 업무를 하던 때, 어느 순간 주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밀려 들어올 때가 있었다. 알고 보니, 크몽을 통해 내 상품으로 링크해주는 페이스북 광고가 집행되고 있던 것이다.
호텔에서 일하던 스무살 때, 예약 사이트를 관리하며 선배에게 이런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 "B플랫폼에 올리는 객실을 줄이고, E플랫폼에 올리는 객실 재고를 늘리세요". E플랫폼은 B플랫폼보다 수수료를 3~4%p 정도 더 많이 청구하는 곳이라서, 나는 이 같은 지시가 의아했다. 나는 질문했고, 돌아온 선배의 대답은 이랬다. "E플랫폼이 수수료를 더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광고 집행을 다른 곳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요. 더 내는 수수료만큼의 가치가 충분할 것 같으니 한 번 시도해 보자구요".
크몽을 통해 주문이 밀려들어오던 그 때, 나는 스무살에 들었던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N잡러로 일하다 보면, 손해보는 듯 하지만, 사실은 이득인 경우가 있다. 내겐 크몽이 그랬다. 크몽을 통한 거래는 수수료를 가져가지만, 편의와 보호를 제공해주는, 꽤 괜찮은 거래였다.
네 챕터를 할애해서 N잡을 홍보하는 노래를 불렀지만, 모두가 N잡러일 필요는 없고, 또, N잡을 가지는 것이 성격에 맞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N잡이 좋아서 했던 나조차도 쉼없이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하다가 너무 지쳐서, 잠깐 내려놓은 것이 N잡이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이 N잡을 외치면서 한 가지 직업에 집중하는 사람들에게 근거 없는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 직업에 집중하다가 코로나로 인해 일순간 타격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N개의 직업을 동시에 가지지는 않더라도, 언제나 다른 직종으로 넘어갈 준비 정도는 되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N잡이나 커리어 보험이라는 말을 들으면 머리가 먼저 아프기 시작할 수 있지만, 사실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것이 전부는 절대 아니겠지만, 웬만큼은, 좋아서 시도한 것으로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험을 기반으로 이야기해보자면, 글을 쓰는 것도, 사진을 찍는 것도, 행사 기획을 하는 것도, 모두 당신의 다음(혹은 또다른) 직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디자인과 IT업계에서 일했었지만, 지금은 바이오 관련 업계로 넘어와서 일하고 있다. 바이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지금까지 쌓아 온 경력이 바이오 업계에서도 필요로 하는 경력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시 말하지만, 모두가 N잡러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N잡러를 꿈꾸는 당신이라면, 혹은 직종을 바꾸고 싶은 당신이라면, 요즘의 시장은 그런 당신에게 충분히 마음이 열려 있다는 것도 알아주었으면 한다. 고졸, 검정고시 출신의 나에게도 마음이 열려 있었는데, 하물며,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마음이 닫혀 있을까?
안녕하세요, 프로 N잡러,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마케터 김재일입니다:)
johnny@dreamstorysna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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