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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 Jan 25. 2020

여행을 제대로 하는 법이 어디 있어?

누구에게 잔소리 듣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너무 싫어해서 가끔은 이런 나 자신이 싫을 때도 있다. '그냥 하라고 하면 하면 되잖아. 아니면 그냥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걸 어떡하겠어?' 하고 억지로 나 자신을 진정시켜보지만 곧바로 내 속의 무언가가 외친다. 


'이게 말이 되냐고? 엉?'


여행에 관해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들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처음 보는 사람들이 섞인 모임에서 누군가가 내가 베트남 여행책을 썼다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부끄럽고, 왠지 내가 못 알아챈 흠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올까 두렵기 때문에 내가 나서서 책을 썼다고 말하진 않는다. 아무튼 그때부터 여행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시작된다. 레퍼토리 중 하나는 '어디가 제일 좋아요?' 같은 것인데, 예전에는 좋았던 곳을 장황하게 말하곤 했지만 나도 이제는 알고 있다. 사실 아무도 내가 좋았던 여행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자신이 좋았던 여행지를 말하고 싶어서 물어본 것이란 걸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뭐, 그래서 적당히 '자기가 좋았고 가고 싶었던 곳에 가는 게 제일 좋지 않아요?'하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다들 자신의 여행에 대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번에는 개중 한 사람이 아는 체를 한다. 아는 체는 괜찮은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 우리나라 여행자들은 꼭 남들이 가는데 다 따라가기나 하고, 정작 좋은 데는 안 가요. 정말 문제야 문제 "


그러면서 자기가 베트남에 살았는데, 베트남 현지인들은 우리나라 여행자들이 가는 다낭 이런데 안 간다고 한다. 제일 좋은 데는 '달랏'이란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표정관리를 했어야 하는데 그만 '피식' 웃고 말았더니 살짝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진정한 여행은 자유여행' 이라느니, '패키지나 가는 사람들은 바가지나 쓴다' 느니 신나게 남들을 비하한다. 문제는 다들 그냥 그러려니 하며 웃고 있는데 나만 영 표정관리가 안된다는 사실이다. 이럴 때는 내가 꼭 매사에 불편함을 표시하는 소위 '프로 불편러'같다.

달랏 호수

맞다. 베트남의 '달랏'은 좋은 곳이다(사실 어디가 좋지 않을까?). 사실 나는 며칠 묵지 않았지만 많은 베트남 여행자들이(특히 꽃 공원에서 인증샷을 찍고 싶은 연인들이) 달랏을 여행한다. 근데 베트남 여행자들은 다낭도 많이 가고, 나트랑도 많이 간다. 내가 만난 베트남 사람들은 대체로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푸꾸옥' 아니면 '사파'를 꼽는다. 그런데 왜 한국인은 다낭이냐고? 왜냐면 다낭이 제일 한국인 정서에 맞기 때문이지! 그리고 누가 달랏의 꽃 정원과 호수를 보러 베트남을 간단 말이야... 에버랜드를 가겠지. ( 물론 이것도 내 주관적인 생각이다. 달랏이 싫다는 게 아니다. ) 한국인 여행자들이 베트남의 몇몇 여행지에 몰리는 이유는 다 그들이 나름 최선을 다해 선택한 결과다. 게다가 이동시간도 짧고! 

나트랑에도 이런곳이 있다.

여행은 개인적인 행위이다. 솔직히 내게는 아주 큰 의미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을 구원한 것도, 반드시 한번 해 봐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나도 '여행은 고생' 이라며 트럭 뒤에 앉아 국경을 넘고 허름한 현지인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곤 했지만 그렇다고 체력과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이 시간을 쪼개 다니는 패키지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걷기 힘들고 잠자리가 불편하면 쉽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럼 집에만 있어야 하나? 여행사에서 베테랑 여행자들이 머리를 짜내고 이동시간과 볼거리 등을 조율해 만드는 패키지 프로그램은 그저 바보 같은 여행자들을 등쳐먹기 위해 만든 상품인가? 


내게 여행은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이지만, 가끔은 '휴식과 힐링' 이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색다른 현지 음식을 선호하지만 현지에서 먹는 삼겹살에 소주가 어째서 그렇게 맛이 있는지 놀라기도 한다. 그 전에는 쓰기만 하던 소주의 달달한 맛을 네팔 포카라에서 배웠고 삼겹살과 김치의 진정한 조화를 페루 꾸스코에서 비로소 알았다. 여행에 정답이 과연 있을까? 유럽의 카페에서 하루 종일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는 것도, 새벽부터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것도 여행이다. 여행에서 내가 생각하는 유일한 정답은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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