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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석 Sep 27. 2016

비양도와 소년

-고광자의 시와 함께 찾은 비양도

 섬으로 눈을 돌렸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빠짐없이 보았을 것이다. 수평선 위에서 달리 찾을 것은 없기에 우리는 같은곳으로 시선을 모은다. 언젠가 저 곳을 찾아야 한다며 바다 너머 약속을 던지겠지. 늘 보아도 갈 마음은 쉽게 서지 않는 곳이다. 아직 밟지 못한 곳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위해, 육지와 섬 사이에는 바다가 있는 편이 낫다. 딱 이만큼의 거리가 좋다.



 사람이 좋지만 사람이 싫은 사람들은 섬으로 향한다.발걸음이 잦아질수록 이곳이점점 섬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섬의 역설이다. 제주마저 도시를 닮아간다.도시가 번진 삶이 좋다 싫다하는논쟁에 낄 생각은 없다. 다만 섬을 향한 사람들은 이제 다시 바다를 건너야 한다. 제주에서 자란 한 시인도 이렇게 섬으로 갔다. 홀로 바다를 건너는 소년과 소녀.이 시인은 섬을 닮았다는 생각이든다.


소년은 그 섬으로 갔다
내 안의 소녀를 찾아서
한라산과 오름이 일제히 돌아보았다
비양봉 등대가 눈을 크게 떴다
고요 바다에 떠 있는
소녀의 눈동자를 찾는다

-비양도와 소년, 고광자



 메께라,제주와 비양도를 오가는 배는하루에 세 번 있다. 높은 파도에 밀려오는 어지러움마저 오늘은 반갑다.함께 오른 아저씨가 이 배는늘 이렇다며 크게 웃었다. 흔들리는 버스에 익숙한 도시인들이 섬마을 아저씨의 소통에 마음이 흔들렸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도 바다에 몸을 맡기는 법을 아는 것 같다.갈매기가 지쳐 항구로 돌아갈때쯤 비양도가 다가왔다. 구름이 적당히 많은 날이다.구름의 끝은 비취색과 맞닿아있다.


 항구에 곧 닿을 배는 몸을 움츠렸다. 쿵 하는 소리는 섬에 도달했다는 신호다. 배가 오는 시간을 아는 것인지 두 마리의 강아지들은 매번 마중을 나온다. 몇 번 쓰다듬어 주면 비양봉 꼭대기까지 따라오는 녀석들이다.능선을 타는 내내 억새 꽃인지강아지 털인지 모를 포근함이 이어졌다. 바다 건너 마을이 보였다.구름 사이로 내려오는 햇발이 곳곳에 박히고 있었다. 



 비양봉은 제주도 전체를 바라보기 좋은 언덕이다. 아담한 주택 사이로 꼬물거리며 움직이는 일상들이 눈에 들어왔다.섬을 여행하는 것은 일상에서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주우러 오는 것이다.먹고 자고 사람을 그리워하는가벼운 일상들은 우리의 곁을 떠난 지 오래다. 일상은 놓친 후에야 간절한 이상이 된다.왜 사람들은 일상이 충분한지몰랐을까. 가만히 있어도 지나갈 순간들을 왜 그냥 두지 못했을까.


둥근달을 만드는 건 이치다
가만히 기울이면 저절로 달이 되거늘
그 후가 문제다
왜 사람들은 기운다고 생각할까
왜 사람들은 식는다고 생각할까

고광자, 수평선1-보름달이 기운다는데 中



 속이 들여다보이는 담장을 따라 바닷길을 한 바퀴 돌았다. 다시 항구로 돌아오는 길에 유모차 다섯 대가 나란히 서있다.아이가 앉을 자리는 없었다. 그 자리엔 산나물과 스카프, 바구니가 앉아있다.유모차는 할머니들의 걸음을지탱하는 손수레였다. 유모차 뒤에 선 비양도 해녀들은 아직도 못 가는 곳이 없다.바다와 겨루던 해녀들은 아직당당했다. 그들의 삶이 아플 것이라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누구도 그 삶을 외로움으로덧칠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아이의 자리가 없는 유모차는 그 자체로 가슴을 쿡 찌르는 구석이 있다. 그리움이 익숙해진 삶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육지가 섬을 그리워하듯 섬도 늘 사람들을 기다렸다. 


섬은
육지를 바라보고
육지는
비양도를 바라보며
서로를 그리워한다
때론 안타까이
속마음을 들여다보며
가끔 고개를 끄떡인다.

-고광자, 비양도


 해녀가 바다 속에서 참던 숨을 한 번에 내쉬는 소리를‘숨비소리’라 한다. 물결을 타는 매순간 해녀는 고민에 빠지리라. 바다 속의 생존과 바다 위의 생계 사이에서. 고민 끝에 내쉬는 숨과 들이쉬는 공기는 얼마나 반가운 것일지. ‘호오이!’ 해녀를 낳은 해녀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이 섬이솟으며 내뱉은 숨비소리를 목격한 이도 있을까. 천 년의 시간 동안 해녀는 삶을 건져 올렸고, 비양도는 바다를 줍고 있었다. 


예쁜 엉덩이 하늘에 솟았다
커다란 젖가슴
깊은 바닷물에 담그고
커다란 두 손으로
낙지를
해삼을
소라를
캐고 있는 천년의 세월.

(중략)

비양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줍는 해녀 섬.

-고광자, 비양도



 시인 고광자는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를 떠나 본적이없단다. 태어난 곳을 찾아 그 땅에 다시 엎드리고픈 그 본능이 모두에게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매 순간 바다를 그리워하는이유도 알 것 같다. 결국 삶은 바다에서 시작되었으니까. 우리들은처음에 외딴 섬이 아니었나. 그래서 바다 앞에 서면 이렇게 걱정도 놓이나 보다. 처음 찾은 해변을 걸어도 마음이 편하고. 그 동안 밖에서 참아왔던숨을 모아 나도 바다를 향해 크게 내쉬어봤다. “호오이!”    

바다를 떠나 본적이 없었다
바다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고광자, 작가의말 中


 딱 비양도와 제주도만큼의 사이를 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항상 보이는 곳에 있어도 함부로닿지 못하는. 모든 관계를 그리움으로 채울 순 없지만 늘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 삶은 더욱 깊이가 있을것 같다. 하루의 마지막 배를 타고 섬을 나오면서, 늘 그리워할곳이 생긴 탓에 조금 더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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