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무에타이를 배워봤다.
3일차 징크스가 있다. 뭘 시작하든 딱 3일째가 되면 좀 지겨워지는 느낌이 드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제가 바로 그 3일차였고, 스텝 외우기에 급급했던 첫 이틀과 달리, 좀더 본격적인 훈련이 있었던 지라 체력도 완전히 탈탈 털려서 호텔로 돌아왔다. 더위 탓도 있었겠지만, 살면서 이렇게까지 땀을 많이 흘려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덕분에 브런치고 뭐고 다 귀찮아져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살면서 끈기같은 건 있어본 적이 없었던 지라, 오늘은 좀 쉬어야 할까 생각했다. 너무 피곤하면 잠도 푹 자지 못하는 몸뚱아리라, 새벽에 몇번이고 깨버려서 컨디션도 아주 바닥을 찍은 상태였다. 아침에 겨우 몸을 일으켜 식당에 내려가면서도 내내 ‘쉴것인가 말것인가’ 를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런데 199바트를 내고 들어간 호텔 조식뷔페 식당에서 먹는 식사가 오늘따라 정말 맛이 있었다. 그렇게 맛있게 밥을 먹고 추억의 팝송을 배경음악으로 커피 한잔을 마시는데, 정말로 뜬금 없이, 무에타이가 너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오늘도 무에타이를 빼먹지 않은 건 다행이긴 한데, 고작 3일 배워놓고, 재미있을 건 또 뭘까? 드디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격투의 본능이 눈을 뜬 건가?
그래서였는지, 매번 4시 반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었는데, 오늘따라 4시에 도장에 도착해 버렸다. 코치들은 장비를 정리하다가 너무 일찍 도착한 나를 조금은 어색하게 반겨주었다. 괜히 쉬는 시간을 뺏는 것 같아서, 한쪽 구석에 누워서 선풍기 바람을 쐬는데 왠지 후덥지근한 도장이 사뭇 아늑하게 느껴져서 그대로 낮잠이라도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훈련생들이 하나 둘 도착해 잠깐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갔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 후, 코치들이 한명씩 붙잡고. 자세를 일일이 봐 주며 훈련을 시킨다. 사실, 좀 소심한 성격 탓에 개인적으로 배우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나이가 들었는지 이젠 좀 편해진 것도 같다. 그리고 말이 잘 안 통한다는 핑계로, 굳이 대화를 하려고 애쓸 필요 없이 웃기만 해도 되니까. 그 정도는 잘 할 수 있지.
그렇게 재미있게 훈련을 마치고 이제 호텔로 돌아오려는데, 이번엔 한 분이 호텔까지 데려다 준다고 한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데 굳이 손짓발짓, 핸드폰까지 동원해 내 숙소의 위치까지 알아내어 오토바이를 태워다 주셨다. 오늘따라 선선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돌아오는 내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런 호의를 받을 이유가 없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싶은 거다. 아무래도 치앙마이에는, 아니면 이 도장에는 사람이 마구 친절하고 다정해 지는, 그런 마법이라도 있는 걸까? 그러다가 문득, 나는 사실 무에타이를 좋아한다기 보다, 무에타이를 배우러 이 도장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만의 혼자 여행이고, 하루종일 수영 무에타이 등등으로 바빠서(지쳐서) 외로울 틈이 없다고 생각했다. 간만의 혼자 여행에서 느껴지는 고립감도 사실 꽤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것이었다. 그래도 아무래도 혼자라서 사람이 그리웠던 걸까? 이 도장의 분위기가, 그리고 그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들의 따뜻함이 나도 몰랐던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 같다. 지나치게 오버스럽지도 않지만 문득 눈이 마주치면 약간은 수줍게 웃어주는 그런 적당한 온도감의 다정함이 처음 태국을 여행했을 때 느꼈던 태국 사람들에 대한 첫인상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들은 이렇게 늘 너무 뜨겁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게 아주 아늑하게 따뜻한 사람들이었지, 싶은 거다. 그래서 이 곳에 머무는 사람들까지도 덩달아 이렇게 다정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나도 여기에 있는 동안 조금이나마 다정한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울 수 있으려나?
오늘도 온몸이 쑤시지만, 내일의 무에타이를 고대하며 잠자리에 들까 한다. 이 즐거운 무에타이도 다음주면 끝이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아쉬워지려고 하지만, 여기 있는 동안에는 잔뜩 이 사람들의 온기를 만끽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