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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 Jul 06. 2024

내 돈 내고 극기훈련 중

40대, 무에타이를 배워봤다.

무에타이를 배운 지 6일째다. 한국에서 새벽 수영을 주 5일 다닌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하루도 안 빼먹고 일주일을 채우는 일이 드문데, 왜 갑자기 여기서, 잘하지도 못하는 무에타이에 열정을 불태우는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도 갈까 말까 살짝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나로선 대단히 큰 결심을 했다. 아침 수영을 빼먹기로!


한국에서의 루틴은 4시 반에 일어나 빈 노트에 아무 생각이나 떠오르는 것을 세 장 쓴 다음, 6시 새벽 수영을 하고 돌아와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인데, 이 루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자리 잡은 것은 수영이다. 아무래도 격렬한 운동을 하고 나면 없던 의지력이 샘솟고 머리도 좀 잘 돌아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유방암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고강도 유산소 운동을 주 5일, 하루에 30분 이상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근데 그 수영을 빼먹은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사건인가 말이다.

그래봤자 무에타이의 고수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오늘도 쌩쌩한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억지로 몸을 움직이는 자신을 바라보며 깨닫긴 했지만 어차피 정상에 오르기 위해 산을 오르는 것은 아니지. 그래서 그냥 나 혼자 무에타이의 고수가 되기 위한 수련을 시작한 척하기로 했다. 근데 오늘따라 코치들이 체력 훈련을 너무 많이 시킨다. 웬만하면 시키는 건 다 빼먹지 않으려 하고, 또 웬만하면 차례가 되었을 때 티 내지 말고 에너지 넘치는 척하려고 했다. 근데 웬만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네? 도대체 오늘따라 왜 이러시는 거죠….


게다가 치앙마이는 우기라더니 왜 이렇게 날이 맑고 화창한지. 온도는 어느덧 34도를 찍고 있다. 문제는 나는 세상에서 더운 게 제일 싫은 사람이라 그 좋아하는 등산도 절대 여름에 안 하는데. 땀을 진짜로 비 오듯 흘리며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푸시업을 하다 보니 나도 참, 내 돈 내고 여기까지 와서 이게 무슨 짓인지 싶은 것이다.


원래부터 남의 말을 듣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데, 고분고분 푸시업 20개를 하고, 윗몸일으키기를 20개를 한다. 불교에 살짝 발을 담갔을 때도 제일 싫었던 것이 스님들에게 절을 하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는데. 근데 그렇게 고분고분 한 시간 반 남짓 훈련을 하면서도 즐거운 건 또 뭐야. 물론 여전히 밖에(?) 나가면, 별 일이 아닌 것으로도 목청을 높이겠지만, 이곳에선 여하튼 나를 위한 명령(?) 이니까,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니까 아무런 저항감 없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일말의 저항감도 없다는 게 나에겐 참 낯선 일이다. 물론 가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싶긴 한데.


오늘은 체감상으로는 하나도 늘지 않고 오히려 더 버벅대기만 한 것 같지만 그래도 즐겁게, 고수가 되기 위한 길을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고 믿으련다.) 아, 너무 즐거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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