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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코치 Feb 06. 2021

생각은 달라도 대화는 통한다

생각맞추기가 아닌 받아들이기 능력을 봐야한다.


"소개팅은 괜찮았어?"

"커피 한 잔 하고 헤어졌어."

"왜? 직업도 그렇고 카톡 프로필 사진에서 본 얼굴도 괜찮았다며?"

"괜찮았지. 대화를 오래하기 전까지는... 이런 저런 얘기하다가 동성애 얘기가 잠깐 나왔는데.

자기는 동성애자를 욕하지는 않지만 이해할 수가 없대. 동성애자가 무슨 이해를 해야 할 대상인가?"


십년 전이었다면 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헐! 만나지마. 그 정도로 보수적인 사고를 하고 인권에 대한 개념도 없는 사람은 만나봤자 말도 안통해,"


그런데, 지금은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 정도는 그럴 수도 있으니 좀 더 만나보지 그러냐고 말하고 싶다.

생각이 바뀌어서도 아니고 내가 보수적이 되어서도 아니다.

살다보니 알게된 중요한 사실 때문이다.


◆ 옳고그름의 문제가 아닌 그럴 수도 있는 현실을 받아들임의 문제

세상에는 '동성애자'에 대한 생물학적 견해, 문화적 관점, 인권적 해석 등 다양한 관점에서 고민하고 사고하여

최종적으로 내린 정의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이십대를 훌쩍 지나 삼십대를 지나오며 친구이거나 동료이거나 지인 혹은 애인으로 알게 되었던 사람들 중

다수는 저런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고 그게 딱히 이상하게 볼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릴 때는 그런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우리나라 교육과정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누군가는 후배가 만났던 소개팅남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의미를 지닌 말인지 분석해보면 '그럴 수도 있어.'라고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고 얘기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그 것을 지극히 개인의 인식, 사고, 가치관 문제로만 해석하는 것도 오류가 있는 세상이기에 적절히 받아들여야한다고 결론을 낸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애인과 사회문화적인 문제에 대한 관점이 꼭 같아야만 하는 것도,

식견의 넓이와 깊이가 꼭 같아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되었다.

관심분야가 다르면 각자의 기준에서 보면 상대방의 식견은 넓을 수도 깊을 수도 없을 확률이 높다.


◆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그렇다면 대화가 안통해도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인가?


아니다. 이런저런 연애를 해보고, 누군가와 결혼도 해보니'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관점, 성향이 같고 관심사가 같아야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너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어.'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네 생각이 뭔지 알겠어.' 라고 들을 줄 알고 상대의 생각을 인정해준다는 의미가 더 크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제는 내 생각과 다르다고 빠르게 손절하는 건 섣부르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다.

어쩌면 그 남자가 덜 매력적이어서 저 말을 받아들이기 싫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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