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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Jul 19. 2019

행복은 오는 게 아니라 찾는 것이다

내게 남은 문장들 1

'행복은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어요. 행복을 여기에서 찾아요'


전 직장에서 '인생은 D처럼'이란 말을 자주 듣는 D 씨가 있었다. 곰돌이 푸에 나오는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그 이상으로 매일 행복해 보였다. 사소한 것들에도 감탄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에 지켜보던 우리들은 경이로움을 느꼈다.


점심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D씨는 꽃을 하나 샀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사고 싶어서 샀다고 한다. 원래도 밝은 상태인데, 꽃을 사고 나서는 더 밝아졌다. 그래서 물어봤다. 'D 씨는 어떻게 그렇게 행복해요?' 그러자 D 씨는 '행복은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어요'라고 선승과 같은 말을 했다. 선승에게 질문 던지는 제자처럼 '언제, 어떨 때 행복감을 느껴요?'라고 다시 묻자 D 씨는 걸어가며 짧게 행복하게 해 준 것들을 읊어주었다. '지나가는 길에 좋아하는 그룹의 음악이 나와서', '이쁜 꽃을 사서', '퇴근길 걸어갈 때 공기가 시원해서', '잠을 잘 잤을 때', '팬 미팅 갔을 때', '좋아하는 음악 나왔을 때', '트위터에서 내 이름 봤을 때'.


듣다 보니 사소했다. 사소해서 '그걸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나? 다들 그런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애초에 질문을 했던 이유는 '나는 그렇게까지 행복감을 느끼고 살지 않는데, 저 사람은 어떻게 행복감을 느끼는 걸까'였다. 불행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딱히 감정 폭이 높아지질 않았던 것.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복한 순간들을 물어봤다. 

L 씨는 '맛있는 걸 먹을 때',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할 때' 

M 씨는 '내가 한 음식을 상대가 맛있게 먹어줄 때',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릴 때', '내일은 출근 안 해도 될 때' 

J 씨는 '친구들과 놀고 헤어질 때', '여행 갔을 때', '고양이랑 한 침대에 있을 때' 

H 씨는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부담 없는 사람과 밥 먹을 때'였다.


다 듣고, 내가 뭔가 행복에 대해 오해했단 생각이 들었다. 뭐가 행복일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살진 않았지만, 막연히 행복이란 어떤 엄청난 이벤트라고 생각했나 보다. 회사 취업, 김동률 콘서트 같은 것처럼 강렬한 한 지점만 행복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행복감을 느낄 일이 많지 않다고 느꼈던 것이다. 인생에 몇 없게 높은 지점이 아니라, 하루 중 조금이라도 좋은 감정을 느낀 점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면 나도 행복할 일들이 제법 자주 있었다. 


괜찮은 카페를 발견했을 때, 그때그때 꽂히는 걸 먹을 때(저번 달은 흑당 밀크티) 좋은 음악을 알게 됐을 때, 책에 밑줄 칠 구절이 나올 때, 영화에 빠져들 때, 잠을 잘 잘 때, 코드 맞는 친구들과 대화할 때, 드립 커피 내릴 때, 글 쓸 때.


쓰고 보니 D 씨만큼은 아니어도, 곰돌이 푸만큼은 행복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행복에 대한 질문과 고민을 하던 내게 D 씨는 말했다. '행복을 여기에서 찾아요'. 나를 행복하지 않게 하는 일들이 오더라도, 나는 내가 행복한 일을 찾으면 된다. 행복이 오길 기다리기보단, 여기서 찾아보자. 나는 오늘 행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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