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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먼지 Jul 09. 2020

서울 밤 외톨이

서울에서 살아남기

사람 많은 곳이 유난히 싫다.

30년 넘게 서울에서 살았다. 주점과 음식점이 즐비한 건대입구역 근처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같이 살다 보니 30대 중반까지 나는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오랫동안 그 공간에 지쳐서 일까? 나는 시끄럽고 사람 많은 공간을 피하고 싶다.


서울에서 살아남기

결혼 후, 밤낮없이 밝은 대학 중심가를 떠났다. 하지만 여전히 서울. 직장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지만, 익숙해진 공간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서울은 치열하다. 여유로운 낮 시간을 즐기고 싶어 주말에 브런치 카페에 간다. 북적북적 어디든 사람이 많다. 그래서 나는 TV나 SNS에 소개된 맛집멋집은 제외한다. 이상하게 그런 곳에 가면 여유를 즐길 수 없다. 왠지 좋은 자리를 차지해야 할 것 같다. 사진을 꼭 찍어야만 할 것 같다.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듯 팽팽한 긴장감을 느낀다. 과시와 욕망의 공기로 가득 채워진다. 이후 집으로 오면, 이상하게 몸과 마음이 지쳐 있다.


넷플릭스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를 본 적이 있다. 시즌3 <추락 (Nosedive)>이라는 에피소드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의 눈에 평점 렌즈가 장착되어 있는 미래 세상. 소셜미디어 점수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회를 그린 내용이다.

생활 곳곳에서 타인에게 별점을 준다. 타인에게 평가를 받는다. 점수는 곧 사회적 지위가 된다. 지금의 우리 모습과 묘하게 닮아있다.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서울 밤 외톨이

서울에는 갈 곳이 많다. 먹을 것도 많다. 그만큼 검색하고 선택해야 하는 것도 많다. 돈만 있으면 하고 싶은 건, 거의 다 해볼 수 있다. 사실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도 많다. 오늘도 너무 많은 생각을 했다. 어는 순간 과부하가 온다.


생각이 많고 복잡하다. 이럴 때 청소를 한다. 서랍을 열고 깊숙이 있는 것을 꺼낸다. 먼지와 머리카락을 치운다. 필요 없는 것들을 추려내는 작업을 한다. 매번 '보내도 되는 것들'이 다르게 발견된다. 몸과 마음을 정리하듯, 나는 그 물건들을 정리한다. 재활용 상자에 담거나 중고로 파는 방식이다.


그리고 빨래를 시작한다. 냄새나고 꿉꿉한 마음을 씻어내기에 빨래만큼 좋은 일도 없다.

세탁기라는 '마법의 상자'에 세제와 향기물을 넣으면 끝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일은 없다. 마법 같은 일이다.  


예전에 <빨래>라는 뮤지컬을 본 적이 있다. 고된 서울살이에 대한 이야기다. 기구한 삶을 살아온 주인 할매가 나를 위로한다.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시간이 흘러 흘러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슬픈 니 눈물도 마를 거야 “

뮤지컬 '빨래' <슬플 땐 빨래를 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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