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래 Jul 02. 2023

그렁그렁 연어덮밥

그렁그렁 연어 덮밥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여름이었다. 11월 시험을 위해 기출문제 풀이가 한창이었다. 노량진 한복판의 어느 학원에서 종합반을 홀로 수강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준비하던 영어 과목은 나의 복수 전공이기에, 아는 친구도 정보도 하나 없었다. 그저 의지할 곳이라고는, 우울하기 짝이 없는 인터넷 카페와,온라인 스터디 멤버뿐. 그나마 온라인 스터디는 온라인으로 진행되어 얼굴 하나 모르는 사람들이다. (지금 생각하면, 오늘날에 굉장히 적절한 스터디였다.)


  그날도 지인 하나 없는 노량진 대형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고, 답답했다. 온 신경이 곤두서 있는 낯선 이들끼리 여름날 다닥다닥 붙어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연어 덮밥이 먹고 싶어.’

 딱히 배고픈 건 아니었다. 점심에 홀로 싸 온 도시락도 먹었고, 커피까지 때렸는걸. 나는 그냥 갑자기 ‘연어 덮밥’이 먹고 싶었다. 그냥 ‘연어 덮밥’. 그러자 머릿속이 연어 덮밥으로 가득 찼다. 간이 자작하게 먹여진 따뜻한 흰쌀밥에 야들야들한 선홍빛 살점들. 왜 갑자기 연어 덮밥이 먹고 싶었을까.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지만, 그렇게 갑자기 미친 듯이 먹고 싶은 음식은 아니었다. 그런데 문득 이 노량진 대 강의실 안에서 연어 덮밥이 그리워지다니. 하지만, 지금 당장 먹을 순 없었다. 수업 중이니까. 그렇다고 수업 끝나고도 먹을 수 없었다. 같이 먹을 사람도 없고, 그 시간이 되었을 때 문을 연 연어 덮밥집을 몇이나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당장 나가서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연어 덮밥 맛집에 갈 그럴 배포는 없었다.


단념이 되지 않았다. 평소에 그렇게 식탐이 강한 편도 아닌데. 수업 중 친구에게 무작정 문자 했다.


‘연어 덮밥이 너무 먹고 싶어.’

‘지금?’

‘응’

‘나중에 먹자.’

‘그래’


참 이상하지. 그 말이 왜 갑자기 그렇게 서러웠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갑자기 수업을 듣다 눈물이 그렁그렁할 정도로 서러웠다. 친구가 나중에 먹자고 해서도 아닌, 그냥 지금 연어 덮밥을 먹을 수 없는 이 상황이 갑자기 너무 서러웠다. 서럽다고 생각하니 더 서러웠다. 내가 기껏 연어 덮밥 하나도 못 먹는다니. 연어 덮밥 정도 먹을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먹을 곳이 몰라서도 아니고 (노량진의 연어 덮밥집은 알지 못했다), 단지 내가 남들 놀 때 임용고시나 준비하는 그런 수험생 나부랭이라서 연어 덮밥을 못 먹는다니. 온종일 우울했다. 사실 다음 날까지. 하등 그렇게 마음 쓸 일이 아닌데도.


  직장인이었어도, 학생이었어도, 연어 덮밥을 당장 먹지 못할 상황은 백만 가지가 넘는다. 그런데 그때는 뭐가 그렇게 서럽고 맺혔는지 우습게도, 나는 그 이후 연어 덮밥이 먹고 싶을 때 못 먹으면 조금 우울해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아니, 우울할 땐 연어 덮밥을 먹는 건가. 선행 관계를 잘은 모르겠지만, 나의 작은 우울들 사이에는 언제나 연어 덮밥이 있다. 


  그리고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시절 내가 단지 연어 덮밥을 먹고 싶어서 서러웠던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정말 속상했던 건, 그깟 연어 덮밥 하나에 마음이 작아져 버린, 지질한 나를 불현듯 마주했기 때문이 아닐까.


**

아 -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임용고시를 그만두었다.

여러 가지 핑계들이 있겠지만, 가능성도 간절함도 느끼지 못했기에.



2020.0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