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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고은 Nov 08. 2024

취미 부자에게 생긴 새로운 취미

이렇게 취미에 진심이 되다니!


Part1.  왜 나에게 풋살을 추천해주셨을까?


‘제인, 아지트(회사에서 사용하는 업무용 소셜 커뮤니티 서비스)에 여자 풋살팀 모집 글이 올라왔어요!’

팀카카오, 이 열정적인 여자 풋살팀에 들어온 계기는 어느 날 회사 톡방에서 팀원 한 분이 던진 링크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회사 신우회, 영화 제작 동아리, 그리고 회사 밖에서 댄스 동아리까지 알찬 외향인의 삶을 살고 있었고 PT나 등산 등의 운동까지 섭렵하고 있었다. 당시 <골 때리는 그녀들>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자 축구가 이만큼이나 활성화되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그렇게 차오른 축구에 대한 호기심은 마지막으로 축구공을 찼던 열세 살 무렵의 기억까지 떠올리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뼛속까지 ‘외향인’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밥시간이 되었는데도 밖에서 사람들이랑 노는 게 좋아 집에 안 들어가서 엄마가 손수 한입 거리의 미니 주먹밥을 만들어 놀이터에서 식사를 챙겨 줄 정도였다. 학교 바로 옆에 살았기 때문에 동네 남자아이들과 팀을 만들고 협력하여 골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뛸 수 있다니. 초등학교 때까지는 체육 시간에 여자는 피구, 남자는 축구로 나뉘어야 했지만 혼자 ‘남자 팀’에 들어가 축구를 했었다. 상대 팀으로 온 남자아이들이 “여자애가 무슨 축구냐”라고 비아냥대기도 했지만, 우리 반 친구들이 “얘, 잘해”라고 말해 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소속감과 제대로 보여 줘야겠다는 승부욕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간혹 비속어가 섞인 큰 소리로 서로를 비난하거나 칭찬하기도 하면서 땀 냄새와 흙 냄새가 운동장을 가득 채우곤 했다.  


그렇지만 당시 풋살을 배우고 있지도 않았고, 축구 광인도 아니었는데 나에게 그 글을 추천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심지어 팀원분들과 축구와 관련된 토크조차 해 본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최근에야 그때 이유를 여쭤보니 내가 회사 내 다른 동아리들도 열심히 하고 있고, 활동적이며,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해서 그냥 자연스럽게 전해 주신 거라고 알려 주셨다.(지금은 이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나에게 축구는 초등학교 이후로 멈춰 있었던 추억일 뿐이었다. 그때의 천진난만하고 공 하나에 일희일비했던 나와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기대를 품고 처음으로 훈련장에 도착했다. 어떤 동료들을 만나게 될지, 어릴 때 느꼈던 그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을지 기대도 되었고, 예전 동네 오빠에게 배웠던 그 스킬이 어떻게 했던 거였는지 그때처럼 자유롭게 뛸 수 있는 체력이 될는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Part 2. 유난히 내성적인 팀카카오

사람을 네 가지 알파벳으로 다 설명할 순 없지만 나의 MBTI는 ‘ENFP’다. 대학교 때 학교에서 유료로 검사했던 결과부터 온라인으로 했던 검사 모두 ENFP로 나왔다. 이제 회사 생활에 찌들면서 성격이 좀 변한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최근 입사한 분이 입사 2일 차 때 “제인은 엔프피죠?”라고 바로 맞추는 것을 보고 변하지 않았구나 싶었다.

갑자기 MBTI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팀카카오의 분위기를 설명하고 싶어서이다. 풋살은 한두 명도 아니고 열 명 이상은 모여야 하는 단체 스포츠 활동이라서 팀카카오에는 외향적인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내향인의 비중이 높았다!

처음에는 사내 동호회이기에 아무래도 회사 사람이라 거리를 좀 두고 싶어 하는 것일까? 생각했으나,

레슨이 끝난 후 미니 게임이 시작되자 다들 눈을 빛내고 큰 소리로 콜하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며 그건 아니구나라고 혼자 또 생각했다.


미니 게임 중에 좋은 모션이 있을 때 다 같이 칭찬해 주고(상대팀 포함!) 골을 넣었을 때 다 같이 좋아해 줬다.(이것도 상대팀 포함) 그렇다고 다들 승부욕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수업 시간에 배운 스킬이 경기에서 나오거나 멋지게 골을 넣었을 때 다 같이 박수를 쳐 주는 모습이 참 따스했고 사랑스러웠다.


예전에도 지금도 연습 경기 영상들을 보면 누가 골 하나 멋지게 넣으면 모든 사람이 박수 치는 영상을 볼 수 있는데 그게 그렇게 귀엽다. 이렇게 팀카카오는 내 인생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래서 이 흥미로운 모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도 고민했던 것 같다.

팀 활동이기에 빨리 친해졌으면 해서 레슨하는 곳에서 주최한 작은 풋살 대회에 허락을 구하고 남편을 초대했다.(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현재의 내 가족을 팀카카오에 소개하고 남편에게는 내가 얼마나 진심을 다해 뛰는지 그리고 다들 얼마나 열정적인지를 보여 주고 싶었다.(이때 챙겨 갔던 수박 화채는 인기 만점이었다!)

그 다음 팀카카오에 들어간 그 해 여름 첫 MT의 MC를 맡았다. (대학교 때 왜 땄는지 모르겠지만, 레크레이션 강사 자격증이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 MT 첫 번째 게임은 서로 서로 알아 가기 1등 게임! ‘마니또’.

D-day가 오기 일주일 전부터 비밀의 오픈 채팅방에서 매일 미션을 주었다. 나에 대한 힌트 세 가지, 내 마니또 그리기, 마니또를 위한 삼행시 등등. 대망의 MT 날에는 마니또를 위한 편지 전달과 누가 누구 마니또인지 맞추기. 많이 맞춘 사람에게는 상품까지! 다들 승부욕이 있는 사람이라 누가 누군지 탐정이 되어 서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MT 날에 마니또가 한 사람씩 공개되며 ‘아~’하는 탄성과 ‘역시!’하는 소리가 흘러나왔고, 점점 게임을 무르익다가 ‘몸으로 말해요’에서 케이팝 춤을 추는 동료들로 환호성이 가득했다. 또 음악 퀴즈는 밤새 술자리가 끝날 무렵에도 미니 게임으로 계속되었다. 어느 여름 밤의 소중한 추억이 생겼고, 우리만의 아는 밈이 생겼다.

그리고 그 다음 해 여름에도 MT MC를 하며 살짝 비슷하지만 다른 게임을 했고, 당시의 코치님과 함께 풋살도 하고, 각자의 포지션과 풋살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하며 재밌는 밤을 보냈었다.


이 때 MC는 젤다와 함께했었는데, 출근 전 아침 혹은 주말에 구글 밋에서 만나서 스프레드 시트로 MT 프로그램을 짰었다. 서로 조금 덜 친해 보이는 사람끼리 엮어서 마니또와 팀을 짰고, 음악 퀴즈에 진심인 분들이 있어서 연도별 / 드라마 / 영화 / 애니음악 카테고리로 나누고 첫 부분이 아닌 벌스 부분 등으로 한 땀 한 땀 유튜브에서 따서 넣어 더 어렵게 했다. 그리고 당시 인기 있었던 ‘지구오락실’ 게임도 몇 개 가져오면서 이 게임을 할 팀카카오분들을 상상하며 재밌게 준비했었다. 같은 업무용 도구여도 일이 아닌 팀카카오 MT 준비는 참 즐거웠다.



Part 3. 나의 세상을 확장시켰지만, 삶은 축소시킨 풋살

#승부욕

지금까지 내가 했던 단체 활동은 승패가 없었다. 밴드 및 댄스 동아리는 어떤 대회에 나간 적이 없었고

영화 제작 동아리는 사내에서 제작해서 어딘가에 출품한 적이 없었다. 과정과 결과물은 있지만 승리라는 달콤한 열매와 쓰라린 열매는 없었다.

하지만 풋살은 경기마다 승패가 존재했고, 평화로웠던 나의 세상에 승부욕이라는 엄청난 것이 생겼다.

원래도 승부욕이 있긴 했는데, 풋살에서의 승부욕이란 다른 차원이었다. 다 같이 착-착-착 한 몸 처럼 패스부터 골까지 연결되었을 때의 쾌감과 승리! 이 순간 때문에 풋살을 그만둘 수 없었다. 그리고 내 풋살 인생의 결정적이었던  판교 리그(회사 여자 풋살 동호회들의 풋살 대회)전에서 ‘1등’이라는 타이틀! 이 타이틀은 풋살에 더 집착하게 했다. 주 2~3회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풋살을 했고 내 삶은 어느 새 회사와 풋살로 축소되어 있었다. 영화 제작 동아리는 탈퇴했고, 전보다 춤추는 날도 줄었다.

풋살 관련 사업들(풋살화, 레슨 등), 잘하는 팀들, 풋살 기술들, 발목 재활 운동법… 내 알고리즘부터 머릿속엔 풋살로 가득 찼다.


#부상

태어나서 처음 목발을 짚게 된 나는 또 다른 세상을 경험했다. 걸음이 빨랐던 내가 신호등을 겨우 건너고 성질이 급해서 가까운 층은 계단으로 갔던 내가 엘베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계획했던 댄스 영상도 나 때문에 취소가 되어 버려 죄인이 되고, 택시로 출퇴근을 하며 교통비가 30만원이 나오고, 일어나서 샤워가 불가능해서 거의 매일을 목욕탕에 물을 받아 씻어서 보일러 비용이 40만원 가까이 나왔다.


처음에는 '내가 목발도 짚어 보는구나'하며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갔지만, 한 분기도 지나지 않아 또 크게 부상을 당하면서 좌절을 했다. 회사 외 내 시간이 풋살을 하거나 아니면 풋살 하다 다쳐서 아무 것도 못 하거나 둘 중에 하나인 사실이 좀 웃겼다. 재미로 시작한, 얼마 되지 않은 이 운동이 이렇게 내 삶 전체를 좌우하다니.

‘어쩌면 나는 풋살이 안 맞는 게 아닐까? 세상에 많은 운동이 있는데 꼭 풋살을 할 필요는 없잖아?’

이런 생각을 하며, 혼자 풋살과의 이별을 준비하기도 했었다.


22년 6월 팀을 이동한 뒤로 분기별로 깁스를 해서 지금 이동한 팀분들은 나를 ‘축구에 미친 제인’으로 보는데, 어느 날은 한 분이 진심으로 여쭤보셨다.

“자꾸 다치는데… 축구 왜 계속해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밝은 목소리로 “재밌어서요!” 하면서 쫑알쫑알 패스부터 골 연결까지의 짜릿함을 얘기했다. ‘아, 나는 아직 계속 축구 하고 싶구나’ 이야기가 끝난 후 깨달았다.

어느 날 풋살을 그만두는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각자의 풋살 이야기를 가지고 초록 잔디를 밟으며 뛰는 현재를 선명히 즐기고 싶다. 따스한 응원을 받으며, 뛸 때 가장 반짝이는 팀카카오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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