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글쓰기 모임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소소하게 글을 쓰는 모임이다. 최근 그 모임에 또 다른 사조직이 생겼다. '감사일기'를 쓰는 모임이다. 책 <내면소통>에 심취한 동료 하나가 김주환 교수님의 말을 응용하며, "뇌를 청소하기 위해선 감사 일기를 써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몇몇의 동료들이 초대되어 매일 밤 그날의 감사를 나누는 카톡방이 개설됐다.
처음에는 하루에 5가지 감사할 일을 찾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울까 싶었다. 그래서 첫날엔 아무 준비(?) 없이 채팅방을 열어서 감사 제목들을 도독도독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1. 날씨가 좋아서 감사 2. 운동이 힘들어도 몸이 개운해서 감사 3. 종일 괴롭히던 두통이 사라져서 감사... 그렇게 3개를 쓰고 나니 할 말이 사라졌다. 감사한 일을 생각해내기는 커녕, 오늘 하루 내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일들을 했는지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그러다가 평소 내 자기 전 루틴을 생각해 보니 웃음이 나왔다. 사람의 뇌는 부정적인 정보를 더 빨리, 더 쉽게 받아들인다고 하던가. 그래서인지 나는 항상 자기 전에 그날에 있었던 '이불킥' 모먼트들을 습관적으로 리뷰했다. 그것은 주로 '그때 이런 말 하지 말걸' 따위의 것들이었다. 부정적인 경험은 아무 노력 없이, 이렇게 쉽게 떠올리며 살아왔는데 막상 감사할 것들을 찾아보라고 하니 억지로 기억을 뒤지게 될 줄이야?
그래서 그다음 날부터는 하루의 시작부터 의식적으로 감사할 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럭 미역국'을 먹어본 날엔 "아직도 내가 처음 먹어보는 맛이 있음에 감사"할 수 있었고, 추운 날 집에 돌아와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순간, "이건 무조건 감사할 거리다"라고 결심하게 됐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아주 작은 즐거움이라도, 발견하게 된 순간부터 밤까지 그 기억을 간직했다. 그제야 매일 5개 정도의 감사거리를 적는 일들이 쉬워졌다.
어느 날엔 서점에 들렀다가 입구에 꽂아둔 우산을 도둑맞았던 적이 있었다. 순간 너무 화가 났는데 하늘을 보니, 마침 비가 그쳐있었다. 그래서 그날의 감사일기엔 '우산을 도둑맞은 순간에 비가 그치게 하시니 감사'라고 적었다. 아마 평소의 나라면 자기 전까지 우산 도둑놈을 떠올리며 저주를 퍼부었을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내가 의지적으로 좋은 기억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도 '감사일기' 덕분이었다.
노력의 흔적들
그제야 왜 그토록 수많은 학자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서 매일 감사일기를 써야 한다고 말하는지 이해하게 됐다. 그동안의 내가 찾은 감사는 대체로 '수동적'이었다. 교회에서 말씀을 들으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마운 것들이 많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그러나 지난 며칠간 내가 찾은 감사는 모두 '능동적'이었다. 많은 상황들을 감사하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특히 나처럼 예민함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겐 억지로라도 감사할 거리들을 찾는 행위들이 내 일상에 부정적인 감정이 끼어들 틈을 막아주는 좋은 방패가 되었다.
감사일기는 혼자서 작성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해야 더 의미 있다. 우선 강제성이 생기고, 다른 사람들의 긍정적인 경험이 나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기 때문이다. 살면서 내 마음대로 될 수 없는 것들이 수두룩한데, 그 와중에 유일하게 바꿀 수 있는 게 태도더라. 감사일기는 결국 내 태도를 바꾸는 훈련이었다. 공부할 땐 비판적인 사고가 필요하지만, 삶에는 긍정적인 사고가 훨씬 좋단다.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