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애를 써도 좁혀지지 않는 사이가 있다. 모든 사람과 긴밀하게 친해질 수도, 꼭 그럴 필요도 없지만. 긴밀해 져보려 해도 해질 수 없는 그런 사이가 있다.
가까워질수록 더는 다가갈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게 한다. 취향이 다르거나, 대화의 결이 안 맞거나, 무엇을 먹든 사진을 찍는다거나 하는 사소한 습관 때문에라도. 그래서 끌렸을지 모르지만, 그래서 밀어낸 걸지도 모른다.
아무리 가까웠어도 멀어지는 사이가 있다. 그 이유를 둘 다 알 수도, 한쪽만 알 수도, 둘 다 모를 수도 있다. 함께 거쳐온 시간이 무색하게 깔끔하게 멀어질 때면 가깝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렇게도 쉽게 멀어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건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가 아닐까란 생각도 한다.
인간관계는, 법적으로 계약된 관계가 아니라면(이마저도 번거로울 뿐) 상호 합의 또는 한쪽의 정의로 규정될 수 있다. 한쪽이 그만의 이유로 관계의 끝이라 정의하면 거리에 상관없이 관계는 끝난다. 많은 연인들, 친구들 심지어 가족까지도.
아무런 애를 쓰지 않아도 가까워지는 사이도 있다. 가까워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 어느새 '함께'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을 때가 있다. 토요일 오후에 함께 만난다는 게 당연해진 사이. 학교를 입학할 때면 새로운 친구들과 언제 친해질지 고민하곤 했다. 한 주만 지나면 함께 하는 이들이 어느새 생기기 시작한다. 함께라는 단어가 어느새란 단어와 어울리는 건 정말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이 모든 사이가 되기까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노력해야 다가가기도 하지만 노력해도 멀어지기만 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가까워지는 이런 사이에서. 가까워지고 싶다면 다가가고, 다가가지지 않는다면 다가갈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가까웠는데 멀어진다면 지금 거리가 변하는 중임을 알아채고, 어느새 가까워졌다면 그 거리를 누리는 것.
어떤 사이인지 안다는 건 지금 실제 거리가 어떤지 인식한다는 것이 가까워지는 것보다 멀어지지 않는 것보다 중요해 보인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변하는 거리에 맞춰, 마음에 맞게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