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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 Mar 21. 2016

바다사자와 함께 수영을

두 번의 도전 끝에 얻은 최고의 순간

다이빙의 천국, 갈라파고스

스쿠버 다이빙의 성지라 불리는 갈라파고스. 갈라파고스 해류의 풍부한 플랑크톤들은 풍부하고 다양한 바다생물들을 불러들인다. 때문에 갈라파고스는 세계 각지의 다이버들이 찾는 다이빙 장소이기도 하다.

다이빙이라곤 해본 적도 없었지만 갈라파고스에 왔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법. 다행히 우리처럼 다이빙 자격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체험다이빙이 있었다. 체험다이빙은 기본적인 장비, 안전수칙을 배운 후 다이빙 전문강사와 함께 손을 잡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친구와 나는 기대에 부풀어 용기 있게 체험다이빙을 신청했다.


첫 번째 다이빙의 악몽

평소 버스든, 기차든, 배든 멀미가 없는 편이라 뱃멀미도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물에 대한 겁도 없는지라 첫 다이빙을 앞두고 그저 설레기만 했다. 생각보다 아담한 배에 총 10명이 타게 되었다. 미국에서 온 아빠와 아들 둘, 1000번 다이빙을 해보셨다는 해양생물학자분, UN기구에서 일하시는 분 등 정말 다양한 사람이 다이빙을 위해 한 배에 타고 있었다. 나와 친구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다이빙 경험이 있었다.

우리는 강사와 함께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이 먼저 다이빙을 하러 바닷속에 내려가 있는 동안 잠자코 배 위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가 지옥의 시작이었다. 갈라파고스 바다 한가운데의 파도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고, 우리가 타고 있던 배는 아주 작은 배였다. 배는 파도의 움직임에 맞춰 좌우, 상하로 미친 듯이 움직여댔고 덕분에 우리의 내장도 함께 미친 듯이 요동쳤다. 아침에 먹은 게 거의 없었는데도 참을 수 없는 멀미가 올라왔다. 아무리 먼 지평선을 바라보고 심호흡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바다 위에 구토를 하고 말았다. 나한 번, 친구 한번 그러다 나중엔 둘이 배 양쪽에서 동시에 토를 하기에 이르렀다. 옆에 계시던, UN 난민기구에서 일하시는 분께서 “Are you OK?”라며 내 등을 토닥여주시는 순간 정말 이 배 위에서 영락없는 난민이 된 기분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갈라파고스의 바다 위에서 보내는 일분일초가 고통 그 자체였다.

그렇게 힘겹게 기다리다가 들어간 바닷속은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또 물고기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다이빙을 위해 고통 속에도 참고 기다렸던 다이빙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사전에 다이빙 2번으로 얘기가 된 상태였는데, 한 번밖에 들어가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2번 다이빙을 하는 동안 내내 기다리기만 한 것이다.

기대했던 갈라파고스에서의 다이빙이 이렇게 끝나다니... 친구와 나는 쏟아낼 것을 다 쏟아낸 몸으로 허무하게 숙소로 돌아가며 이럴 순 없다고 소리쳤다. 이렇게 끝내기는 너무 허무하고 아쉬웠다.

'아니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갈라파고스에서의 다이빙이 이렇게 끔찍한 악몽으로 끝난단 말이야??'

결국 우리는 한번 더 도전하자고 결심했다. 우리의 결심을 들은 옆에 있던 언니는 방금 전까지 죽어가는 얼굴을 하고 있다가 다시 도전한다는 소리가 나온다는 게 신기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생애 언제 다시 또 갈라파고스에서 다이빙을 할 기회가 온단 말인가. 오늘의 고생이 분해서라도 이대로 끝낼 순 없었다.


마을로 돌아가자마자 속을 달래기 위해 흰죽을 쒀먹고는 다시 투어를 알아보기 위해 나섰다. 여러 투어 사들을 돌아다니며 총 다이빙 인원과 함께 가는 강사 수는 몇 명이며 배는 어떤 것을 타는지, 사람들이 다이빙하는 동안 스노클을 할 수 있는지 등을 꼼꼼히 확인했다. 그 결과 훨씬 싼 가격에 훨씬 큰 배, 두 명의 강사가 함께하는 다이빙을 알아내었고 다시 다이빙을 신청하게 되었다. 오늘의 기억은 정말 1초도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지만 내일 다이빙은 훨씬 나을 거라 기대하며 말이다.



두 번째 다이빙. 생애 최고의 기억을 얻다

아침 일찍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다이빙에 나섰다. 오늘은 ‘다프네’라는 섬으로 향하는 길. 어제보다 훨씬 큰 배에 어제보다 적은 수의 사람들이 함께 했다. 우선 배가 크다 보니 파도가 세도 움직임이 적어 심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이 다이빙을 하는 동안 기다리고만 있는 게 아니라 섬 암벽 근처에서 스노클링을 할 수 있었다.

작은보트로 옮겨타고 다이빙포인트로 이동

다프네의 새파란 바다 아래로 얼굴을 담그니 어제의 다이빙에서 본 것보다도 많은 물고기들이 여유롭게 헤엄을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때때로 저 밑에서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가고 있기도 했다. 스노클을 충분히 즐기고는 다시 배 위로 올라와 갑판 위에 누워 몸을 말리며 선장님이 준비해주신 점심을 먹었다. '아... 이것이 행복이구나...' 정말 어제와는 너무나도 다른 세상이었다.

그러다 드디어 우리가 다이빙을 하는 시간! 작은 보트로 다이빙 포인트에 가서 장비를 꼼꼼히 차고 입수하였다. 수면에서 호흡기로 몇 번 호흡을 해보고는 강사의 손을 잡고 서서히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다이빙을 하면 내가 호흡기로 호흡하는 소리말 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내가 내뱉는 숨과 들이쉬는 숨의 소리만 내 귀를 가득 채울 뿐이다.

후 - 하, 후 - 하

 나의 호흡소리를 하나하나 느끼며 헤엄쳐 내려간다. 다프네의 바다는 유난히 파랗고 시야가 좋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속에 물고기들이 하나 둘 나타난다. 어제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물고기들이 사방으로 나를 감쌌다.

시야에 가득 차는 물고기떼들
수많은 물고기들이 우릴 에워싸고 있다

내 손을 잡고 이끌어주는 강사는 뭔가가 나타나면 볼 수 있게 손으로 가리켜 주었는데, 그 손끝을 따라가면 커다란 불가사리, 무늬가 빼곡한 가오리, 물고기떼 사이로 헤엄쳐가는 바다거북들이 있었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상어도 내 눈앞에서 헤엄쳐 다녔고 정말 보기 힘들다는 어마어마하게 큰 만타가오리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다.

저-멀리 물고기들 사이에서 헤엄치는 바다거북이 보인다
물고기떼 사이의 상어

내 눈으로 보고 있어도 내가 꿈을 꾸는 건지 헷갈리는 광경들. 물고기 떼들 사이에서 바다거북과, 상어와 가오리를 바라보는 그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렇게 꿈꾸듯 바닷속을 한참 머물다가 올라갈 시간이 되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다시 보트를 타고 배에 돌아가기 위해 숨을 가다듬고 있는데, 그때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펼쳐졌다.

강사가 저길 보라며 가리키는 쪽을 보니 어미 바다사자와 새끼 바다사자가 수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쪽 끝에 보이는 어미와 새끼바다사자

그런데 그중 새끼 바다사자가 점점 우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새끼 바다사자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생물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듯이 우리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아기바다사자

가까이 와서 신기한 듯 우리를 쳐다보곤 다시 멀리로 수영해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또 한 바퀴 돌고... 바다사자가 너무 가까이 오는 바람에 닿을까 싶어 내가 몸을 피했을 정도였다. (갈라파고스에서는 동물을 만지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다)

나는 믿을 수 없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산소 호흡기로 침착하게 호흡하며 바다사자를 바라보았다. 바로 내 앞에서 눈을 껌벅, 껌벅이고 있는 아기 바다사자. 뭐가 그리 궁금했던지 우리 가까이 다가와 쳐다보고, 또다시 수영을 하곤 했다. 새파란 다프네의 바다색과 자유롭게 곡선을 그리며 수영하는 아기 바다사자는 마치 내가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속에 있는 착각이 들게 했다.


내 생애 이런 광경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온몸으로 전율이 느껴졌다. 그 순간을 기억하려고 눈을 크게 뜨고, 손을 뻗어보고, 이리저리 몸부림쳤다. 놓치고 싶지 않아서,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서 몸부림쳤던 순간. 그렇게 나는 갈라파고스의 바다사자와 함께 수영을 하고 있었다.

정말  닿일 것만 같았다
우리 앞에서 실력을 자랑하듯 수영하는 귀여운 새끼바다사자
그러곤 새끼바다사자는 저멀리 헤엄쳐 갔다.


무식하고, 용감하게 다시 도전해본 두 번째 다이빙, '상어만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 도전이었는데.. 너무 과분한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바다사자와 함께 수영했던 그때 그 느낌. 기억하고 싶어서 온몸으로 애썼던 그 순간은 분명 내 생애 최고라 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코 앞에서 아이컨택
안녕! 고마워!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사진과 영상들을 바라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렇게 몇 번이나 꺼내보아도 계속 행복해지는 기억이 있음에 감사하다. 앞으로 가끔 내가 불행하거나, 힘들다고 느껴질 때면 이렇게 위로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갈라파고스의 파란 바다에서 바다사자와 함께 수영을 했다"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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