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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 Mar 20. 2016

상상 속의 그곳. 갈라파고스 제도

바다사자와 이구아나, 펠리컨들이 자유롭게 노니는 이곳.

드디어 갈라파고스로 가는 날. 새벽 4시 반. 고요한 키토의 새벽을 택시를 타고 달려 공항에 도착하였다. 갈라파고스로 가기 위해선 공항에서 100불의 입도 비와 별도의 20불을 더 내야 한다. 섬 자체가 물가도 비싸고 투어비도 비싸고 전반적으로 돈이 많이 드는 곳이다.

키토에서 과야킬을 경유해서 갈라파고스 제도를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 안. 이 비행구간은 매우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서 론리플래닛에 비행기 왼쪽 자리에 앉아라는 조언까지 적혀있다. 그런데 정말 운 좋게도 내가 바로 그 왼쪽 자리에 앉게 된 게 아닌가! 3시간 동안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창문 밑으로 펼쳐졌다. 안데스 산맥의 구불구불한 산맥이 보이더니 시야를 가득 채운 구름밭과 파아란 태평양 바다까지... 그렇게 지루 할 틈 없이 갈라파고스 제도에 도착하였다.


갈라파고스는 공항에서 들이쉬는 숨마저 확연히 달랐다. 습하고 더운 바닷바람과 휴양지의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분위기. 공항이 워낙 작은 탓에 비행기에서 내려 직접 공항까지 걸어갔는데, 땅에 발을 딛자 내가 ‘갈라파고스’에 왔구나 라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공항버스를 타고 선착장으로 가서 배를 타고 에메랄드빛 바다를 건넜다. 공항에서 마을까지는 한참 떨어져 있는지라 다시 버스를 타고 1시간여를 달려야 했다. 버스 안은 짐을 한가득 메고 들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여행자들, 이 버스가 익숙하다는 듯 잠을 청하고 있는 섬주민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두 시 뜨거운 태양빛 아래 외길을 한 시간 가량 달려야 하는 버스기사 아저씨의 졸림이 버스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갈라파고스에서의 새해

새해를 특별하게 보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그리 기억에 남을 만한 순간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해의 첫날만큼은 아마 내 인생에서 손에 꼽힐 만한 특별한 순간일 것이다. 난 갈라파고스에 있으니까 말이다. 이 특별한 날, 갈라파고스의 사람들도 새해 첫날을 즐기는 모양이다. 모든 가게가 영업을 쉬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원래 가려했던 곳에서 발걸음을 돌려 Las grientas라는 곳으로 향했다.

절벽 틈새에서 스노클을 즐기기 좋은 이곳에는 우리처럼 다른 곳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마치 한국에서 여름철 휴가 때의 계곡을 보는 듯한 풍경이랄까. 현지인, 관광객,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스노클을 즐기고 있었다.

스노클을 즐기는 사람들
친구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 햇살이 내려와 일렁이고 있었다


갈라파고스를 갈라파고스답게 만드는 것들


갈라파고스에서 스노클이나 해변을 보러 걸어갈 때면 가기도 전에 주변의 풍경들에 눈이 사로잡힌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영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신비롭고 오묘한 풍경들이 펼쳐져 있다. 이국적인 선인장과 나무들. 한 번도 본 적 없던 색깔의 새들, 툭툭 튀어나오는 도마뱀들, 신기한 모양의 나무들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도착해 있다.

Tortuga 해변에서 본 바다이구아나들
선착장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바다사자

해변가의 벤치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아랑곳 않고 세상에서 가장 편한 낮잠을 자고 있는 바다사자들. 선착장을 날아다니고 있는 펠리컨들. 이 모든 것이 여기선 전혀 특이한 광경이 아니다.


첨벙첨벙 바다로 뛰어들어 물고기들과 수영하고, 보트 위에서 점심을 뚝딱 해결하고, 투명한 바다가 밀려들어오는 하얀 모래 해변을 거닐었던 산타페 섬 투어.

그리고 친구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자전거를 빌려 타고 플라밍고를 보러 달려갔던 이사벨라 섬. 파란 발 부비 새를 볼 거라며 높은 파도를 거침없이 달리는 보트 위에서 온 내장이 같이 흔들리며 가서는 아직 덜 자란 회색 발 부비 새를 보고 돌아왔던 기억과 무지개가 뜬 해변의 칵테일 바에서 친구들과 코코넛 칵테일을 마시며 해변의 노을을 바라봤던 순간. 이 곳의 신비로운 풍경과 동물들은 내가 '갈라파고스'에 있다는 걸 계속 깨닫게 해 주었다.

드디어 파란발 부비새를 만난 순간! 하지만 아직 덜 자란 새끼였던 부비새는 발이 회색빛이었다.
이사벨라 섬 해변의 노을



갈라파고스를 떠나며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는 갈라파고스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갈라파고스는 자연 그 자체, 아직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었던 것일까. 우리가 갔을 때 갈라파고스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유럽과 북미 부자들의 휴가 장소 같은 느낌이랄까. 갈라파고스의 마을은 여느 휴양지를 가면 볼 수 있는 느낌의 관광지 마을 같았고 음식점과 투어 사들은 높은 물가를 자랑하고 관광지 특유의 불친절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고생도 많이 하고 그만큼 추억도 많았던 갈라파고스.. 다시 갈 거냐 물으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 같다. 나중엔 더 관광지화 될 것 같은 앞선 걱정 때문이기도 하고, 갈라파고스에서 얻었던 최고의 순간을 그 모습 그대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갈라파고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갈라파고스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어딜 가나 보였던 이구아나들과 바다사자, 펠리컨들.. 그리고 바닷속의 수많은 물고기들. 그건 오로지 갈라파고스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함께 선물해준 갈라파고스.

그럼 안녕! Adios!

행복한 낮잠을 자고 있는 어미바다사자와 새끼바다사자. 이런 모습이 갈라파고스를 떠올리면 행복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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