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닿아 다시 진해질 수 있을까.
그저 평범한 날이었다. 운동까지 하고 난 후의 늦은 퇴근길.
자각하지 않는 보통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귀갓길은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왕십리에서 5호선으로 환승하여 종점까지 간 다음,
버스 2번을 갈아타고 내려 걸어가는 여정이었다.
운이 좋으면 5호선은 타자마자 앉아서 갈 수 있는데 그날따라 평범한데도 운이 좋았나보다.
어김없이 영화 한편을 보려고 핸드폰을 열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바로 옆자리에 앉은 그녀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너였다.
23살의 바로 너였다.
긴 생머리, 하얀 피부, 동글동글한 콧망울까지.
우리 다같이 미지의 공간으로 여행갔을 때, 밤새워 기차 타고가던 그때,
고개들고 잠들었던 너의 그 옆모습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몇번이고 다시 보았다.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죄가 아니나, 오랫동안 쳐다보는건 좀 이상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힐끔힐끔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너였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결국 영화를 보지 못했다.
우리 모두 자기만의 세상이 있다.
2001년까지 그녀와 나는 아예 동떨어진 세상을 가지고 살았지만,
다음해에 우리의 세상은 서로 조금 가까워졌고,
그 후로 한때는 둘의 세상이 만나며 교집합이 커지기도 했었다.
그리고 십수년이 지난 지금은 단지 맞닿아만 있을뿐,
진해지거나 그렇다고 떨어지지도 않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한 카테고리에서만큼은 함께 머무르기 때문이다.
가끔 지인들로부터 소식을 전해듣고는 한다.
어떤때는 정말로 생각치 않은 꿈 속에서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말도 안되게 비슷한 사람을 보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나는 잠깐씩 우리 세상의 교집합이 커졌던 그때로 돌아가곤 한다.
너의 세상, 나의 세상.
이제는 많이도 닫혀진 세상.
맞닿은 부분이 진해져 커질 순 없다.
난 나의 세상이 부족함이 없는데,
너는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