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과 뭉툭한 바늘

by Anne

송곳 10화


파업을 결심하기 전, 이수인은 우는 아기를 안고 아침을 맞았다.

네, 끝내고 싶어요.
소장님처럼 될까봐.. 불행..하시잖아요.

그게 중요한가?

네, 중요해요.
편하게 자고 싶어요.
음식 맛을 느끼고 싶어요.
아기한테 바다도 보여주고 싶고
아내랑 장보고 같이 밥도 해먹고 싶고..
지금 못 끝내면 그걸 놓칠 것 같아..

라고 하고 송곳 같던 이수인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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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메세나폴리스 T카페.
갑작스러운 계약 파기에 이 PD님은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자 하셨다.

"계약금 지급이 늦어서 그러지? 이번 달 말까지만 좀 봐줘"

몇 년 전 멘토로 만났던 이 PD님은 진심으로 미안하고 곤란해하셨다.
계약금..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거기까지만 말할 생각이었는데.
그래 원래 딱 거기까지만 말하고 일어설 생각이었다.
그런데
분명 입은 웃고 있었는데.. 망할 놈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피디님, 저 이 일 그만두고 싶어요.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면 끝이 있어야 하잖아요.
끝이.. 없어요.
분명 끝이 났는데 그래도 끝이 안 나요.
희망이 고문인 일 말고..
희망이 결과로 나타나는 일이 하고 싶어요.

..
.

내가 하는 일은 이수인 씨 같은 대단하고 엄청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도 이수인 씨도 잘.. 하고 싶었던 거다.
우리들의 시작엔 많은 반대가 있었고 잡히지 않는 미래를 애써 꿈꿔야 했고 불안한 현재를 애써 다독여야 했다.

남들처럼.

문득.

남들처럼 사는 게 부.러.워.졌.다.

남들처럼 사는 건 시시한 거라고 나는 그러기 싫다 그랬는데.
나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남들이.. 그렇게 부럽고 예뻤다.

내가 뭐라고.. 그들의 삶을 비슷하다 여기고 어쭙잖게 판단했을까.

..
.

지금이라도 남들처럼 살아야겠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두 갈래 길 앞에 서 있는 건 줄 알았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과 내가 선택한 삶.. 이렇게 두 갈래 길.

그런데

아니었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은 확고함이 밀려 나오기 전 가장 나약하고 어두운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만이 분명히 알고 있다.
원래 걷던 그 길을 또 걸을 것이라는 것을.

..
.

이수인은 다음 날 파업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는 그 결정을 내리기 전 울었다.

송곳 같은 이수인이 울자.. 뭉툭한 바늘 끝도 못 되는 나도.. 덩달아 울었다.

..
.

그리고 나는 한글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