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성향이 분석, 비판적이다 보니
결혼 생활에 대한 행복은 전혀 적지 않았는데
결혼해서 좋은 점도 물론 있다.
1. 안정감
이건 결혼 전에 기혼자들에게 엄청 들은 건데
나도 이런 식상한 말을 하게 되더라
연애를 하면 재미가 있지만
결혼을 하면 내 가족이라는 안정감이 있다.
그리고 내 가정도 생긴다.
2인가구지만 어쨌든 이건 내거니까.
부모님과 살며 부모님의 규율을 따르고 생활했다.
현재는 우리 둘이 치고받고 싸우며
서로의 규칙을 만들어가고 있다.
다른 신혼부부처럼 서로 저녁을 함께 먹고
함께 잠드는 오붓한 시간은 없지만
그럼에도 둘이서만 사니까 서로 의지가 된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남편이 1빠이다.
2. 소소한 일상의 행복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매우 힘든 것도 있지만
그만큼 안 해봤으면 몰랐을 좋은 것도 있다.
자다 깼는데 남편이 옆에 자고 있는 거
내가 늦게 귀가했을 때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거
남편이 근무하다 너 생각나서 샀어
사다 주는 소소한 먹거리
오늘은 월급(용돈) 받았으니까 맛있는 저녁 같이 먹기
아플 때 약 갖다주고 챙겨주기 등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 가족이라서
가족이 하는 것들을 한다.
물론 요즘은 동거가 흔해서
동거해도 할 수 있는 것들인데
만약 아기가 있다면 아이를 키우며 하는 것들을
공유할 수 있을 테니 서로에게 더 침투할 수 있다.
매일 봐야 해서 싫은 것도 피할 수 없지만
아주 작은 소소한 기쁨도 누릴 수 있다.
3. 같은 집
나는 초초초 내향인이라
종일 집에 있는 게 행복하다.
그런데 구남친(현남편)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연애 때 매주 주말에 남친을 만나러 나갔다.
현재, 나는 집에만 있어도 남편이 들어오고
만날 수 있다. 이거 되게 좋다.
특히 남편이 교대근무라 정말 얼굴 보고
얘기하기도 힘든데
이럴 거면 왜 결혼했나 싶으면서도
결혼이라도 안 했음 더 못 봤겠네
싶은 마음도 든다.
남편이 피곤해하면 집데이트를 해도 되는 점이 좋다.
연말연시 크리스마스 명절 사람 붐비는데서 고생 안 해도 된다.
(물론 남편 근무라 같이 보내본 적은 없는 것이 함정)
4. 책임감
연애와 결혼/ 동거와 결혼 제일 큰 차이는
서로의 가족이 자기의 가족이 되는 점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둘이 싸운다고 "헤어져!"이게 아니라
좀 더 깊은 생각이 든다.
안타깝게도 우린 신혼부터 박 터지게 싸워서
어머님과 우리 엄마의 개입이 조금 있었는데
확실히 그래서 관계에 조금 더 신중해졌다.
내 감정 우선보다 이혼할 거 아니면 이걸로 뭐 싸울 거까지야..라는 생각으로 유하게 넘기는 것도 늘어나고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생긴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다가 한수 접고 들어갈 줄 알게 되었다.
결혼하고 사람이 좀 성숙해졌다 할까
나 좀 어른된 듯? 이런 말 자주 한다.
피곤해 죽을 거 같아도 열심히 살림을 놓지 않고 가꾸고 있다.
여태 부모님이 해주던 행정처리 등도 우리가 하게 된 것도 있고...
예전에 당장 백수라고 굶어 죽는단 느낌은 아니었는데
정말 내 생계를 위해 일하는 느낌이다.
마지막은 지극히 개인적인 장점이지만
남편과 혼인신고 후 내가 한 말이 있다.
"우리 이제 같이 묻힐 수 있겠네"
그게 무슨 말이냐 남편이 경악했다.
사실 내가 남편이랑 결혼한 제일 큰 이유는
이 사람의 시간, 일생을 내가 계속 보고 싶었다.
아마 우리가 연애하다 헤어졌다면
꽤나 아름다운 젊은 날의 긴 추억으로 남았을 거다.
(그럼 이런 더러운 꼴 볼 일도 없었겠지...)
하지만 그러기 싫었다.
그때 헤어진 너... 지금은 누군가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사니? 이런 거 하고 싶지 않았고
이 사람이 어떻게 늙는지 옆에서 지켜보면서
가장 큰 일을 겪을 때 손잡아주고
죽을 때 옆에 있어주는 게 서로였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지지고 볶고 더럽고 치졸하고 후회해도
그냥 그렇게 보면서 SNS 뒤지는 짓 안하고
안 궁금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했습니다 결혼!
전혀 순탄하지 않고 앞으로 어찌될지 모르지만
이것이 내가 생각한 결혼의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