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주 0일
내 아기는 정확하게 예정일에 태어났다.
사실 그전부터 약한 진통이 있었다.
태어날 것 같다.
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출산 당일
진통 강도도 평소보다 높고 주기도 일정했다.
병원에 전화해 보니 오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때 병원간 걸 후회했다.
분만실로 내려가서 출산의 굴욕이라는 관장과 내진을 겪는다. (나는 분만 전에 계속 자연관장이 되어서 나오는 것도 없었다.)
진통이 더 세질 때까지 병원에서 무한대기를 해야 했다.
배에는 수축 측정을 위한 기계를 부착한다.
이게 참 힘들었는데 난 진통이 허리로 많이 왔다.
기계는 배만 측정하는데 강도가 약해도 난 계속 허리가 붕괴되는 느낌이었다.
계속 누워있는 게 너무나 고통이라 일어나서 걷거나 다른 자세를 취하고 싶은데 그럴 때마다 간호사가 기계가 정확한 측정을 못하니 좀 가만히 누워있으라 말했다.
집에 있었음 다른 자세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초산이라 잘 열리지 않는 자궁문을 체크한답시고 와서 하는 내진은 고통과 공포였다.
내진을 할 때마다 피가 왈칵 쏟아졌다.
나는 오후에 갔기 때문에 분만실에 나 혼자 있었다.
(요즘은 보통 제왕이라 수술 일자를 잡고 한다.)
밤에는 당직 의사와 간호사만 있다.
당직 간호사들은 무뚝뚝했고 남편마저 뭘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이 진짜 싸가지 없다…며 진저리를 칠 정도였다.
다행히 당직의사는 남자였지만 굉장히 친절했다.
남자의사에게 내진은 부끄럽다던가 그런 생각은 아픔이 없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고 너무 큰 고통 앞엔 굉장히 초연해진다.
나는 분만실에서 무슨 미친 고라니처럼 계속 소리를 질렀다.
나는 밤중이라 유도분만이 불가해서 수술 아님 자연분만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남편은 밤이라 나가면 내일 병원 문 열 때까지 못 돌아오거나 여기서 밤새는 것뿐이라고도 했다.
자연분만이 하고 싶어서 오래 기다렸지만 허리 진통만 강하고 자궁문이 열리는 진행은 좀처럼 되지 않았다.
허리가 계속 눌린 느낌이었는데 아기가 똑바르지 않고 비스듬히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결국 양수도 터졌는데 정말 고통스러웠다.
허리가 정말 정말 아팠고 계속 덜덜 덜덜 떨면서 너무 추웠다.
결국 못 참고 응급제왕 수술을 하게 되었다.
이때 남편이 있어서 그나마 수술 동의서에 사인해 줄 수 있었다.(다음날 아침에 오겠다고 했었음)
의사가 정말 잘 생각했다며 바로 수술을 하자고 했다.
수술대에 올라가는 건 내가 해야 하는데 피 흘리며 어기적어기적 걸으며 그조차 어려웠다.
새우처럼 둥글게 등을 말고 수술대 위에 누웠다.
간호사가 마취 주사를 잘 못 놔서 몇 번이고 계속 맞아야 했다. 진통 때문에 그 아픔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하반신 마취를 하면 의식이 있고 아기를 보여준 후에 수면마취를 해준다고 했다.
수술 시작한 지 몇 분 안 지난 거 같은데 저 멀리서
“흥애! 흥애애!!!”하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기를 낳은 다른 환자도 있던 건가?
멍하니 생각했는데 그게 내 아기였다.
나에게 갓 태어난 아기를 보여줬다.
팅팅 불어나서 쪼글한데 이가 하나도 없어 잇몸만 있는 아기가 온몸으로 울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첫인상은 무슨 할아버지 같았다.
‘너였구나’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부르니까 아기가 잠시 울음을 그쳤다.
내가 빙긋 웃었던 거 같다.
그리고 곧바로 간호사들이 아기를 데려가고 나는 마취를 당해서 의식을 잃었다.
간호사가 날 깨웠다.
수술이 끝났으니 깨어나라고 했다.
그대로 수술 침대에서 회복실로 옮겨졌다.
내가 아기를 낳은 건 밤 11시가 넘어서였고 회복실에 돌아온 건 새벽이었다.
피로에 찌든 남편이 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내가 들어간 지 얼마 안돼서 아기 울음소리가 나고 나와서 보여줬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 수술이 오래 걸렸다고 했다.
내 배엔 모래주머니가 놓여있고 몸과 팔에 뭐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하반신을 보아 마취는 아직 깨지 않은 거 같았다.
간호사가 너무 늦은 시간이라 오늘은 회복실에서 자고 내일 아침 6시쯤 병실로 올려보내주겠다고 했다.
마취 깨는 연습을 해두라고, 병실 침대로 옮기기 위해선 내가 엉덩이를 드는 정도는 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고 했다.
회복실에 아무도 없었기에 오늘은 남편도 회복실 침대에서 자도 된다고 했다.
나는 멍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해서 잠들지 못했다.
카톡방에 친구들에게 ’나 애 낳음‘이라고 보내고 보니 새벽 네시 었다.
남편의 거친 코골이를 들으며 그가 찍었다는 아기 사진을 밤새 바라봤다.
너무 작고 신기했다. 못생겼는데 예쁘다.
오랫동안 못나와서 껴있었던 탓에 아기 뒷통수가 콘헤드라고 남편이 말했다.
과연 그랬다.
발가락을 움직여서 마취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새벽에 간호사가 들어왔다.
(중간에 몇 번 체크해 줌)
이제 병실로 가자며 내 침대를 끌고 이동했다.
멍하니 바뀌는 천장 풍경만 보니 신기했다.
여자 간호사 혼자 침대를 끌고 올라가서 병실문을 열고 나를 병실 침대로 옮겨야 하니 당연히 내가 엉덩이를 들어서 이동정도가 가능해야겠다 싶었다.
병실에서 밑에 패드를 깔아주고 소변줄을 달아주고 남편에게 오줌통 비우는 법을 알려줬다.
(나중에 친구에게 말했더니 친구는 경악하며 자기 병원은 간호사가 해줬다는 걸로 보아 병원마다 다른 듯)
병실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나저나 내 아기는 언제 보러 갈 수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