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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감 Jan 24. 2024

흙탕물 속에 남겨진 한 조각의 마음 <괴물> 리뷰

[어땠어요] 흙탕물 속에 남겨진 한 조각의 마음 <괴물>리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이 47만 관객을 돌파하며 연말연초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칸 각본상 수상으로 워낙 화제가 많이 되었던 영화를 늦게나마 보고 왔습니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 분)은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 분)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미나토가 자신의 머리가 돼지의 뇌라는 등 알 수 없는 소리를 이어가자 사오리가 추궁하고 미나토는 자신의 담임인 호리(나가야마 에이타 분)가 자신을 학대했다고 엄마에게 털어놓습니다. 사오리는 다음날 비장한 마음으로 학교로 찾아가 학교의 교장(다나카 유코 분)에게 강력하게 항의하지만 모두의 행동이 심상치 않죠. 미나토와 같은 반 친구 요리(히이라기 히나타)와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사오리가 알게 되면서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갑니다.


<괴물>은 최근 많은 작품을 통틀어서도 가장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영화는 크게 세 가지 덩어리로 나뉘어 같은 시간을 반복합니다. 아주 다른 이야기를 느슨한 연결고리로 다룬 <러브 액츄얼리>와 같은 옴니버스 형식과는 다릅니다. 하나의 사건 자체에 집중하며 하나의 감정으로 관객을 이끌어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동안 비슷한 형식을 시도했던 작품들과도 약간은 궤를 달리한다고 느껴졌습니다. 엇비슷한 구조의 <초속5센티미터>와 같은 하나의 사건 속에서 각자 뻗어나가는 감정을 포착한 작품들과 다르게 하나의 진실과 한 인물의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동시에 겪는 것이 아닌 후유증을 밟는다는 점에서 <다음 소희>와도 분명히 다릅니다. 가장 비슷한 작품을 찾아보자면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요, 다름 아닌 일본 영화의 클래식으로 불리는 <라쇼몽>이었습니다. 강력한 스포일러이기에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조심스럽지만 영화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달리는 기차와 같은 형태입니다. 분명 나눠진 이야기지만 어떤 시나리오보다 이야기끼리의 연결성이 강합니다. 아마도 이 작품에 대한 극찬이 오가는 건 이 두가지 토끼를 잡다 못해 먹어 치워버린 괴물같은 이야기 구조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렇게 분산되어 있지만 동시에 연결성이 강한 이야기가 관객에게 주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체험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누구나 그 사건이 크던 작던, 도덕적이던 비도덕적이던 나눠진 말들 속에서 자신의 오해를 발견하는 순간은 한 번쯤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벙어리 장갑'(바른 표현은 손모아 장갑) 처럼 피해야하는 표현이라 생각하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라는 사자성어(맹인모상)를 느끼는 순간은 저 또한 수도 없습니다. 악당 같던 인간의 행동이 때로 필요악이었던 것을 알고 내심 미안하기도, 위선에 완벽하게 속아 배신감에 치를 떠는 일도 잔인하리만큼 우리 삶 곳곳에서 우리를 괴롭히곤 하죠. 영화는 이 순간을 정확하게 담아서 전달했습니다. 세 개의 이야기 속에서, 악당도 천사도 아닌 인물의 발버둥에 우리는 하염없이 공감합니다. 때로 분노하고 눈물짓는 공감의 근육을 충분히 풀어주고 나서 <괴물>이 밝혀내는 진실은 터무늬없이 작고 약한 한 조각의 마음입니다. 너무 작고 약해서 보지 못했던 그 한 조각의 마음, 결국 <괴물>은 그 한 조각을 위한 영화입니다. 우리가 속절없이 흔들렸던 마음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한장 한장 그 마음으로 다가가는 영화는 애틋한 균형감을 끝까지 놓치 않습니다. 더 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작품입니다.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만나는 기회는 아주 흔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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