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telmen Jul 10. 2020

살기 위한 여자, 살아남은 남자

열두 살 때 나는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 이 문장을 쓰고 나서 한참 고민했다. ‘당할 뻔했다'라는 술어가 적합한 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성기의 강제 삽입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뿐이지, 옷 속으로 손이 들어오고 바지 단추가 풀어지고 벗겨지기 직전에 풀려났다. 그렇다면 나는 폭행을 당할 뻔한 것인가. 당한 것인가.

그 날에 대한 내 기억은 사실 엉망이다. 그래도 드문드문 기억나는 정황을 이야기하면, 혼자서 친구네 집으로 가던 길에 한 남성(10대 후반 혹은 20대 추정)을 만났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 따라 간 빌라의 지하실에서 문이 잠겼다. 몸을 더듬는 놈에게 무릎까지 꿇면서 미친 듯이 빌었다. (그렇게라도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싫어요” “안돼요”를 말하라고 배운 이른바 ‘구성애 세대’였고, 상대가 친족이나 위력 관계가 아닌 말 그대로 ‘처음 보는 놈’이었기 때문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당시 유행하던 ‘주유소 점퍼’를 입었던 것 외 생김새는 전혀 기억에 없다. 정확히 기억하는 건 소리다. 찰칵 문이 잠기던 소리. "가만히 있어. 괜찮아"라고 말하던 그놈 목소리.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다. "씨발 맘 바뀌기 전에 뛰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사력을 다해 뛰쳐나갔고, 옷이 흐트러진 채 얼굴이 눈물로 얼룩진 여자애를 보고 급히 세운 차량을 얻어 타고 집까지 왔다.

집에는 엄마와 아빠, 아빠의 손님인 남자 어른이 있었다. 엄마는 내 옆에 남았고 두 성인 남성이 집을 나섰다가 그리 오래지 않아 돌아왔다. 잠에 들었던 것 같고, "못 잡(찾)았어"라는 말이 꿈속에서 웅얼대듯 들렸다. 그 직후 얼마간 내 심리 상태나 일상생활은 어땠는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잘려 있다.

가끔씩 '사건'이 생각났지만, 큰 트라우마는 없이 지냈다. 상대적으로 지속적 성폭력 위험에 덜 노출될 수 있는 환경, 비교적 안전한 공동체 - 집, 학교, 단체, 지역 - 안에서 보호받으며 자랐고, 적어도 해악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는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 아는 척하면서도 사실은 잘 모르고, 쉽게 분노에 무던해졌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 나서 보고 들은 성추행 일화들에서 나는 철저하게 '주변'에 머물렀다.

고백한다. 기자 생활을 했던 사회 초년생 때다. 한 지방 출장의 저녁 자리에서 거나하게 취한 기관장이 양옆으로 여자 기자를 앉히고, 왼쪽 옆에 앉은 기자 허벅지를 쓰다듬고 오른쪽 옆에 앉은 기자 겨드랑이에 기습적으로 손을 넣다 빼며 웃었다고 했. 결국  일이 여기자협회*를 통해 논란이 되자, 해당 기관장은 언론사를 돌며 당사자인 기자가 아니라 편집국장에 무릎 꿇고 사과했다. 나는 그때 나의 일이 아니라서 안도했다. 가까운 동기와 함께 제대로 분노해주지 못했다. 부끄럽다.
*여기자, 여경, 여변호사와 같은 성별 고정관념적 표현은 쓰지 않아야 하지만, 별도의 공식 기관이 아니고 기자협회 산하에 내부 연대의 목적으로 조직화된 단체의 의미이므로 그대로 썼다.

고백한다. 팀의 유일한 여자 선배와 나를 경쟁시키려고 했던 남자 선배들이 "OO 룸살롱에서 언니들 끼고 폭탄주를 말아먹는다. 너도 같이 놀자. 그런 경험 없이 무슨 세상 통찰하는 기사를 쓰냐"라고 핀잔주던 남자 선배들에게 일격을 가하지 못했다.  자리를 거부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입장을 표하는 것에 만족했다. '명예남성'*으로의 여자 선배를 어쩌면 잠깐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부끄럽다.

*남성 중심사회를 기능케 하는 가치와 관습을 받아들여 내면화하고 그에 따르는 여자

고백한다. 지금도 이름을 대면 알만한, 굉장히 영향력 있는 지상파 PD가 계약직으로 지역 방송사 아나운서로 일하던 내 친구에게 "귀엽다. 나랑 만나면 내가 너 서울로 데려올 수 있는데"라고 했다던 이야기를 듣고는 적당히 거절하면서 서울에 올라올 방법을 찾아볼 순 없을지 되물었다. 고백한다. 이전 직장에서 상사가 끊임없이 구애를 해 곤란해하던 동료가 그만두기 전 내게 도와달라는 시그널을 보냈으나 손내밀지 못했다. "성희롱이 아닌 미혼 남녀 간 자연스러운 감정의 문제가 아니냐"라고 치부하던 회사 대표의 권위에 눌려, 잡음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리스크 매니지먼트 FAQ 문서를 만들었다. 부끄럽다.


우리나라에서 이뤄지는 성교육 및 성폭력 예방교육은 일관되게 '피해자 되지 않기'를 강조하는데 그중에서도 유아 성교육이 특히 그러하다. (중략) 성폭력 장면을 바라보고 성찰하도록 이끄는 성교육이나 성폭력 예방교육은 흔치 않다. 대부분 그 장면을 통해 피해자의 좌절감을 부각하고, 가해자를 괴물이나 예외적 인물로 묘사하는 데 그친다. 가해의 맥락이나 가능성을 인식시키기보다 피해자 되지 않기에 초점을 맞추며, 심지어 피해자를 탓하는 세태를 조장하기도 한다. (중략) 아이가 어릴수록 성적 행위가 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애매하게 우회하여 네가 '그런 일' '안 좋은 일'을 당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 일'은 매우 심각하고 위험하니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물론 그 대상이 되는 건 대부분 여아들이다. 이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첫 성교육을 받는 순간부터 남녀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일종의 성역할을 배우게 된다. 이때의 성역할은 여성이 집안 살림을 도맡고 남성은 공적 영역에서 임금노동을 도맡아 하는 식의 구분과는 약간 다르다. 잘못된 혹은 편향된 성교육을 통해 배우는 성역할은 성적 관계 안에서 어떤 성적 주체/대상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한다.|김서화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


불현듯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난 왜 20년이 한참 지나도록 그 새끼 얼굴이 어떻게 생겼을까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이런 경험의 기억이 '가해'의 얼굴은 지워진 채, 오로지 ‘피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이 놀랍도록 소름 돋았다. 꽤 최근까지도 성인 남성이 초등학생 여아에게 필요한 도움이 뭐였을까 의심하지 않고 따라갔던 나의 순진과 무지에 대한 자책을 했던 것 같다. 뭐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안 좋은 일'이 벌어졌고, "어차피 잡을 수 없으니까”라고 쉽게 체념하고 가해자의 뒤꽁무니는 잡을 생각도 안 했다. 말 그대로 ‘큰 일’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최면을 걸었던 것 같다. "나는 살아남았구나" 다행이라 여겼다. 그간 결코 잊을 수 없었음에도, 미투 운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희롱과 추행의 경험을 고백하는 텍스트들이 쏟아져 나왔을 때 내가 쉽게 어느 말도 보탤 수가 없었던 이유는 이거였다. 순진과 무지는 모르는 남자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그 경험과 기억을 철저하게 망각하고자 한데 있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왜 네 번이나 당해?"
나는 이것을 안희정에게 묻고 싶다
(중략)

"왜 직접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썼는가?"
"왜 세 번이나 입장을 번복하였는가. 일관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왜 검찰 출두 직후 휴대폰을 파기했는가?"

왜 법원은 가해자 안희정에게는 묻지 않았을까?
(중략)

왜 제게는 물으시고, 가해자에게는 묻지 않으십니까?
왜 제 답변은 듣지 않으시고, 답하지 않은 가해자의 말은 귀담아 들어십니까?|김지은 <김지은입니다>


망각하지 않아야 한다. 기억을 끄집어내기 시작하니 더 많은 놈들이 있었다. 갑자기 달려와 뒤에서 와락 껴안고 가슴을 만지고 도망갔던 놈. 버스 타고 가는데 창문 아래 내려 보이는 시선까지 바짝 차를 붙여서 보란 듯 바지를 내리고 자위하던 놈. 길을 가는데 갑자기 차를 태워주겠다고 무작정 따라오던 놈을 피해 공중전화 부스로 성급히 들어갔던 기억도 난다. 학교 앞 바바리맨은 말해 뭐해.

망각해선 안된다. 세계 최대 규모의 불법 아동 성 착취 동영상 사이트 '웰컴투비디오'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는 2살, 4살 아동이라는 뜻의 '%2yo', '%4yo' 라고 한다. 이 사이트를 운영한 96년생 손정우는 달걀 18개를 훔친 40대 남성과 같은 징역 18개월을 구형받았다. 가장 기가 막혔던 건 양육자인 아버지의 말과 태도였다. "재판부의 현명한 결정에 감사하다"면서 "다시는 아들이 컴퓨터를 하지 못하게 하겠다"라고 했다고 한다. 한때 대통령을 꿈꾼 성범죄자는 모친상으로 형 집행정지를 받았는데, 장례식장에는 여전히 권력의 끈끈한 연대를 보여주는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대통령을 욕망하던 또 다른 이는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하자 제대로 수사도 받지 않고 목숨을 끊었다. 이게 내가 사는 나라의 현재 수준이다.

망각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이젠 그 하나하나의 장면보다 그때 어른들이, 그러니까 내 부모나 선생들이 가해자를 잡기 위해 뭘 노력했는지가, 노력을 했다면 우리한테 제대로 알려줬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먼저 든다. 그리고 준비 없이 어른이, 부모가 된 내가 아이를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보면 벌컥 두렵고 갑갑한 마음이 솟구친다. 쉽게 무기력해지지 않아야지. 수십 년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부러 외면해온 여성으로의 내 공포와 피로를 방패 삼아, 아이를 보호할 방법을 궁리하고 질문하고 배워야지 다짐한다.


"Good evening, ladies and remaining gentlemen."


2018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여는 사회자 세스 마이어스의 첫마디. 할리우드 성추행 파문에 대항해 검은 드레스와 정장을 입고 등장한 스타들이 성폭력 피해 여성들과의 연대를 외치던 풍경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많이 바뀔 것이라 기대했다. 바뀌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더 악랄하고 교묘해졌다. 수많은 N번방이 도사리고 있었다. 결국 바뀐 것은 없다. 종일 시끄러운 뉴스를 본다. 진보와 보수? 성범죄 앞에 그런 게 어딨어. 싸구려 호기심으로 피해자를 찾지 말고, 대한민국, 남자, 권력, 위력, 위정자들 속 ‘가해의 얼굴’을 밝혀야 한다. 살기 위한 여자들, 살아남은 남자들 모두 계속 소리 내야 한다. 절대 지치거나 지겨워해선 안 된다. “미투. 위드유. 타임스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는 아직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성적 스캔들의 주인공은 사회 낙오자라기보다 사회 명망가인 경우가 많다. 유명 정치인이나 기업인은 성폭력을 해도 ‘강간’이라는 단어 대신 ‘상납’이라는 단어로 그 행위가 중화된다. 권력있는 자가 성폭력의 죗값을 치른 사례는 거의 없다. 그들의 폭력은 그저 스캔들로만 다뤄질 뿐이다. 반면에 사회 낙오자가 성범죄를 저지르면 적법하게 처리돼 형을 받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비정상적인 괴물이나 선천적인 악마라는 이미지도 덧씌워지고는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지은 죄를 ‘봐주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나는 이 사회가 성범죄 가해자에 낙인찍는 이미지들이 가져오는 효과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날 때부터 괴물인 흉악한 이들만이 성범죄 가해자라고 상상하는 순간 우리는 일명 사회 명망가라는 사람들, 성실한 직장인, 그리고 ‘아버지’나 ‘오빠’는 가해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김서화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
매거진의 이전글 여자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