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는 나

21. 엄마에게 왜 짜증이 날까

by Hima

엄마에 대한 내 감정은 복합적이다.

좋은 거 있으면 생각나고 알아서 챙기고 연락도 자주 한다. 그런데 어딘가 늘 짜증이 나있다.


남편은 나에게 말한다.

우리 아기가 자라서 나중에 너한테 그렇게 대하면 너는 좋겠냐. 어머니에게 잘해라


편하니까 함부로 대한다.

맞는 말인 거 같다.

못돼 쳐 먹었다.


자식에게 이토록 헌신적인 엄마한테 나는 왜 그럴까

심각하게 고민해 봤다.

엄마와 나의 관계는 거리가 필요하다.


과보호라고 할 정도로 엄마는 나에게 나이에 맞지 않은 많은 관심과 지나친 참견을 했다.

대학생 때 저녁때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미친 듯이 전화가 왔고(나는 술을 마시지도 않고 집에서 잘 나가지도 않는다.) 나를 통제하고 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알고 싶어 했다.

알게 모르게 엄마의 그런 모습을 나도 참 많이 배웠다.


내가 특히 싫어했던 것은 엄마는 나를 포기시키거나 그만두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힘들면 그만해, 안 한다고 해. 쉬어. 빠져. 힘드니까 그런 건 하지 마. 가지 마.

어떤 상황에 대한 이해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나에게 그만하라고 말하는 엄마가 싫었다.

(심지어 회사가 힘들다는 말에도 저런 식으로 답했다.)

모두 나에 대한 걱정에서 시작한 말이었겠지만 나는 점점 기운이 빠졌고 무기력해졌다.

난 엄마의 응원이나 격려가 더 필요했던 거 같다.


성인이 되고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엄마와 분리가 좀 필요할 거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 엄마가 정신적으로 건강한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아니었다.

원인은 언니 때문이었지만 피해는 내가 받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멀어질수록 나는 숨통이 트일 거란 얘기를 들었다.


지금도 엄마가 너무 나에게 침투하려고 하면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다.


힘들다. 하면 엄마는 으레 그렇듯 내가 갈까? 그만해.

내가 해보기도 전에 그런 건 하지 마 이렇게 말한다.

무조건적인 내 편이 고맙지만 한편으론 엄마를 뿌리치면 엄마는 화를 내거나 삐진다.

그런데 내가 약해지면 엄마에게 쉽게 의지하려 한다.

그럼 나는 또다시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엄마에겐 양가감정이 생긴다.


엄마와의 관계가 이토록 복합적인 건 다른 가족들과도 얽혀있다.

엄마는 아빠와 부부간 애정이 단절되어 있다.

부모님은 너무 다르고 서로를 이해하지 않는다.

아빠는 우리 가족보다 본인의 원가족에게만 애정과 관심을 썼다.(즉, 엄마의 시댁이다.)


엄마는 자식들에게만 애정을 과하게 쏟았다.

첫째인 언니는 그게 싫어서 많이 뛰쳐나갔다.

그래서 엄마는 더 나에게 기대와 통제를 했고 나름 모범생 성향이던 나는 그걸 해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불안과 집착이 솔직히 버거웠다.

그러면서 자라다 보니 알게 모르게 언니에 대한 무시와 혐오감도 자랐던 거 같다.

그러면서 터진 게 성인기 초기 우울이었다.


그런데 언니는 아기를 낳고부터 갑자기 엄마에게 돌아왔다. 다시 엄마가 필요해졌고, 많이 의지했다.

그리고 엄마는 만족스러워 보였다.


이 과정에서 상처받은 것도 나였다.

결국 본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관계회복하고 그 과정에서 갈아 넣어진 나는?

이런 분노가 꾸준히 남아있다.


결혼 전 엄마와 여행을 가서 이 부분에 대해 얘기했을 때 엄마가 무척 놀라며 자신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동성인데도 다른 자매와 달리 왜 내가 그토록 언니를 싫어하는지, 함부로 대하는지 엄마는 그게 본인 탓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요즘도 가끔 엄마가 하는 손주들에 대한 통제는 예전 나를 보는 거 같이 숨이 막힌다.


결혼 후 남편을 통제하던 내 모습에서 엄마를 발견할 때마다 흠칫 놀라고 경계하게 되고,

임신을 하게 되었을 때도 엄마에게 아기를 맡기지 말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녀에게 집착하지 말고 독립시키는 게 목표이며 결국 남편이랑 내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가장 좋다.

이런 많은 목표를 세우게 한 데는 엄마에게서 비롯된 많은 것들이 있다.


그렇다고 내가 엄마에게 미움만 남아있는 건 아니다.

남편의 말대로 먼저 사과하고 전화하고 돌아가야 함을 안다.

엄마와 딸의 관계. 이렇게나 멀고도 가깝고 또 어렵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 2024년 은퇴 후 목표 하나를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