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기를 낳기 약 6개월 전 남편은 허리디스크 수술을 했다. 그는 2주 정도 입원을 했다.
간호인 병동이 아니라 가족은 면회 외엔 출입이 불가했고 정해진 시간에만 잠깐 볼 수 있었다.
나는 꽤 자주 방문했다.
부탁한 물건이나 간식을 사들고 가거나 머리를 감겨주기 위해서였다.
임산부 뱃지를 달고 드나드는 나를 간호사들은 당연히 기억했고 나중엔 누군지 묻지도 않고 바로 열어줬다.
크리스마스에도 병원에서 보냈다.
“다음엔 출산이니까 오빠가 날 간병해줘야 해”
그리고 난 아기를 낳고 예상치 못한 수술까지 했다.
모든 이가 자연분만에서 가장 두려워하고 기피한다는 진통 다 겪고 응급 제왕수술을 하는 결말이었다.
자연분만의 입원 기간은 2박 3일이고 제왕절개의 입원 기간은 4박 5일이었다.
제왕절개는 6시간 금식을 해야 하고 12시간이 지나야 소변줄을 빼고 물을 마실 수 있다.
그리고 주어지는 첫 미션은 반드시 3시간 안엔 소변을 봐야 한다.
수술 후 일어나면 장기가 쏟아지는 느낌이 난다!라는 후기를 본 터라 일어나는 게 무서웠다.
남편을 잡고 엉금엉금 천천히 일어났다.
다행히 뭐가 왁! 쏟아지는 느낌은 아니지만 힘들었다.
하룻밤 새에 모든 근육이 다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화장실까지 가는 것도 한 세월이 걸렸다.
(병실은 고시원 방만한 매우 작은 방이었다.)
간신히 도착한 화장실에서 내가 변기에 앉는 것도 힘들지만 어떻게 일어나지…? 이 또한 난관이었다.
남편이 도와주고 있어야 한다는데 소변통은 갈아줘도 모든 걸 다 보여주고 수습까지 부탁하고 싶진 않았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혼자 앉고 일어섰다.
(혼자 쓰러져서 이빨 나갈 수도 있다고 원래 이러면 안 된다고 함)
많이 걸으라는 말에 밤중에 유령처럼 복도를 걸었다.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후들거리다 너무 어지러워서 중간도 못 가고 병실로 돌아갔다.
남편에게 아기 보러 안 가냐? 했지만 남편은 “어차피 이제 평생 볼 건데 굳이…”라는 말을 하며 가지 않았다.
한시라도 나를 떠나지 않아 나를 간병하기 위한 스윗가이는 아니었다.
그냥 게임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병원에서 심심할 거 같다며 내가 아기를 낳은 다음 날부터 PC게임을 깔고 무려 아기 150일까지 게임에 미쳐있었고 나는 두고두고 평생 원망할 거리가 생겼다.
다음 날 밥을 먹는데 두통과 명치 통증이 심했다.
이게 수술 후유증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점점 호흡도 힘들어져서 간호사를 불렀더니 가스가 가득 차고 체한 거였다.
이 와중에 우리가 있던 고시원만 한 작은 병실에서 건너편 큰 병실이 자리가 났다며 방을 이사했다.
헐떡거리며 간신히 간호사에게 기대 이송당했다.
진통주사를 맞은 후 간호사가 가스 빼려면 걸어야 한다. 나아지면 무조건 걸어라!라고 했다.
나는 통증이 조금 나아졌을 때부터 퇴원까지 미친 듯이 복도를 걸어 다녔다.(거의 깨어있는 시간 내내)
그래서 밥도 못 먹고 내내 수액으로 연명했다.
중간에 남편을 협박해서(?) 아기면회를 보내고 사진을 봤고 멀리서 온 친정부모님은 10분 아기 보고 돌아가며 나에게 아기 사진을 보내줬다.
(부모님은 내 면회는 불가해서 나도 못 보고 돌아감)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봤지만 가장 늦게 내 아기를 본 사람은 나였다.
수액을 맞느라 팔이 누더기가 되고 피멍이 심하게 들었는데 몸이 안 좋다 보니 아기를 보러 가는 게 늦었다.
신생아실에서 수유콜이 오는데 수액을 달고 간 산모는 나뿐이었다.
아기는 처음 봤을 때보다 붓기도 빠지고 예뻐졌다.
아주 매끈한 부리또처럼 둘둘 감겨있었다.
여전히 몸은 안 좋았지만 이틀이나 못간게 너무 가엾고 귀여워서 무리해서 수유콜이 올 때마다 아기를 보러 계속 갔다.
어설프게 젖을 물리다 결국 상처가 나고 모유에서 피가 나왔다.
이게 또 고난의 시작일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