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무에타이를 배워봤다.
치앙마이에서의 시간이 어느덧 반환점을 지나고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일주일이었다. 그동안 조금씩 하루 일과가 자리잡혀, 이제는 어느정도 루틴이 생겼다고 생각하던 차에 고비가 찾아왔다. 이놈의 40대의 몸뚱아리가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 한 것이다.
시작은 무릎이었다. 작년에 어설프게 평영을 배우다가 힘을 잘못 주는 바람에 왼쪽 무릎관절이 다쳤다. 조금씩 관절 연골이 삐걱대는 느낌이 있다 싶더니만 급기야 관절낭에 물이 차오르고, 이 때문에 다리가 잘 굽혀지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나 수영을 일주일 정도 쉬기도 했지만, 오히려 인대를 잡아주는 근육을 키우는게 좋다고 해 다시 수영도 하고 내친김에 자전거도 탔다. 무게가 나가는 운동, 즉 자전거나 달리기가 효과가 있었다. 무릎의 물은 저절로 서서히 흡수되었지만 그래도 몇달은 무릎을 굽힐때 마다 통증이 생겨 고생했다. 근데 무에타이를 배운지 고작 3~4일만에 다시 그 무릎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엔 또 내가 뭘 잘못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기까지는 이미 예상한 바였다. 준비한 무릎보호대를 차고 조심스럽게 운동을 계속했다. 지난번의 경험상,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다리 근육을 늘리는 게 도움이 될 테니까. 근데 오늘은 운동을 시작도 하기 전에 전에 없던 새로운 증상이 생겨났다. 한번도 문제 없었던 왼쪽 고관절이 통증을 일으키며 삐걱대기 시작한 것이다.
아, 망할. 앞으로 40년은 이 몸뚱아리를 데리고(?) 살아야 할텐데, 이래서야 데리고 살겠냐. 도대체 어디까지 고장이 날건데?
원래 체격도 건장한 편이고, 운동도 규칙적으로 안 해서 그렇지, 한번 시작하면 곧잘 하곤 했던 터라, 이런 상황은 낯설기 그지 없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나이들어 뭔가를 시작하면 늦었다고들 말하는 걸까? 이미 40 중반의 나이긴 하지만 여지껏 한번도 뭔가를 시작하기에 늦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이렇게 관절이 삐걱거리고, 조금만 잘못 헛디뎠다가 무릎에 물이 차는 이런 몸으로 뭘 하겠다는 걸까.
수업을 시작도 하기 전에 좌절감에 빠진 나를 본 코치는 또, 왜 그렇게 피곤해 보이냐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수영과 무에타이 외에는 고작 서너시간 글을 쓰는게 다인데 왜 또 이렇게 피곤한 걸까. 이 상황 역시, 내가 나이가 들어서란 말인가. 아 너무 싫다. 젠장, 젠장.
의욕이 없으니 제대로 된 훈련이 될 리도 없었다. 1대1 수업 중에는 왠지 오기가 생겨 열심히 팔다리를 놀리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맥빠지는 하루였다. 왜 나는 20대에 무에타이를 배우지 않았던 거지? 아니 최소한, 주짓수를 배우러 갔을때 계속 했어도 됐잖아. 아니면 검도라도, 아니면…
무에타이가 끝나고 돌아와 호텔 수영장에 몸을 담근 채 그런 생각들을 했다. 나름대로 이것저것 시도하며 열심히 살았건만, 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금 무엇도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로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사실 외적으로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제대로 하는 외국어도 없고, 운동도 없는데 이젠 몸도 말썽이고 눈도 침침하고….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다. 그런 생각 같은 건 다 허상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늘 예측에서 벗어나므로 상상해 봤자 망상에 불과하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나만이 될 수 있을 뿐…
이 순간, 40대 중반의, 약간 과체중인, 눈도 침침하고 무릎에 물이 차 있고 관절이 조금 삐걱거리는, 그러나 마음은 이내 쉽게 평온해 지는.
좋아하는 수영을 하고 무에타이라는 것도 배우고, 글도 열심히 구상하고 있는.
집에 가면 절친과 고양이가 기다리는.
손흥민과 영화와 드라마와 등산과 독서와 여행을 좋아하는.
그런 나도 괜찮다. 그러니 그냥 이 상태를 받아들이고 그냥 하자. 가끔 이놈의 몸뚱아리 때문에 좌절감이 생기더라도 살살 달래가며, 그 상태에서 또다른 즐거움을 찾으며.
아무튼 지금이라도 무에타이라는 것을 배워서 다행인거니까. 안 그런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하는 이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일테니까.
비록 내가 무에타이의 고수가 될 수는 없을지라도 말이지… (미련은 잔뜩 남아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