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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루 clou Feb 11. 2022

밤하늘의 별을..

왠지 모든게 가능할것만 같았던 그때.

1998년 어느 여름날,

1년전 갓 부임한 20대 후반 영어선생님(초짜였지만, 최고였던)이 해주었던 수많은 얘기 중 하나가 떠올랐다.


"그룹 '더더'라고 있거든. 박혜경이 보컬이고. 집에 올라가는 길(tmi. 서울 출신의 깍쟁이 스타일에 여친도 서울에 있어서 주말마다 고속버스 타고 서울에 다녀왔음.)에 심심해서 그냥 거기 터미널 횡단보도 앞 리어카에서 1집 테이프 사가지고 워크맨으로 들었는데, 진짜 말도 안되게 너무 좋아서 버스에서 1시간 내내 한 곡만 들었잖아. <내게 다시>. 너네 모르냐? 그' 포카리스웨트' 광고에 나오는 노래."   


당시엔 미쳤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노래가 좋아도 그렇지, 처음 듣는 노래에 어떻게 꽂혀서 1시간 넘게 무한반복할 수가 있지? 내가 아무리 '조장혁'이나 '장혜진'을 좋아해도 음반 전체를 듣지, 그렇게 딱 한 곡만 팬적은 없는데. 선생님의 영향이었는지는 몰라도, 훗날 어쩌다보니 나도 <더더 2집> CD를 거금 주고 사들였던 생각이 난다.ㅎ 혜경이 누나 목소리 정말 최고였어.


20여년이 훌쩍 지나고, 지난 주말 내가 그야말로 미친 짓을 해버렸다.

고향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1시간 이상 한 노래만 들어버렸다.

<밤하늘의 별을..>

잠깐 노래 소개를 하자면, 이 곡은 여러 버전이 있는데 원곡은 2010년도 작곡 겸 보컬에 참여한 양정승씨의 곡이다. 피처링은 '김치맨 KCM'과 'NONOO'(현재 '히키'라고 함).

이후에 '경서'라는 신인가수가 2020년에 솔로곡으로 정식 리메이크를 했었고, 유튜브를 찾아보면 수많은 가수들이 '경서' 버전을 커버한 것을 알 수 있다. 버전이라는 말을 쓴 것은 '경서' 버전은 멜로디도 약간 다른 부분이 있고, 가사는 대부분 바뀌었기 때문이다. 원곡이 남자의 입장에서 쓴 가사라면, '경서'버전은 여자 입장으로 느낄 수 있다.

온전히 내 의견을 밝히자면, 원곡이 가장 좋다. 당연한 얘길지 모르겠지만(원곡을 뛰어넘는 리메이크는 손에 꼽을만하니까), 리메이크 버전도 너무 좋고, 커버곡들도 다 좋기 때문에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그냥 다 좋다. 오히려 '경서'버전보다 '씨야'출신의 보람이 부른 커버곡이 가창력이든, 호소력이든 더 좋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원곡 아닌 노래들을 듣다가, 다시 원곡을 듣게 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밤하늘의 별을..> 메인 멜로디

특히 메인 멜로디를 맡은 'NONOO'의 감성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것 같다. 마치 가사의 주인공이 실제 그 내용처럼 간절하게 부르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심지어 성별이 다른데도 말이다.   


사실 TV프로그램 <놀면뭐하니>가 아니었으면 기억속에 잊혀졌을 노래다. 싸이월드 감성으로 여러 가수들의 노래를 소개하며 다시 세상밖으로 나온 고마운 특집이었다. 분명 10여년전 들었었지만, 크게 와닿지 않아 잊혀졌던 노래. 왜 이제서야 나로 하여금 미친 짓을 하게 한 걸까.


그 힘은 가사에 있다. 나는 알 것 같다. 절대 겪지 않고서는 절대 쓸 수 없는 가사.

작곡과 작사를 같이 한 '양정승'씨의 나이를 찾아보니, 또 한번 수긍이 간다.


1996년 어느 가을날, 학원 수업을 마치고 클루 역시 첫사랑 그녀의 집 어귀에서 한번 기다린 적이 있다.

며칠동안 연습했던 얘기와 선물을 건네줬어야 하는데, 그녀가 저멀리 다가올수록 커져버린 심장 소리가 귓가를 지배한 순간 바보처럼 심장과는 다르게 꼼짝 얼어버려 지나쳐버렸다.

그리고 1997년 10월 27일, (어쩌면 1998년)

<내게 다시>를 1시간 내내 들었다는 영어선생님의 야간자율학습 감독 아래, 선생님의 한 마디.

"어라? 눈이 오네? 10월에 무슨 눈이래."

책에 얼굴을 파묻고 집중하던 학생들이 '선생님이 졸지 말라고 뻥을 치시네' 하고 일제히 고개를 들었을때, 정말 하늘에선 거짓말처럼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밤 10시까지 하던 야간자습이 30분밖에 남지 않았지만, 클루는 그때부터 떠오른 시상으로 시를 한편 쓰기 시작했고, 야간자습이 끝나자마자 눈길을 신나게 달려서 그녀 집에 다다랐다. 만날 순 없었지만, 우편함에 시를 적은 종이를 넣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클루는 왠지 모든게 가능할 것만 같은, 한편으로는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었다. 이상하게 눈길을 밟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고 그게 그녀를 단념하는 신호였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2005년까지 우리의 인연은 닿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에 널 보고 있으면.

                                               1997년      

                                                  클루          

마땅한 눈이 내리는 그 세상을 걸어서,

내 마음 위에 눈이 쌓이면

나는 그 순간들로 너의 창문을 올려다 바라본다     

눈이 내 마음을 녹일 때,

너의 마음이 눈을 녹이며 나에게 온다

오묘한 설레임 속의 차가움들은 너에게 녹는다     

언제나 널 보고 있으면 나에게 너의 마음이 비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널 보고 있으면

눈이 내리는 저기 붉은 하늘에 너의 웃음이 비친다.


<1997년 첫눈 오던 날, 클루가 그녀에게 전했을 것으로 예측되는 시>


1027

                                           2002.12.17     

                                             클루

소년은 그 날을 기억합니다

하늘엔 전쟁이 발발했고

소년에게 또한 마음속 다툼이 일었습니다

전쟁에 홀린 듯 문득 감정에 잠기더니 이내 글로 써내려 갑니다

어둑한 하교 길은 이미 사라졌는데 소년은 세상이 밝기만 합니다

가슴으로 달리고 마구 달려서 기쁜 숨으로 소년이 찾은 곳은 어느 집앞 외등 아래

소년은 소녀에게 왔습니다

자신의 글귀와 지금 내리고 있는 눈을 주기 위해서

그것은 소년의 마음을 담은 한편의 시였고..

그렇게, 그날은 첫눈이 왔습니다..


<어느 눈오는 날 밤, 그날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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