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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수씨 홍시아빠 Jan 14. 2018

잊어야 한다는 것,
잊혀져야 한다는 것.

함수씨일기(2018.01.13.토)

잠결에 알람을 들었던 것 같은데, 눈을 떠보니 이미 지각이다.

주2회 중 주말 수업을 들으러 가는 날. 주말 수업은 일찍가야 자리도 좋은 곳에 앉는데

수업 시작하고 참고영상을 볼 때에 겨우 들어가서 자리를 맡았다.


수업은 힘들었다.

이제 3주차가 되어가니 차근차근 따라하는 식은 없고, 응용하는 것들로 진도가 슉슉 나간다.

예/복습이 되어있지 않으면 따라올 수 없는 시작점에 온 듯했다. 한주 내내 시간을 못 냈던 것을

보란듯이 헐떡이며 쫒아가기 바빴다. 


워낙 뭘 하던지, 한번에 쏙쏙 이해하면서 적용하질 못하는지라. 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나인것을 잘 알지만, 아 이럴때는 정말이지 도움이 안되는 성격이다. 익숙하기 전까지는 늘 이런다.


수업을 마치고 나서는 한껏 예민해진 마음을 달래러, 집에 오던 중간에 내려서 튀김2인분(김말이와 오징어만)

에 떡볶이 국물을 뿌려서 달라고 주문하고 2끼를 한꺼번에 먹어치웠다. 젊을때는 안그랬는데, 직장생활 하다보니 이제 먹으면 잊혀진다. 


싱글벙글 집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하고, 청소를 하다가 언제라도 반가울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저녁에 홍대쪽에 도착한다니 잠시 얼굴을 보자는 내용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가까운 지인들과는 명확한 약속을 잡지 않는다. 꼭 지켜지지 않아도 괜찮고, 그가 늦어도 내가 늦어도

서로를 섭섭하게 할 사이가 아니기에 더더욱 이런 만남은 반갑고 여유롭기도 하다.


그렇게 오랫만에 만나서 어제 만난던 사람들 처럼 수다타임을 시작한다.

파주에 그림그리는 모임에 놀러가서 홍시를 그렸다고, 그림을 선물해준다.

아. 이런. 이사람. 매번 늘 사람을 감동시킨다. 아주냥 일상이 필살기인 매력덩어리. 

감격스러움에 마음이 찡했다. 자신의 시간에 나를 넣어준 선물. 인생을 선물 받은 기분이 든다.

어차피 저녁에 만났으니 추운 날 늦게까지 시간을 낼 수가 없음을 알기에

바로 눈앞에 보이는 뷔페식 식당으로 들어가서 식사부터 후식까지 먹자고 했다

(아 이런 아재같은 ㅎㅎ)


이야기를 나누다가 혼자서 버릇처럼 되뇌이는 마음을 툭 하니 말하게 되었다.

말해도 될 만한 사람이기에, 결론보다는 대화를 나눌 줄 아는 이이기에 괜찮다.


[ 요즘은 혼자가 되는 것, 혼자인 채로 살아가야 한다는 앞으로의 시간을 받아들이려고 연습하는 것 같다.]


잊고 살아야 하고, 누구에게라도 잊혀져야 한다는 것이 삶에서 꼭 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

주말에 바쁘게 일정을 시작하고, 해야할 것들과 하고싶은 것들과, 잘하고 싶은것들과 무수한 할것들의 무게에

눌린것 같고, 그와중에 연락오는 사람은 반갑고, 배가 고프고, 졸리면 자야 한다. 오늘처럼 반갑게 만나서 일상을 나누었던 친구들과 스쳤던 인연들과 가족들도 늘 바뀌어 왔고, 떠나보냈고, 예전같지 않았기에

지금 눈 앞에 벌어지는 현실과 인연에게 충실하고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던 마음을 전하려던것이

괜시리 저런 우울감 넘치는 문장들을 뱉고 말았다. 


나보다 11살은 젊은 청년에게 부끄러운 투정을 부린 것 같은데, 그는 같이 재미있게 할만한 행동들을 제안한다.

그는 나와는 다른 건강한 잊는 법을 몸에 익힌 듯 했다. 좋다좋다 하다가 다음에 같이 그림을 그리러 갈 듯하다.


잊어야 하고, 잊혀져야 한다는 것이 겪게 될 일이라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 시간이 두렵고 헛되어서 무기력해진다면, 그 시간에는 아쉽고 속상하기만 할 것이다. 자책하고 말이지.

추억을 만들어야지. 아쉬워도 충분했다는 마음이 들도록 말이지.


이제는 아무나와 속 깊은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 '아무나' 라는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으로 나뉘어 지지만, 진심이 보여지는 사람이 아니라면

시간을 내서 반갑게 만날 자신이 없다. 일주일에 주말만 쉬는 요즘에, 시간이 그렇게 많지도 않기에

삶에서 아까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기도 하다.


오직 추억을 남기기 위해 존재한다. 

함수씨

2018.01.13



꼬물꼬물 자라나는 화분들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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