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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루 clou Aug 17. 2017

장수 사진..

영정 사진이라고 하는.. 

방 한켠에 놓인..


오늘 어머니께서 장수 사진을 찍으신다고 합니다..


지금은 지극히 평범할지 모르겠지만,

아버지 30대 후반 그리고 어머니 30대 초반 때, 

클루는 조금 늦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세 살 터울 형이 있으니 대를 위해서 낳으신것도 아니었고, 

그저 Power of Love 였겠지요.ㅎ 

선택에 의해 어쩌면 태어나지 않았을..


유치원때는 잘 몰랐지만,

학교에 들어가고 보니, 부모님만큼 나이드신 친구들 부모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 사실이 창피하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제 학교생활에 관심이 적으신 건 아쉬웠지요.

연세가 많으셔서 그런가 하고, 늘 그렇듯 대수롭지 않게 지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문득 부모님의 연세를 생각하게 된 건, 아버지 회갑때였습니다. 

클루는 중국 어학연수 차, 막 떠났을 때라 미처 참석하지는 못했지요. 

군대를 전역한지 1년되던 해, 24살. 

가장 혈기왕성한 시기였던지라 아버지와의 격차가 더 크게 느껴졌고, 

가족들만 참석한 아버지의 조촐한 회갑파티 소식은 뭔가 더 초라하게 다가왔습니다. 


5년 뒤 어머니 회갑잔치를 하고, 부모님과 첫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

다른 친구들처럼, '엄마아빠랑 같이 해외여행 간다'의 느낌보다는,

'부모님 모시고 해외여행 간다'의 느낌이 확실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 부모님의 모습은 점점 작아지시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시간이 흘러 클루는 30대가 되고,

아버지 고희연 때, 제 선물은 바로 아내와의 결혼소식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결혼 3개월을 앞두고 함께 자리했었거든요. 

그때는 다같이 함께 웃고 즐거웠던 기억만이 자리잡고 있네요. 


내년이면 어머니 연세도 어느덧 고희십니다. 

그런데 오늘 어머니께서 장수사진을 찍으신다고 합니다..

벌써 그런 나이가 됐다고 하십니다. 

아침 출근길에 드린 안부전화 아니었으면 몰랐을 겁니다.

지역 금융기관에서 공짜로 찍어주는건데 왜 안찍냐며, 사진찍을때 입으실 한복을 챙겨가신다고 합니다.

그토록 태연하게 말씀하시는데 왜 제 마음이 더 속상할까요. 


사실, 아버지도 수년전에 장수 사진을 찍으셨습니다.

알고보면 영정 사진인데, 사진을 찍고나면 더 오래 산다는 의미로 어감이 안좋은 영정 사진 보다는 

장수 사진으로 불린다죠. 

한 기관에서 만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좋은 취지(?)로 무료 장수 사진을 찍어주는 듯 합니다.

오랜만에 고향집에 갔더니, 작은방 한 켠에 아버지 장수 사진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훨씬 더 태연자약하셨죠. 

당황스러웠지만, 우리집 분위기가 늘 그렇듯이 호들갑스럽지 않게 지나갔습니다. 

당시에 누나들은 아버지 장수 사진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하는데, 그때는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현실감이 없었거든요. 오히려 누나들한테 이상한 소리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죠.      


언젠가 TV를 같이 보다가 아내에게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부모님(장인어른 & 장모님) 돌아가시면 어떨 것 같아?' 

'난 진짜 죽을 것 같아, 아마 못살거야. 어렸을땐 그렇게 생각했었어. 부모님 죽으면 나도 따라 죽어야지.'

그런 아내를 보며 참 어리구나, 철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처가와 아내의 관계를 보면 응당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젊기도 하시지만, 아내도 아직 현실감이 없을테니까요.  


20대 때는 막연했습니다.

아주 가끔 해보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안계신다는 생각.

'난 아직 어린데, 만약 부모님이 안계시면 어떡해야 하지. 내가 누구한테 기댈수 있을까.'


지금은 30대 후반으로 넘어왔지만, 아직도 이르다는 생각은 듭니다. 암요.

그런데 어머니까지 장수 사진을 찍으신다니, 애써 외면하던 현실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아내의 생각을 못마땅해하던 내가 아내의 어린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끄럽기도 합니다.


아.. 부모님, 

안계신다고 생각하면,, 

난 무너질것만 같습니다.

깊은 내상을 입고 쉽게 일어날 수 없을것만 같습니다.  

내 아내와 내 아이, 기어코 내 손을 잡고 일으켜줄 가족, 그 자체로 인생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지만,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마르고 말라 더 이상 흘릴수 없다고 해도, 가슴 한쪽이 늘 젖어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기전에 무뎌지길 바랍니다.

스스로 무뎌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내가 나이를 많이 먹고 나면, 그때는 무뎌져서 견뎌내겠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시간을 많이 주세요.


부모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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