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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석 Sep 30. 2015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영월

김삿갓과 함께 걷는 영월



 운동화 끈을 재차 조여 묶는다. 종일 걷는 여행이 되길 바라면서. 걸음이 목적이 되는 일은 좀처럼 흔하지 않다. 어떤 일을 하러, 어딘가로 향하기 위해 걸음은 늘 수단이 된다. 오로지 걷는 것을 위해 떠나는 이는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다. 얇은 신발창을 통해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촉각에 온전히 그 시간을 바치는 일은 일상에 허락되지 않는 즐거움이니까. 산과 강이 그리는 경치를 덤으로 얻는, 영월은 걸음에 알맞은 여행지다.     


 영월은 방랑시인 김삿갓이 마지막으로 머문 곳이다. 물론 그를 알고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정처 없이 방랑하는 이들의 발걸음은 교차되기 마련인가 보다. 목적 없이 떠도는 일을 방랑이라 하는데, 전국을 떠돈 그의 방랑에 아무런 목적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도 걷는 재미를 알았기에 일생을 여행에 바쳤으리라 짐작해본다. 동강을 건너 서강으로 향하던 중, 길이 꺾이는 곳마다 삿갓을 쓴 그의 모습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곳을 걸으며 그는 어떤 의미를 찾았을지 궁금해졌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가다가 서니
산 푸르고 바윗돌 흰데
틈틈이 꽃이 피었네
화공으로 하여금
이 경치를 그리게 한다면
숲 속의 새소리는 어떻게 하려나

경치를 즐기다 - 김병연     



 강물에서 튀어 오르는 비릿한 물 냄새가 사라지고, 서부시장이 위치한 시내의 길을 걷고 있었다. 뻥튀기 장수가 ‘뻥이요’ 말도 없이 뻥튀기를 튀기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아이쿠” 소리를 냈다. 내 놀란 모습을 보고 웃는 뻥튀기 장수의 웃음이 도리어 내 마음을 뻥 뚫었다. 요즘 세상에도 이렇게 정감 가는 사람들과 마을이 있다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김삿갓의 시에도 방랑길에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사람들의 이야기와 모습은 그가 여행하고 시를 쓰며 찾은 의미 중 하나였다.      


서부시장 앞에서 만난 뻥튀기 장수 부부


가뿐한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아
한번 썼다가 사십 년 평생 쓰게 되었네.

목동은 가벼운 삿갓 차림으로 소 먹이러 나가고
어부는 갈매기 따라 삿갓으로 본색을 나타냈지.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고
흥겨우면 들고서 다락에 올라 달 구경하네.

속인들의 의관은 모두 겉치장이지만
하늘 가득 비바람쳐도 나만은 걱정이 없네.      

내 삿갓 - 김병연     


청령포 앞에서


 서강은 동강에 비해 여행객에게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서강 가는 길에 부는 바람은 사람 한 번 스치지 않은 신선한 기운이 있다. 급해진 발걸음만큼 빠르게 흐르던 땀방울이 서늘한 바람을 쫓아 날아갔다. 한층 가벼워진 발끝으로 바람을 거슬러 서강이 돌아 흐르는 곳까지 이르렀다. 갑자기 잔잔해진 바람과 물소리에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앞이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라 한다. 지금도 배를 타야만 건널 수 있는 저 소나무 숲에 단종의 마지막 거처가 있다. 영월은 평생을 방랑하던 김삿갓과, 한 곳에 매인 단종의 흔적이 겹쳐지는 곳이었다.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을 떠난 뒤로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가 푸른 산속을 헤맨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못 이루고해가 가고 밤이 와도 잠을 못 이루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
두견 소리 끊어진 새벽 멧부리에 지새우는 달빛만 희고
피를 뿌린 듯한 봄 골짜기에 지는 꽃만 붉구나
하늘은 귀머거린가, 애달픈 하소연 어이 듣지 못하는가
어찌하여 수심 많은 이 사람의 귀만 홀로 밝은고     

단종이 청령포에서 지은 자규시(子規詞)     



 앞으론 강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있어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큰 숲이 되어 멋진 운치를 자랑하는 소나무들이 단종에겐 울타리와 말뚝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처럼 삶은 좀처럼 뜻대로 흐르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내 발걸음 하나뿐임을 김삿갓은 알았던 것일까. 청령포의 강물과 소나무 숲은 멋지기만 한데 괜히 마음이 답답해 다시 김삿갓의 발길을 따라 나섰다.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바람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대로 맡기리라.
손님 접대는 집안 형세대로
시장에서 사고 팔기는 세월대로
만사를 내 마음대로 하는 것만 못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나세.       

대나무 시 - 김병연     


영월 시내를 걷다가


 걷고 있다는 감각을 넘어 한 발짝씩 내딛다보면 여러 생각들이 발끝으로 스치기 시작한다. ‘그때 걸었던 그 길과 비슷하네.’, ‘함께 걸었던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지.’, ‘다시 만나면 이렇게 말해주어야겠다.’ 회상은 꼬리를 물고, 떠오른 생각은 다음 한 발짝을 내딛는 동력이 되었다. 잊었으면 하는 일들도 이럴 땐 회상의, 반성의, 상상의, 추억의 기회가 됨을 깨닫는다. ‘싫다 좋다’,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계속해서 걷는 한 김삿갓에게도 우리에게도 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선돌 앞에서 만난 아이들. 옳고 그른 관점은 없다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꼭 옳진 않고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해도 옳지 않은 건 아닐세.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것이 그른 것은 아니고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일세.     

是是非非非是是 是非非是非非是 시시비비비시시 시비비시비비시
是非非是是非非 是是非非是是非 시비비시시비비 시시비비시시비     

시시비비 시 中 - 김병연     



 그렇게 걸어 하늘도 울고 갔다는 소나기재를 넘었다. 이 고개를 넘어 꼭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선돌’이라는 큰 바위. 어쩌면 그 바위보다 그 배경이 되는 풍경을 보고 싶다 하는 것이 옳겠다. 그 풍경을 이루는 이 고장만의 나무들과 굽이치는 강을 보고 싶었다 하는 것이 옳겠다. 낮은 곳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이 장면이, 방랑하는 이들이 찾는 또 다른 의미는 아닐까 싶다. 선돌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 <가을로>의 한 장면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극중 여주인공 민주가 남긴 대사 역시 우리가 찾는 방랑의 의미를 전하고 있었다.     


“때로는 조금 높은 곳에서 보는 이런 풍경이 나를 놀라게 해.
저 아래에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펼쳐지거든."     

영화 <가을로> 민주의 대사 中
영월역 앞 고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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